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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Dec 26. 2021

욕심낼 걸 그랬어(3)

절대적인 이끌림

"오빠.. 지금 해 뜬 것 같은데요?"

"그러네.."

"나 오늘 1교시부터 강의 있는 날인데.. 지금 자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내가 모닝콜해줄게. 걱정 말고 조금이라도 자."

"네."



눈물을 훔쳐야 했을 만큼 힘들고 무겁게 시작했던 대화지만, 그 무거운 마음은 금세 잊고 핸드폰 너머로 느껴지는 서로의 마음에 젖어들었다. 어느새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서로의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이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은 며칠 전, 처음 눈을 맞춘 그 순간 이미 서로 간의 거리가 맞닿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더 갈 필요 없을 만큼. 중력에 이끌려 땅에 닿는 것처럼, 자석의 양극이 만나는 순간 철석 닿아버리는 것처럼, 둘 사이의 이끌림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우선..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


여자는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는 남자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여자 친구를 당장 정리하고 본인에게로 오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 말을 해주지 않아 서운한 것 같기도 했지만.. 남자의 말대로 당장은 다른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주점에 다녀간 후, 여자를 생각하며 울었다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연락처를 물어 그에게 전화를 건 순간부터, 이미 여자는 다른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던 것 같다.


남자와 여자는 정리할 상황이나 여자 친구가 있는 그의 처지 같은 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당장은 첫 눈맞춤으로 이미 닿아버린 서로의 마음만 생각하기로 했다.






두 시간이나 잤을까. 여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평소 알람을 몇 번이나 끄고도 일어나기 힘든 여자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여보세요?"

"일어나자. 학교 가야지."

"네. 오빠는요?"

"난 오늘 수업이 없어서. 너 모닝콜해주려고 안 잤어. 이제 자야지."

"네. 고마워요."

"학교 잘 가고. 일어나면 연락할게."


짧은 몇 마디의 대화가 이어진, 2분여간의 통화가 끝났다. 여자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두 시간 만에 들은 남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반갑고 설레던지, 통화 내내 두근대는 마음을 달래지 않고 놔뒀다. 기분 좋은 그 두근거림을 온종일 느끼고 싶었다.


1교시부터 시작된 수업은 오후가 되어서까지 이어졌다. 3시에 가까운 시간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업 언제 끝나? 우리 오늘 볼까? 다섯 시까지는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 다섯  좋아요."

"영화 보자. 코엑스에서 만나자. 내가 예매해 놓을게."

"네. 이따 봐요."


그날 당장 만나자고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여자는,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나서 급하게 나오느라 대충 세수만 하고 뛰쳐나왔었다. 남자가 만나자는 말에 무조건 예스를 외친 여자는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거울을 봤는데, 자신의 모습이 영 별로였다.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입었던 헐렁한 회색 맨투맨에 청바지 그리고 로션만 바르고 나온 얼굴은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완벽하게 꾸민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여자는 속상했지만 그렇다고 남자와의 만남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그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에 들를 시간은 없었기에 학교 매점에서 세면도구를 사서 세수를 했다. 가방 속 파우치에서 로션과 파우더를 꺼내 발랐다. 그리고 아이라이너로 눈매를 또렷하게 그렸다. 립글로스를 입술에 발랐다. 나름의 준비를 마치고 코엑스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코엑스로 가는 길, 여자는 가방 속 거울을 꺼내 얼굴을 봤다. 어디 이상한 데는 없는지 자꾸만 거울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체크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 2호선 삼성역에 도착했다.


삼성역에서 내려 메가박스를 향해 걸어갔다. 메가박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단 몇 걸음 후면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반쯤 내려갔을 때, 남자가 보였다. 남자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남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붉어진 얼굴이 부끄러웠지만, 당장 바로 앞에 온 남자 앞에서 가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빠. 저 오늘 엉망이에요. 아침에 급하게 대충 나오느라."

"그래도 예쁜데 뭐."


서로를 바라보느라, 어디에 앉자라던가 어디에 들어가자라는 말도 잊은 두 사람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 앉았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가까이 앉은 건 처음이었다. 심장 두근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 소리가 본인의 것인지 상대방의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한 시간 가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 둘의 대화는 즐거웠다.


영화 시간이 되어, 상영관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또 나란히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어두워진 그 넓은 공간은 둘을 더 서로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서로에게는 오롯이 둘 뿐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온 신경이 서로에게 있었기에 영화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근처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서로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미팅 날 그 호프집에서보다, 밤새 통화를 했을 때보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더 빠르게 흘렀다. 다섯 시 해 질 녘에 만났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었다. 헤어지기 싫었지만, 여자는 서둘러야 했다.


"버스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내가 같이 가줄게."

"오빠는요..?"

"난 그냥 택시 타고 가도 돼."


버스에서 내렸다. 걸어서 오분 정도 되는 거리에 여자가 사는 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까지 걸어가는 길, 나란히 선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걸었다. 최대한 천천히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잠시 멈춰 선 남자가 여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쯤 되면 네가 오빠 팔짱도 좀 껴주고 그래야지."

"오빠가 먼저 손잡아주길 기다렸는데요."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여자의 손을 잡았다. 영화관에서부터 그토록 잡고 싶었던 손을 잡았다. 깍지를 낀 두 사람의 그림자가 가로등 아래에 길게 이어졌다. 길게 이어진 그 가로등 아래의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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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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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부까지 이어질지 저도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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