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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Sep 09. 2023

외로움은 혼자라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야.

   

누군가를 소개해 준다는 지인의 말에

“애들 학교 간 동안 오전에 두세 시간 데이트 가능. 저녁이나 밤에는 외출 불가.”

라고 하자

“너는 연애할 마음이 없네.”

라고 했다. 연애는 절대 사절! 이런 생각은 아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순간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이기에, 사랑을 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당장은 내 연애보다 두 아들의 성장이 더 중요하기에, 적어도 두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들 중심으로 맞춰진 내 일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혼자가 된 지 4년 차가 되다 보니 이제 연애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남편 없이 외롭지 않냐는 것이다. 외롭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이 나가지 않는다. 외롭기도, 외롭지 않기도 한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로움이 꼭 남편의 부재 때문만은 아닌데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생각을 덜어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무작정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에만 집중하다 보면 복잡하게 뒤엉켜 마음을 어지럽혔던 생각이 비워진다.

그런데 또 이따금 걸을 때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오기도 한다. 걸으며 들어오는 생각은 걷는 동안에만 이어지기에, 기꺼이 사색에 빠지게 된다.


몸은 걷는데 집중했고, 머리는 사색에 빠져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를 거쳐 먼 훗날 언젠가의 미래로까지 나를 데려다 놓았다. 두 아이가 지금 내 나이보다도 더 되었을 훗날로 말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백발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멋스럽게 꾸민 모습인, 혼자 사는 6층 할머니 같은 모습이려나. 하루의 일과라고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지팡이에 의지해 조심스레 내디뎌 아파트 노인 회관에 마실 다녀오는 것뿐일 테지. 수시로 나를 찾으며 이래도 엄마 탓, 저래도 엄마 탓 달달 볶던 두 아들 녀석이 저 사는 게 바쁘다고 찾지도 않겠지.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하는 친구나 가족과 그때까지도 수시로 연락하며 지낼 수 있을까. 가끔 안부나 주고받게 되지 않을까. 지금처럼 집 근처 산이나 공원에 다닐 수 있을까. 자연을 참 좋아하는 난데, 그저 창밖을 바라보거나, 집 앞 작은 화단에 있는 꽃이나 나무를 보는 걸로 만족할 수 있으려나. 기력이 달려서 어쩔 수 없이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겠지. 가만히 누워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다가, 사색에 빠지려나. 그때는 반대로 미래가 아닌 과거의 나를 회상하겠지. 그러다가 잠에 빠지기도 할 테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기운이 없어서 하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것마저 없을 만큼 무기력해질지도. 숨은 붙어있기에 쉬고, 맛있는 게 없어도 꾸역꾸역 음식을 채워 넣겠지. 사는 게 재밌으려나. 즐거움은 있으려나. 그때도 지금처럼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살 수 있을까.

생각의 한가운데 마주한 미래의 나는 고독하고, 외로웠다. 남편이라도 곁에 있으면 덜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자 울컥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외로움은 상실로 인한 것이 아니고, 혼자여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분명 외롭다. 그렇지만 내가 과부라서 외로운 건 아니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성이다. 나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외롭다.

그렇지만 항상 외로운 건 아니다. 나에게 외로움은 지속적인 감정은 아니다. 외로웠다가도 외롭지 않기도 하니까.

결혼 전, 나는 연애를 쉬지 않고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연애할 때도 있었고,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연애 중에 외롭기도 했고, 연애를 쉴 때 오히려 외롭지 않은 적도 있었다. 결국 외로움은 남녀관계로서 상대가 없다고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지금 내 곁에 가족과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늘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소용돌이치는 어떤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순간에 그게 되지 않으면 외로움까지 더해진다. 그런 날에는 세상에 혼자인 느낌이 들고 결국에는 외로움을 유발했던 감정마저 외로움에 잠식당하고 만다. 그럴 때는 자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먹거나, 밖으로 나가 걷거나, 뭐라도 하면 금세 외로움이 사그라든다. 외로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감정인 듯하다.     




외로움은 자기 자신을 자각하면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면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바쁘지 않게 될 미래에 무료함이나 지루함을 외로움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다듬고 더 열심히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자각하는 법.      

내가 나를 자각하는 방법은 뭘까. 단순하게 말 그대로의 의미를 생각했다.

나를 자각하는 방법=나를 알아 가기.

내가 나를 알아간다니, 누군가는 당연히 아는 걸 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서른아홉, 과부가 되고서 비로소 시작됐다.      

내가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처음에는 어려웠다. 고민 끝에 얻은 답은 간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실행해 나갔다.      

1. 글을 쓰는 게 좋다.

에세이 쓰기, 소설 쓰기를 통해 에세이 세 권을 출간했고 문예지 네 곳에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특별히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즐거운 열정으로 꾸준히 글을 쓴 덕분에 얻은 결과였다.     

2. 걷는 게 좋다.

걷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지금껏 걷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는 무작정 걸었는데, 중년이 된 지금은 사색하며 걷는다. 그래서 더 좋다. 몽상에 가까운 엉뚱한 생각에 빠지는 것도 재밌다.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좋다. 걸을 때는 주로 혼자 걷기 때문에,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걸으며 생각하며 나를 찾고,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가고 있다.     

3. 독서가 좋다.

원래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게 고민이었다. 책 읽기, 독서의 중요성은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강조되었으니까.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타인의 글을 읽고 싶어졌다. 읽은 만큼 생각도 깊어졌고, 편협했던 사고가 확장됐다. 책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최고의 조언자다.     

4. 아이돌이 좋다.

‘덕질’을 쉬지 않고 있다. 대상이 자주 바뀌기는 하지만 덕질은 꾸준하다. 주로 아이돌을 덕질하는데, 요즘에는 아이돌마다 자체 콘텐츠가 많아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머리나 마음이 복잡해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보면 좋다. 그들의 영상으로 눈호강, 그들의 노래로 귀호강 하다 보면 어느새 힘들었던 감정이 사라진다. 어떤 감정이든 지속적이지 않다는 걸 알기에, 좋지 않은 감정은 빨리 흘려보내려고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나만의 방법이다.      

나는 혼자서도 잘 놀아요. 그래서 외로워도 괜찮아요.     



내가 자각한 나는 '자유 영혼' 이다.

나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효녀였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그게 원래 내 성향인 줄 알았다. 내가 자각한 나는 효녀도 모범생도 아니고, 그 누구의 구속도 원하지 않는 ‘자유 영혼’이다. (두 아들이 누구를 닮아 자유 영혼인가 했더니, 나를 닮은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비출지가 우선이었던 나는 이제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자유 영혼인 나를 자각했다고 내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눈에 띄게 달라지진 않았다. 사십 년 가까이 살아온 과거의 ‘나’를 갑자기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작게나마 바뀐 것들은 이런 것이다.     

1. 부모님 말씀이 절대 진리, 거역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만, (부끄럽지만 마흔 가까이 되도록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이제는 내 판단대로, 내 의지대로 산다.

2.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해서 참고 넘어갔지만, 이제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에는 참지 않고 말한다.

3.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제 목표가 생기면 무조건 도전한다.

4. 실패해도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즐겁기에, 외로워도 괜찮다.


“외로움은 혼자라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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