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사람들의 머리 속

내 머리속의 또 다른 세계

by 조이보이

‘작가’라는 직업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소설가,만화가 등 이야기를 쓰는 경우에 한한다.

개연성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인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가상의 또 다른 하나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그런 창작과정에서 작가들은
주요인물들의 인생을 만들어내며
그 가상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모여
새로운 법이되고 사회가 되고 이야기가 되며,
작가는 그 새로운 세계의 조물주가 된다.

그리고 화면으로 하여금 독자가 이해할수있게 표현하는 ‘연출’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고통을 수반하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일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나 오랜 생각과 번거로움과 여러번의 수정과 반복적인 미리보기를 거듭하는 작업들이다.

예술가란 흔히 두가지 대중예술가와 순수예술가로 나뉜다.
작가 역시 당연히 예술가의 범주안에 들어가는데,
요즘 말하는 좋은 작가란 그 둘의 경계를 허물고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좋은 작가’라고 대중에게 인정받는 추세같다.

작품이란 것은 결국 혼자 감상하는 것이 아닌 여러사람에게 인정받아야 더욱 값어치가 불어나는 것이며,
그 작품에 깃든 내용이 그저 순간의 것이 아닌 많은 이들의 깊은 곳 내재된 근본적인 어떤 무언가들을 도려내 담는 사람이
좋은 작가로서 인정받고있는 것같다.

좋은 작품은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가 당연히 필요하다.
아이디어란 그저 참신함이라기보다 불현듯 찾아오는 몇마디로는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듯 한가지로 느껴지는 ‘감정’]이여야한다.

감정은 사랑,우정 등 단어 몇가지로 축약되지만 ‘슬픈 사랑’, ‘행복한 사랑’처럼 하나의 감정 안에 수십가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작가는 이걸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특별한 감정을 담아낼 때, 비로소 ‘작가’가 된다.

여기서 특이점은 작가란 상당히 수시로 게으르고 슬퍼야 대중에게 각인된다.

과거의 많은 대가들은 우울했으며 슬펐다.
사람은 기쁘고 좋은 일은 금방 잊게되고, 슬프고 나쁘고 억울한 일은 오래 기억에 남고, 잊더라도 그것은 잊은게 아니라 잠시 묻어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묻어둔 슬픔이 파헤쳐질 때 크게 반응한다.

우리는 즐겁고 웃을때 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슬프고 눈물이 날땐 많은 생각이 든다.
작가는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야해서 혼자 게을리 생각에 빠져야하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미 작가의 반열에 들었을 때, 특히나 명성을 얻었다면 그 생각은 더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어 더욱 큰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된다.

자신이 살면서 느끼고 떠오르는 것을 수단을 통해 표현하고자하는 의지가 ‘작가’를 만든다.

그렇다고 꼭 슬픈 내용을 다루는 것만이 수작이 되는건 아니다.
특히 요즘시대는 밝고 긍정적인 소재를 다루어 희망을 말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만큼 작품성이 가벼워지기 쉬운게 단점이고, 그래서 순수성보다는 대중성에 다소 치우치는 경향이 많은거같은데, 그래도 더러 수작들이 나오고는 있다.
매체는 갈수록 많아지고 대중의 눈은 높아지고 있어서 더욱 수준높은 작품들을 기대하게 된다.

그에 비례해 작가라는 직업은 더욱 경쟁이 심화되고 이미 너무나 홍수사태인 상황에서 또다른 새로운 것을 떠올려야하는 두통을 안게된다.

하지만 지금을 살며 자신이 느낀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그것은 아마 무엇보다 새로울 것이고,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줄 것이다.


근데 그 불현듯 찾아오는 [복잡한듯 한가지로 느껴지는 감정]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게 참 어렵고도 아쉬운 현실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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