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작가 Feb 04. 2022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웅이는 나의 이상형이었다.

오늘은, 지난 며칠 동안 중간에 끊고 싶지 않았지만 다 보기가 아까워, 아끼느라 끊어가며 봤던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드라마를 접한 건, 드라마 ost가 먼저였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글을 쓸 때, 음원 인기차트를 재생시켜 놓는데 상위권을 차지한 대부분의 노래가 이 드라마 ost였다. 잔잔하면서도 애틋하고, 밝으면서 따뜻한 노래들이 내 귀를 타고 들어와 뭉클함으로 가슴에 닿았다. 이 뭉클함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느꼈던 감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마지막 회를 보고서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있을 만큼 이 뭉클함은 나를 흠뻑 적셨다.  


맨투맨에 청바지를 입고 에코백을 멘 주인공 웅이의 모습은 마흔둘 아줌마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심장아 나대지 마.'


흔한 코디에 평범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이미 주인공에 몰입한 나의 시선 끝 웅이의 모습은 '댄디' 그 자체였다. 잊고 있던 오래전 언젠가 내가 마음에 품었던 이상형이 떠올랐다. 쌍꺼풀 없는 크지 않은 눈에 키는 크고 말랐지만 어깨는 딱 떨어지고 어리바리하게 생긴 사람, 딱 웅이였다.  욕심 없이 마음속 평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웅이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에 가까웠다.  


"나 우식이, 아니 웅이가 이상형이었네."


이 드라마가 인생 드라마라고 생각될 만큼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이상형에 가까운 웅이라는 인물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드라마에 빠진 두 번째 이유는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스토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 헤어졌다가 스물아홉에 재회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 주인공의 한결같은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 같으면서도, 드라마 같지 않았다. MSG가 가미되지 않은 듯 자극적이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밋밋하거나 심심하지는 않았다. 1회부터 16회까지 뜨겁거나 차갑지 않게 적정한 훈훈함을 유지했다. 36.5 도를 유지해 편안함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요즘 듣고 있는 소설 수업에서, 내가 브런치에 썼던 소설 <봄봄봄>을 읽은 강사님이


"세상에 이렇게 예쁘기만 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해 우리는 > 이 내가 쓰고 싶은 "예쁘기만 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큼은 예쁘기만 하지 못한 현실은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주인공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예뻐서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졌고, 잔잔하게 그려진 주인공 각자가 가진 아픔에 공감되어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해 우리는 공식 포스터





주인공인 웅이와 연수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꼴찌와 전교 1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에 출연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꼴찌지만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웅이의 꿈은 낮에는 햇빛 아래에, 밤에는 등불 아래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웅이와 달리, 연수는 전교 1등이지만 가난 속에 홀로 우뚝 서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소녀가장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서로 많이 다른 두 사람이 다큐 촬영 내내 티격태격하다가, 촬영 마지막 날 비가 왔던 그날의 날씨 탓을 하며 날씨가 이상해서 사귀게 되었다고 하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데는 언제나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까칠하고 이기적으로 비치는 연수지만, 술에 취한 웅이를 업고  만큼, 웅이를 괴롭히는 선배들에게 대들 만큼, 웅이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그런 웅이를 사랑하는  같다고 말할 만큼 웅이에게만큼은 따뜻하고 든든한 여자 친구였다. 깨지지 않을  같았던 둘의 사랑은 빚더미에 앉은 연수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 지지 않을  같은 가난으로 인해  웅이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결국 웅이에게 이별을 고하며 깨지고 말았다. 이유도 듣지 못하고 이별당한 웅이는 5년간 깊은 이별의 상처로 힘든 시간을 냈다. 불면증이 생길 만큼. 웅이와 연수는 서로를 사랑했던 만큼, 아파해야 했다.


5년 후, 고등학생 때 찍었던 다큐가 역주행하게 되면서 다시 다큐를 찍게 되고, 연수도 진행하고 있던 일에 건축물을 그리는 작가로서 인기를 얻고 있는 웅이를 섭외하게 되면서 재회하게 되었다. 이별의 상처가 컸던 만큼 서로를 미워하고, 밀어냈지만, 결국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던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파했던 만큼 성숙해진 둘은 5년 전과는 달리 성숙한 연애를 하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두 사람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서로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연수는 가난 속에서 힘들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웅이는 친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서 버림받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만나기로 했던 날, 친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던 아픔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도 덩달아 오열하고 말았다. 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던 어린 웅이가 안쓰러워서, 감추기만 했던 아픔을 꺼냈고 이제는 그 아픔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되어서,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만큼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워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마지막 회에서 웅이가 욕심 없고 별생각 없었어야 했던 이유가 나오는데, 그 장면이 가장 긴 여운을 남긴 장면이었다. 버려진 웅이는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만큼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 아닐까 두려워서, 완벽한 가족에 어울리는 아들이 되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살아와야 했다고 했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마음속 평온이 온전이 스스로 원했던 평온이 아닌, 키워주신 부모에게서 버려지지 않기를 위함이었다니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연수와 웅이가 서로를 사랑하며 충만해진 마음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타인이 아닌 각자가 진정 원했던 삶을 찾아 살게 되고 결국에는 부부가 되어 또다시 다큐를 찍게 되며 드라마가 끝났다. 드라마를 본 모든 사람이 백 프로 만족했을 꽉 찬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


소설을 쓰며, 소설을 읽으며, 소설 수업을 들으며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았던 요즘,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따뜻하고 예쁜 드라마였다.


아름답고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 빠져 보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 (스포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