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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Dec 25. 2021

욕심낼 걸 그랬어.(2)

무겁고 힘든 이끌림.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운 여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여자가 생각한 그 남자와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는데.. 빨리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어 주선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


문자가 전송되자마자 주선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사랑의 작대기 결과 궁금해서 못 자고 있었구나?"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


서로 마음이 통한 것 같았던 그 남자가 아닌, 그 옆에 있던 남자의 이름을 말하며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묻는 법이 없던 여자가 마음속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그 오빠는..? 나는 그 오빠 이름을 적었는데 왜 다른 사람하고 연결시켜주는 거야?"

"아.. 그게 사실은.."

"응. 뭔데?"

"그 오빠도 네 이름을 적기는 했는데.. 그 오빠가 사실 여자 친구랑 싸우고 홧김에 나왔던 거라. 아직 헤어진 상태는 아니라서.."


깊은 밤 두근거리는 설렘이 잠을 쫓았던 건지 졸린 줄도 몰랐던 여자는, 주선자의 말을 들은 순간 졸음이 쏟아졌다.


"나 너무 졸리다. 끊을 게."


쏟아지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짧지만 강했던 그 이끌림을 이대로 마음속에 묻어버려야 한다니.. 왠지 억울했다. 짧은 그 몇 시간의 이끌림이 어찌나 강했던지 시련당한 것처럼 마음이 아픈 것 같았다.





다음 날, 여자는 지난밤 주선자가 연락처를 알려주겠다던 그 남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주선자가 여자의 연락처를 알려준 모양이었다.  호프집에서는 온통 여자 친구가 있다는 그 남자(호프집에서는 여자 친구가 있는 줄 몰랐던)에게 신경이 쏠렸기 때문에, 그 옆에 앉았던 남자에게까지 시선이 닿지 않았었다.

통화를 하다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여자의 이야기를 차분히 잘 들어줬다. 자상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가 다음날  당장 학교 앞으로 와서 기다리겠고 하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여자는 그렇게, 미팅 날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남자와 만나기로 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 전날 꽤 오랜 시간 통화를 했던 남자를 만나러 가는 길, 여자는 살짝 몸이 떨려왔다. 차가워진 가을 공기가 살에 닿아 떨렸던 건지, 긴장이 되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막상 얼굴 보면 어색할까 걱정이 되어서인 것 같기도 했다. 여자의 걱정과 달리, 남자와 만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낯설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남자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과에서 오늘 주점 하는데.. 같이 갈래?"


여자는 순간, 앞에서 함께 가자고 묻는 그 남자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스쳤다.

'그곳에 가면,  하룻밤의 짧은 이끌림으로 끝내야만 했던 그 남자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앞에 있는 남자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를 따라 과 주점이 열렸다는 호프집으로 들어서는 길, 여자는 자꾸만 눈치도 없이 두근대는 가슴을 토닥였다. 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느낄 실망감까지 미리 마음에 닿아 자꾸만 가슴이 그렇게 두근대는 것 같았다.  그를 본다고 해도 인사를 해야 할지,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고 해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북적거리는 호프집 안으로 들어섰다. 함께  남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여자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내지 않으려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이틀 ,  그녀가 마음을 빼앗겼던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미팅날 모자를 썼던 그는,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염색하지 않은 까만색에 짧은 헤어스타일이지만, 스타일리시하게 만져진 모습이었다. 여자는  모습에 한번  반했지만, 인사를 건네는  남자에게 고개만 끄덕였을 ,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와 시선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면, 걷잡을  없이 마음이 커질  같아서였다.


여자는 함께 갔던 남자와의 대화에만 애써 집중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여자는 사실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았다. 단 몇 초에 가까운 짧은 순간 그가 건넨 한 마디의 인사만 머리에 맴돌 뿐이었다.


집에 와서 씻고 침대에 누운 여자는,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잠을 청했다. 한참을 침대에서 뒤척여 봤지만 소용없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그녀가 쉽게 잠들도록 놔둘 리가 없었다. 전날 밤, 잠들기 전 흘러내린 한 방울의 눈물로 씻어버린 줄 알았던 그에 대한 이끌림은 여전히 여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다.


"휴..."


깜깜하고 적막한 방 안을 여자의 한숨소리가 채웠다. 그때, 여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주선자였다.


"너 아까 주점 다녀갔다며."

"응"

"그 오빠.. 여자 친구 있다는 그 오빠 너 다녀간 다음에 술 엄청 먹더니 울었다더라고."

"울었다고? 왜?"

"너한테 마음이 많이 가는데.. 가지를 못하니까 힘든가 봐."


주선자의 그 말에 여자는 용기가 생겼다. 남자의 연락처를 받아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두 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여자에게 그 늦은 시각은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두근대던 심장이 터질 지경으로 쿵쾅거렸다.





"여보세요"

"오빠. 저예요. XX에요."

"응. 그래. 왠지 연락이 올 것 같았다."

"저한테요? 오빠가 먼저 하지 그랬어요."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서..."

"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그의 '처지'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둘 사이 강한 이끌림이 긴장될 만큼 무거운 공기를 만들었다.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할 만큼 무겁고 긴장되었지만, 남자와 여자는 그 공기가 싫지 않았다. 그렇게 무겁고 힘든 마음으로 시작한 통화가 밤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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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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