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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Dec 18. 2021

철들지 마.

힘들 때는 언제든 엄마에게 기대!

얼굴은 빨갛게 상기된 채 끝없이 기침을 해대며 동생에게 감기가 옮았다고 투덜대던 큰 아이 핸드폰에 벨이 울린다. 밤 열두 시가 가까운 시간, 아이가 내 눈치를 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통화를 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안방에 있던 나는 괜히 거실로 나가 책을 펼쳐본다. 책을 펼친 후 줄곧 온신경이 귀에 쏠린다. 눈은 같은 구절에서만 무의미하게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큰 아이의 두 친구가 서로 싸움이 난 모양이다. 그리고 그 두 친구가 아들에게 번갈아 전화하며 누구의 잘못인지를 묻는 것 같다.

 

“이번에 xx가 예민하게 반응하긴 했는데. 네가 xx를 예민하게 만든 거야. 저번에 네가 xx 마음 상하게 하고 제대로 사과했어? 안 했잖아. 그러니까 전에 마음 상했던 게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예민해져 있으니까 별거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 거지. 저번 그 일에 대해서 우선 네가 먼저 제대로 사과해.”

 

“OO가 자존심이 센 편이라 먼저 사과하지는 않을 것 같아. 내가 볼 때는 네가 이번에는 과민 반응했어. 네가 저번 일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어서겠지. 내가 OO한테 제대로 먼저 사과하라고 설득은 해 볼 건데,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여. 그러니까 화해하고 잘 지내려면, 네가 그냥 먼저 사과해야 할 것 같아.”

 

아들은 두 친구에게 제삼자로서 느끼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어라? 이 녀석 제법이네’


 나도 아이만 할 때 싸운 두 친구 사이에 껴서 화해시켜 보겠다고 나름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누구의 잘못인지 명확하게 보여도 당사자에게 이건 네 잘못이라 말하지 못했다. 내가 그 말을 내뱉고 나면, 미움을 사게 될까, 그 친구와 멀어질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우리 집 큰 아이는 내가 아이만 할 때 보다 더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집에서는 늘 나한테 어리광 부리고 동생한테 시비나 거는 철없는 중학생이라 생각했는데 나름 성장한 모습에 뭉클하고 따뜻한 무언가 마음에 차오른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채울 수 없는 결핍을 갖게 된 아이가 나름 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하더니, 요 며칠 감기에 된통 걸려 아팠던 그만큼 성장하여 어른스러워진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틀 앓았다고 금세 성장했을 리는 없다. 

내가 열 살 하고도 네 살이나 더 먹은 아이를 네 살짜리 어린아이로만 생각해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맞다, 그런 것 같다.

 

나를 내려다볼 만큼 훌쩍 자란 아이의 키만큼, 듬직함이 느껴질 정도로 넓어진 어깨만큼, 아이는 성장했을 것이다. 머리나 마음이 말이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단단하고 깊어졌을 아이를 여전히 나는 온전히 믿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내 마음에, 욕심에 만족스럽지 않다며 불안해하고 잔소리를 한 날이 많았다.

 

‘내가 아이를 네 살짜리 아가처럼 대하니, 나에게 어리광 부리고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릴 수밖에 없었겠구나.’

우리 집 아이는 언제 철이 드는 거냐며 볼멘소리 하던 어제의 나에게 속삭여 본다. 

‘우리 집 아이는 잘 성장하고 있어.’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마음의 소리에 안심된다. 그러자, 아이가 꾸준히 성장해 어른이 되고 철들어서도, 엄마인 나에게만큼은 꾸준히 철들지 않고 의젓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순간 투정 부리고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사람, 엄마. 이것이 엄마로서 나의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바닥에 수시로 드러눕던 그때 그 시절

 

6세였던 둘째를 업고 등산하던 오래전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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