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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Sep 23. 2023

나는 마음도 힙하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결혼하면서 남편을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일 예배만 따라 나가다가 서른 즈음에 세례를 받았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은 셀 모임, 한 번은 성경 공부 모임, 주일에는 예배를 나갔다. 매일 아침 큐티를 했고, 기도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들이 커갈수록 기도할 일이 많아졌다. 삶이 원래 이런 거였나? 이렇게 상처받을 일이, 속상할 일이 많았나? 열심히 기도한다고 상처받을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힘들거나 아플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행복만 가득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신앙생활을 가장 성실히 하던 그 시절,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고, 그걸 핑계로 교회와 멀어졌다.         

 



나는 믿는다. 나 자신을 믿는다.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아파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좌절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없다. 흔들리고 그래서 불안해질 테지만, 실패하고 그래서 좌절하고 아파할 테지만, 결국에는 본래의 내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만하면 마음까지 ‘힙’ 하지 않은가?

남편과 사별이라는 엄청난 아픔을 통해 얻은 ‘나’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내 능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용기를 내 교회에 나갈 수 있기를)


누군가 나에게 힘들어도 금세 털고 일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살면서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고민하고 아파해야 할 나름의 ‘힘듦’이 찾아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삶의 과정이다. 그걸 알지만, 힘든 게 지속되다 보면 우울해져,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이 길지는 않다. 나만의 철학으로 인해 바닥의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걱정이나 불안에 사로잡혀 한없이 우울한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바닥의 한계점에서 안전하게 착지한 후 다시 힘을 내 긍정의 기운을 끌어올리곤 한다. 이건 때마다 세우는 나만의 철학 덕분이다.     

줏대는 없다. 상황에 따라 생각이 바뀌지만, 때마다 소신은 있다. 정해진 답은 없고, 그때그때 나에게 맞는 철학을 세우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살아가면서 상황이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에 맞춰 내가 정립했던 나름의 철학을 바꿔도 된다. 내 마음이 편하면 그걸로 된 거다. 나는 공자도, 맹자도, 부처도 아니고, 예수도 아니다. 나는 나다. 내 삶의 철학은 내가 세우면 된다.




내가 세운 나의 철학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1.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2. 나는 나의 셀럽이다.

3. 외로움은 혼자라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외롭다.

4. 나는 온실 속의 화초가 맞지만, 아픔이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나에게만큼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기 때문이다.

5.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제대로 꺾이는 마음이다. 실패하거나 포기해도 괜찮다. 실패해도, 성공해도 내 삶은 소중하다.

6. 겸손, 남을 존중하고 나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는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인생이 내리막일 때 덜 고통받기 위해, 덜 상처받기 위해 나를 낮추고 또 낮춰야 하는 것이다.

7. 본질은 잊은 채 쓸데없이 고민하느라 시간과 감정을 낭비할 때가 많다. 내 삶의 본질은 나,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8. 행복은 가만히 있는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

9. 엄청난 일을 해내지 않아도, 대단한 성취를 이뤄내지 않아도,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것이다.

10. 들꽃처럼 살고 싶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자연스러운 그런 삶을 살고 싶다.

11. 나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 나뿐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두가 그렇다. 마침내 죽기에 살아 있는 지금이 아름답고 소중하다. 반대로 지금이 영원하지 않기에 다행이기도 하다. 행복한 순간은 영원하지 않기에 그만큼 더 귀하고, 아픈 순간 역시 영원하지 않기에 다행인 것이다.     


과부로서의 삶은, 혼자가 된 ‘나’로서의 삶은 꽤 괜찮다. 외로움은 내가 혼자라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기에, 줏대는 없지만 소신 있는 나만의 철학이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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