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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Jan 03. 2022

싸이월드 일촌명:예전 그녀 (1)

예전 그 남자가 일촌 신청을 했다.

"오늘 저녁 5시에 신천역 xx 커피숍에서 만나. 핸드폰 번호 알려줬으니까 연락 갈 거야."

"응. 알겠어."


여자의 친구가 괜찮은 같은 과 동기가 있다며 소개팅을 주선했다. 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동기라며 잘해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약속 장소인 신천역 카페로 갔다. 기대하면 실망할까 봐, 마음속에 얼굴 들이미는 기대를 줄곧 고개 돌려 피하는 중이었다. 신천역 구석에 있는 카페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어서 그런가 금요일 저녁인데도 한산했다.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고, 한 남자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소개받기로 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XX 씨?"

"네 맞아요. 오늘 만나기로 했죠 우리?"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돌린 그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첫 만남에 어색할까 걱정했지만, 적당한 유머를 구사하며 적당히 수다스러운 남자 덕분에 어색함은 없이 나름 재미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준수한 얼굴에 훤칠한 키, 그리고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말투까지 그가 왜 과에서 인기남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는 처음 그를 본 순간부터 그녀가 원하던 이끌림이 없다는 것에 실망하고 있었다.


소개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할 때쯤 주선자였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땠어?"

"재미있기는 했어. 그런데 확 끌리는 건 없더라."

"네가 이끌림이 중요한 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으면 더 만나봐."

"응.  고마워."


그렇게 첫 만남 이후, 여자는 남자의 연락이 오면 받고 만나자고 하면 만났다. 네 번째 만났던 날이었나,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 사귈래?"

"..."


여자는 좋다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이끌림을 그때까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거절의 답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날은 주선자였던 친구네 커플, 그리고 같은 과 친구들까지 여럿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거절의 표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몇 분간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여자에게 친구들이 말했다.


"얘 얼마나 괜찮은 앤 데요. 거절하면 후회할 거예요."

"얘 좋다는 애가 얼마나 많은데.. 거절하면 바로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 텐데요."

"맞아요. 빨리 좋다고 답해요."


여자는 친구들의 성화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그가 괜찮은 사람이고,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에 강한 이끌림은 없었지만, 친구들의 부추김과 분위기에 휩쓸려 사귀고 나서 어느새 일주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친구에게 사소한 두근거림 정도는 있었지만, 크게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감정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와 사귀기로 한 이상 그의 여자친구로서 최선을 다해 연애를 하고 싶었기에 늘 남자친구를 배려하고 맞춰줬다. 그래서일까, 일 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둘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이 안정적인 연애 중이었다.


여자는 첫눈에 반하지 않는 한, 늘 상대에게 그 정도의 감정이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안정적인 미지근함 딱 그 정도. 지금 곁에 있는 남자친구와 일주년에 가까워오면서 여자는 고민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자 친구를 향해 갖고 있던 미지근한 이 감정이 그동안에는 편하고 안정감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요즘 들어 안정감이라기보다는 권태감이라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이제 들어왔어."

"그래. 잘 거야?"

"응."

"잘 자."

"너도."


매일 만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서로 바빠져서 주 2회 정도 만나고 있었다. 연애 초반부터 통화는 자기 전까지 핸드폰을 끼고 있어야 할 만큼 수시로, 그리고 길게 해왔다. 언제부터인가 여자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들어온 날에는 곧바로 잔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통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이 기꺼이가 아니라 억지로 꾸역꾸역 행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날부터였다.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할 줄 모르고, 상처 주는 것도 싫어하는 여자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같았지만, 외면하고 있었다. 이별을 먼저 고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만 느끼는 이 권태로움을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다스려볼 생각이었다.


남자친구에게 잔다고 하고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잘 생각도 없었다. 무의미하게 티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마땅히 관심 가는 프로가 없어서 채널 넘기는 걸 멈췄다. 싸이월드나 할 생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예전 그녀>라는 일촌명으로 일촌 신청이 와 있었다.  일촌 신청을 보낸이는 눈물로 이별해야 했던 예전 그 남자였다.  여자가 아직까지도 그토록 원하는 강한 이끌림을 느끼게 했던 그 남자였다. 일주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와 이별 후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가. 또 얼마나 그만큼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었나. 이제는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무뎌졌지만,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던 그 남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여자는 일촌 수락하기 전에 그 남자의 이름을 클릭했다. 그의 싸이월드 홈으로 화면이 넘어갔다. 군대에 갔다던 그는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여자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지만, 기억 속 당시 그의 여자친구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철렁한 이후로 요동칠 줄 알았던 가슴이 잔잔했다. 그의 얼굴을 보고서도 여전히 차분했다. 이제 그가 신청한 그 일촌명대로, 남자와 여자는 그저 과거의 인연이 된 것 같았다.


"예"


여자는 예전 그 남자가 보낸 일촌 신청을 수락했다.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왠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

.

.

.

.

몽글몽글한 그 시절 이야기, 소설 <욕심낼 걸 그랬어>의 외전,

<일촌명:예전 그녀>로 돌아왔어요.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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