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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Dec 24. 2021

욕심낼 걸 그랬어(1)

짧지만 강했던 이끌림.

2000년 가을, 2호선 신촌역과 홍대입구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작은 호프집에서 스피커 너머로 지오디의 거짓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 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지마)"


작은 공간이 울릴 만큼 크게 흘러나와 어쩔  없이  귀에 닿는 노래는 슬프지만,  공간에 앉아 있는 8명의 남녀는 슬픔의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오고 가는 눈빛,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호감이 마음을 적셔 핑크빛 무드가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 아침 한 여자는 평소처럼 헐렁한 셔츠에 통 큰 면바지를 입고 닥터 마틴을 신고 집을 나서다가는,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예뻐서 사두었지만 손이 잘 가지 않던 살구빛 가디건에 베이지색 정장바지를 골라 입었다. 아끼느라 잘 메지 않던 m사 백팩을 꺼내서 멨다. 그리고 평소 거의 신지 않던 하이힐을 꺼내 신었다.  


갑자기 변심해서 옷을 갈아입느라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채플에 하마터면 지각을 할 뻔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백미터 달리기 하듯 전력질주해서 겨우 채플이 열리는 대강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자는 간만에 신은 하이힐 때문에, 게다가 그 하이힐을 신고 뜀박질을 한 탓에 까진 뒷굼치가 쓰라려 채플내내 만지작 거렸다. 그러면서 뒷굼치는 까졌지만 지각을 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50여 분간 지속된 채플을 마치고 강당을 나와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향하던 길, 친구와 마주쳤다.


"이따 저녁 6시에 알지? 우리 4:4 미팅. s대 전기공학과 오빠들이랑."

"응."




그날 저녁 6시, 다시 이곳 호프집.



"신난다. 재미난다. 더 게임 오브 데쓰!"


설렘 가득한 이곳에서 게임에 신난 8명의 남녀가 마주 앉아 있었다. 두 남자는 자꾸만 살구빛 가디건을 입은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쌍커플은 없지만 길고 큰 눈을 가진 그녀는 털털하면서도 수줍어 보였다. 그 모습이 왠지 끌렸다. 여리여리한 가녀린 몸이었지만, 외모와 달리 말하며 내는 목소리는 중저음이었다. 그 낮은 톤의 말투에 자꾸만 집중하게 되었다.


살구빛 가디건 그 여자는 호프집에 들어와 미팅을 하기로 한 네 명의 남자들과 마주앉아 인사를 나누었을 때부터, 한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터였다. 까만 피부에 마른 편이었지만, 다부져 보이는 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는 그녀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말이 적은 편이었지만, 간간히 던지는 농담에 웃음이 났다. 어쩌면 웃기거나 재밌는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미 그런 건 상관 없이 미소를 지어보일만큼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설렘과 즐거움으로 가득찼던 그 공간에서의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던지 어느 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쪽지에 사랑의 작대기를!"


주선자가 외쳤다.


여자는 망설일 필요가 없이 처음부터 생각했던 그 남자였지만, 고민하는 체 했다. 쉬워보이지 않고 싶어서였다.  펜을 잡고 그 남자의 이름을 적으려는 손을 자중시키느라 한참을 애쓰던 여자는 종이를 한 손으로 가리고서 최대한 느릿느릿 그 남자의 이름을 적었다.


살구빛 가디건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그 남자 역시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남자도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결과는 이따 개별적으로 알려줄게. 오늘은 이만 해산!"


그 날 좋았던 분위기를 그대로 마무리 하고 싶었던지 주선자는 결과 발표를 하지 않고 그대로 그날의 만남을 마무리 했다.

호프를 나선 젊은이들은 아쉬움을 감추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왠지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였다.

여자는 술에 취한건지, 설렘에 취한건지 어질한 몸을 겨우 가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연락하겠다던 주선자의 연락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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