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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Sep 06. 2023

나는 나의 셀럽

I am the one and only

얼마 전, 친한 동네 언니가 중요한 모임에 간다기에 내 구두를 빌려줬다. 유명 명품 브랜드 구두였다. 둘 중에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 신으라고 두 켤레를 언니네 집에 가져다 놓았는데, 그걸 본 그 집 아들이 엄마 구두 또 샀냐면서 놀랐다고 했다. 언니가

“이거 옆 라인 이모가 빌려준 거야.”

라고 하자, 그 집 아들이

“누가 과부가 슬프고 힘들다고 하겠어.”

라고 했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다. 맞는 말이었다. 누가 나를 보며 과부가, 과부라서 힘들겠다고 생각할까?

내가 과부가 되기 전엔, 과부의 삶은 막연하게만 떠올려 봐도 안타까웠다. 누군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난 고인보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됐다. 삶에 커다란 결핍이 생겼는데, 살아갈 힘을 낼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모든 것이 충족되어 완전했을 때 나는 불완전했다.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커다란 결핍이 생겨 불충분해지고, 불완전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완전에 가까운 평온함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완전했을 때, 그것을 누리며 행복하면 좋았을 걸. 그때는 왜 그것에 무디기만 했던 걸까. 충분에 만족할 줄 모르던 나는 스스로를 밑 빠진 독으로 만들어 끝도 없이 욕심내어 채우는데 힘을 쏟았다. 충분히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채우려고만 했다. 밑 빠진 독에 아무리 채운다고 채워질 리가 없었다. 조급해져 자꾸만 욕심내었다. 그렇게 욕심의 굴레에 갇혀 허우적댔다. 욕심은 만족은커녕 결핍만을 느끼게 했고 마음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늘 불안했고, 너그럽지 못했다. 너그럽지 못한 마음에는 작은 자극에도 상처가 났다. 상처가 난 마음은 만족에 우둔해졌다. 그렇게 나는 불완전했다.


어느 날, 완전 속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당연한 존재가 사라졌다. 남편이 내 곁을, 세상을 떠났다. 당연한 존재의 부재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결핍을 낳았다. 그 엄청난 결핍은 결국 나를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다. 불완전해진 나는 불안정할 줄 알았다. 평온하거나, 여유로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만족이나 행복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분명 나는 불완전해졌는데, 불완전하지 않았다. 채우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이 충만에 가까웠다. 지금 그대로 충분했다. 충만해진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예민하게 상처 났던 마음이 아물어 어지간한 것은 포용할 만큼이었다.

결핍은 나를 완전하게 만들었다. 불완전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완전에 가까워졌다.     


내가 완전에 가까워진 건, 나 자신을 사랑해 주면서부터였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다. 어릴 땐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다. 완전해 보이는 삶 속에서도 내 안에는 언제나 결핍이 존재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줄 몰랐기에 내 마음이 온전히 채워지지 못했다. 채우기 위해 자꾸만 욕심냈다. 나를 사랑하지 않던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몰랐던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내가 찾은 ‘나를 사랑하는 법’은 한 마디로 ‘돌봄’이다. 나는 나의 외면과 내면을 치열하게 돌보고 있다.     


<외면 돌봄>

나는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한다. 내 계정에 내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을 열심히 한다. 인플루언서나 유명인은 아니다. 나는 나의 셀럽이다. (I am the one and only!)

나는 유행에 민감하다. 트렌드 리더나 세터는 아니지만, 열정적인 팔로워다. 패션, 문학, 음악, 용어, 밈, 등등 유행하는 것에 빠르게 반응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외면을 가꾸게 된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을 MZ세대라고 부른다. 81년생인 나는 M에 속해 애매하게 걸쳐있지만, MZ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덕분에 중학생인 아들, 그리고 아들 친구들이 나더러 엄마 같지 않고 친구 같다고 한다.

나는 특히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에 집착하는 편인데, 이왕이면 옷태가 나게 제대로 입고 싶은 마음에 몸매 관리를 열심히 한다. 사람들은 내가 잘 안 먹는 줄 알지만, 잘 먹는다. 대식가는 아니지만, 남들 먹는 만큼은 먹고 산다. 다만, 아침은 먹지 않고 하루에 두 끼를 먹으며 식전에는 효소를 챙겨 먹는다. 최대한 많이 걷고, 주 2회 필라테스를 한다.

엄청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사소한 ‘돌봄’이 나를 달라 보이게 한다. 꼬질꼬질하던 아이가 세수만 해도 얼굴이 환해지는 것처럼, 메말라 가던 화분에 물을 주면 생기가 도는 것처럼.      

<내면 돌봄>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너 T야?”라는 말이 있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할 때 하는 말이다.

원래 나는 노력형 F였다. (mbti에서 사고형은 T, 감정형은 F이다.) 앞서 말했듯,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고 타인의 사랑과 인정에만 목말랐기에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에만 신경 썼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해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은 노력형 T가 됐다. 타인의 감정에 무조건 공감해 주기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반응하며 내 감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감정 소모, 그로 인한 감정 노동이 많이 줄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다 보니, 과부지만 삶이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나는 힙한 과부다.

(힙-하다, hip 하다: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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