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곡, ‘Childhood’의 한 부분. 마치 누군가에게 고백하듯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아쉬움을 한 편의 시처럼 풀어낸 이 곡의 작사가는 잭슨 본인이다.
5살부터 시작된 음악의 길은 그에게 천재성이 일찍 발현될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곧바로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삶의 그늘을 제공하기도 했다. 혹독하고 강력한 아버지의 강제와 거친 나이트클럽들을 돌아다니며 밤늦도록 같은 노래를 부르고 팁을 주워 담으며 보낸 유년기는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면 절대 가질 수 없었을 세계적 엔터테이너로서의 성공이라는 보상을 줌과 동시에 평탄치 못한 성년기라는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그에게 함께 안겨준다.
피터팬과 요정 팅커벨이 살던 동화 속 나라 ‘네버랜드’는 그에 의해 현실세계에 다시 지어졌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 위치한 여의도의 1.25배 크기인 1012만m²의 이 대저택은 개인의 주택이라기보다는 놀이공원에 가까웠다. 롤러코스터, 회전목마, 대관람차, 영화관등 24개의 놀이시설과 호랑이, 기린, 침팬지 등 다양한 동물들이 뛰어놀던 이 동화의 나라는 1988년부터 16년 동안 그와 함께 했다. 성년이 된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잃어버린 유년의 추억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자 스스로에게 보상한 선물이었다. 다만, 이 선물은 그에게 추억을 되돌려준 대신 그만큼의 대가도 수반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아 매년 2500만 달러 이상씩 부담했던 엄청난 유지비와 이 곳을 무대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그것이었다.
그는 이 꿈의 나라에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있는 아이들을 포함해 수많은 어린 천사들을 초대해 맘껏 뛰놀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지속했고, 공연 등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어린이들과는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비워두고 마치 본인이 어린이로 돌아간 것처럼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직접 어울려 노는 것을 즐겨했다. 종일 섞여서 뛰어놀고 들어와 베개싸움을 벌이다 함께 자기도 하고, 해외 공연 투어에도 데려갈 정도로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그의 모습은 동심을 잃은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비치기도 했으며, 또 천문학적 자산가인 그에게 무언가 요구를 해볼 빌미가 되기도 했다.
1993년부터 1995년, 그리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곤혹스럽고 힘든 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정말 지리하고도 수치스러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12살의 소년 조디 챈들러와 10살의 개빈 아비조. 이 아이들은 모두 잭슨이 선의를 베풀며 각별히 애정을 갖고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혐의는 ‘아동 성추행’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사건 모두 그의 무혐의와 무죄로 판결되었고,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부모들이 나서 소송 등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아이들의 거짓 증언을 유도한 의도적 접근이었음이 후일 드러난다.
그러나 결코 짧지 않았던 기소와 공판의 기간들은 이 살아있는 전설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고 무엇보다 그 스스로에게 자신감 상실과 대인기피증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안기며 끝을 내게 된다. 세계적인 팝스타, 그것도 자신의 잃어버린 유년기를 대신하는 어린이들에게 수호천사를 자처하던 네버랜드의 주인. 그런 그가 바로 그 아이들에게 해를 가한 가해자로서 조사를 받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언론, 구체적으로는 그가 저주하던 영미 타블로이드 일간지들이 이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었다. 유명인은 그 명성의 이유만으로 기소가 되는 순간부터 이미 거의 죄인에 다름없는 각종 억측과 루머의 주인공이 된다. 정말 이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잭슨이 아니었다면, 이 같은 이슈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그의 재능이 없었더라면 이미 첫 번째 사건 이후로 그는 재기불능 상태였을 것이다. 두 번의, 총 6년에 걸친 이 세기의 공판에서 그는 끝내 무죄를 입증해 낸다. 물론, 두 번 모두 육체적, 정신적으로 거의 최악의 상태까지 다다르면서.
한편, 첫 번째 공판으로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던 그 시기, 그에게 찾아온 사랑이 있었다. 그녀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며, 배우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 마이클은 1994년 5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그녀와 그의 첫 웨딩마치를 올린다. 금세기 최고의 로큰롤 가수의 딸과 살아있는 전설의 팝스타 간 결합은 그 자체만으로 전 세계의 톱뉴스였다. 그러나 이들 사이 천재 2세를 기대했던 팬들의 기대와 달리 2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은 막을 내린다. 1996년 11월 그는 돌연 두 번째 결혼을 발표한다.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 오랜 친구로 지내오던 데비 로가 그의 두 번째 인연이었다. 이듬해 그의 첫아들 프린스 마이클 1세가 태어났고, 98년에 잭슨은 둘째인 딸 패리스의 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데비와의 결혼생활도 다음 해인 1999년 합의 이혼으로 정리된다. 2002년 그의 셋째 아이 프린스 마이클 2세가 태어났고 잭슨은 아이 엄마를 소개하지 않았다. 그해 11월 독일에서 프린스 2세를 안은 채 발코니 너머로 흔드는 위험한 장면이 순간 연출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후 잭슨의 재혼은 없었다. 순조로웠다거나 평탄했다고 표현하기엔 어려운 그의 결혼 사였다.
그는 그의 이러한 고통이 창작의 외로움, 완벽을 위해 쉼 없는 자기 노력이 필요한 가수로서의 삶에서 연유한다고 말했지만 부침 많았던 가정사와 개인사 등 그의 사생활, 그리고 수많은 매체에서 다시 이를 낱낱이 공개, 확산하는 환경 또한 분명 한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고통 제공의 원인들이었을 것이다.
특히 사소한 일거수일투족까지 늘 취재의 대상이 되던 그에 대한 이들 매체들의 집요한 관심사 중 하나는 그의 외모에 대한 것이었다. 그중 그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던 피부 변색과 성형에 대한 신문, 잡지들의 논점은 대부분 자의적이고 일방적이었다. 데뷔 시절 통통하고 동그란 얼굴형에 펑퍼짐한 큰 코와 두툼한 입술을 가진 전형적인 흑인 어린이의 귀엽고 앳된 얼굴을 기억했던 사람들에게 성인이 된 후 변화된 잭슨의 외모에 대한 가십 기사들은 다양한 오해들을 불러일으켰다. 과도한 백인 지향 성향으로 흰색의 피부를 만들기 위해 전신 박피를 했다거나 백인의 얼굴형을 완성하기 위해 성형을 거듭하다 중독에 빠졌다는 등이었다. 이에 대해 그가 자서전이나 TV쇼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해명한 바 있었지만 세간은 그의 이야기보다는 타블로이드 지들의 가십에 더 귀를 기울였다. 이 관련해서 그의 사후 검시를 통해서 명확히 밝혀진 사실 중에는 그가 피부의 색소 형성이 파괴되어 군데군데 백색 반점이 나타나는 백반증(vitiligo) 환자였다는 결과가 있다.
1993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14년 만에 TV 출연을 결심했던 것도 그를 둘러싼 갖가지 오해와 억측들에 대한 해명 때문이었는데, 그는 이 방송에서 가족력에 의한 일종의 유전적 질환인 이 병으로 인해 피부 곳곳에 얼룩이 생기기 때문에 대중 앞에 설 때는 밝은 색의 메이크업을 이용해서 노출되는 전신의 피부 톤을 고르게 해야만 했다는 고충을 밝힌 바 있었다. 평소 그가 외출 시에 햇빛을 가리는 양산과 전면 마스크를 고수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성형에 대한 그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코와 턱의 경우 수술을 했지만 그 외에는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역시 사후 검사 결과 눈썹과 입술 등에 문신을 했음을 미루어보아 그가 밝힌 수술 이외에 몇몇 문신을 통해 이미지 변화를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평소 채식주의자로 마른 체형이었던 그가 특히 40대 이후 각종 소송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거식증 증세까지 겹쳐 심한 체중 급감을 겪으며 성형 부위의 좋지 않은 예후가 더 부각되어 보였다는 시각도 있다.
Michael Jackson Talks to... Oprah Live (1993)
다만 그의 자서전에도 언급되어 있는 바와 같이 아버지와 큰 코가 닮았다는 형제들의 놀림에 민감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여드름 때문에 거울을 보며 의기소침해하고 외출을 끊었으며 급기야 치료책으로 채식주의 전환을 감행했다는 사춘기의 일화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 앞에 서야 했던 연예인으로서의 강박, 엄격했던 유년기와 아버지의 기억을 벗고 싶었던 심리 등이 외모에 대한 강한 집착과 성형으로 이어지는 동기로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그의 말처럼 그의 Moon Walk는 무대 위에서는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신비한 동작이 되기도 하지만 무대를 내려온 인간 마이클에게는 평탄치 않은 달 표면 위를 혼자서 걸어야 하는 외로운 인생의 길이기도 했다. 홀로 지구가 아닌 달 위를 걷는 자에게 외로움은 숙명이 된다. 공연을 위해 전 세계 곳곳을 이동했던 그였지만 공연 뒤 수많은 팬들과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해 정작 가장 많은 시간 머물러 있어야 했던 곳은 호텔방이었고, 연습실이었고, 그리고 자신의 방이었다. 그 수많은 외로운 시간, 그 방들에서 그와 가장 가깝고도 유일한 대화의 상대는 거울 속의 남자(man in the mirror), 그 자신이었을 것. 5살부터 쉼 없이 계속된 공연과 작업의 일정 속에 계획된 삶을 살아야 했던 거울 속의 소년은 거울 밖의 그가 청년, 장년이 되는 동안 함께 외로움을 달랬지만 아쉽게도 노년은 함께 하지 못했다.
1987년 앨범 ‘Bad’에 수록된 그의 곡 ‘The man in the mirror’의 가사는 세상을 바꾸려면 당신부터 시작하라는 계몽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반복되는 이 노래의 후렴구를 감상하다 보면 수많은 날 자신의 방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 자신과 굴곡진 인생의 얘기를 나누었을 그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비단 그의 팬들만이 갖는 특별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I'm starting with the man in the mirror
(거울 속의 남자로부터 시작하네.)
I'm asking him to change his ways
(그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No message could have been any clearer
(이보다 더 명확한 메시지는 없어.)
If you wanna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Take a look at yourself and then make the change
(먼저 너 자신을 봐, 그리고 바꿔보는 거야)
Michael Jackson - Man In The Mirror (Official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