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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Sep 10. 2023

온실 속의 화초?

“어려움 없이 산 티가 나요. 소설 속에 큰 갈등이 없고 등장인물이 맑아요.”


내 소설에 대한 피드백은 주로 이랬다. 어릴 때부터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썩 좋지는 않다. (난 어려움 없이 산 게 아니고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 것, 그뿐이다!)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졸지에 과부가 되었는데, 어려움 없이 살았다고?'

이런 생각은 아니다. 비록 내 신세는 과부가 되었지만, 그래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처지를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고 있기는 하다.

뒤늦은 사춘기를 겪느라 어두웠던 이십 대를 빼면, 난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잘 웃고 수다스러웠으며 어지간한 일에는 좌절하지 않았다. 괴롭고 힘든 일이 있으면 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자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더 힘든 게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서울대학병원 교수였던 아빠, 강남 8 학군지에 위치했던 우리 집, 그리고 화목한 가족의 모습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내 삶에 어려움이 없어 보였을 거다. 아빠가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건 원하지 않기에 글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은 지난 몇 십 년간 말하지 못할 고통 속에 있었다. (이 고통은 ‘남겨진 국가유공자 후손으로서 겪은 아픔’ 정도라고만 말하겠다.) 가족은 유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면 연쇄적으로 가족 전체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유난히 불안이 높은 사람일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남편과 사별 후 심리상담을 다니면서 그 원인을 찾았다. 나의 불안은 어릴 때부터 겪어온 그 ‘아픔’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가족 모두가 불안증을 달고 살만큼 힘들었지만 서로 외면했던 것 같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야 했으니까. 나 역시 아픈 부분은 외면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누군가는 내가 말하는 아픔이나 고난에 대해 엄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부를 누린 건 아니었지만, 밥을 굶어야 하는 처절한 가난에 처한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건 사실이니까. 남편이 세상을 떠나 과부가 되었고, 그로 인한 아픔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니니까. (남편이 곁에 없을 뿐이지 나의 일상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재해보상금, 양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먹고살만하다.)

내가 가진 아픔은 나에게는 절대적인 것이기에, 타인의 판단으로 그것이 아픔이다, 아니다라고 정해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각자가 가진 아픔이나 고난은 각자에게는 절대적인 것이며 다른 이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다는 건, 불행하다는 걸 의미할까? 어둡지 않다는 건, 밝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내 아픔이 제일 크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은 아픔이 아닌 것일까?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심리상담을 통해 사별의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려면, 아픔을 제대로 마주 보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파서 감추려고만 했던 사별의 아픔을 인정했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아픔을 제대로 마주 보고 인정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에 나는 아픔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내 아픔이 누구의 것보다 가장 크다는 결론으로까지 도달했었다. 수많은 고난과 아픔을 가진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아프고 힘든 사람이라고 인정하자 비로소 아픔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 아픔은 당시 나에게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즈음에 친정엄마와 사별한 지 일 년 정도 된 지인과 통화를 했다.

"엄마와 사별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저는 여전히 엄마를 놓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너무 아픈데.. 다른 사람들은 그 아픔이 조금은 무뎌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너무 서운해요. "

어디에 털어놓기 힘든 감정이지만, 나만큼은 이해할 거라 생각해 털어놓는다고 했다. 아프고 힘들다며 흐느끼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들어줄 뿐이었다. 당시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었다. '내가 더 힘들어요, 그러니까 들어주기 힘들어요.'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통화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득 친정엄마와 조금 이른 이별을 한 그녀의 아픔은, 그녀에게는 절대적인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가 가진 아픔이 제일 큰 것이었지만, 그건 나에게만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남편과 사별 후 나에게 닿은 아픔은 나에게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절대적인 아픔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이 된다. 몇십 년간 품어 온 우리 가족의 아픔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졌다. 남편의 죽음이 준 과부라는 타이틀은 처음에는 가슴에 낙인으로 남아 아팠다. 몇 년이 지난 현재 그 낙인은 가슴에서 사라진 듯하다. 이제 스스로를 과부라 칭하며 웃을 만큼이나 아프지 않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온실 속의 화초가 맞다. 그렇다고 아픔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나에게만큼은 절대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아픔이 있어도 괜찮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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