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삶의 시작

임신 15주

by 한 작자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태어난 이후 맞는 생일 중 2019년은 이전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임신한 이후 내 몸에는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 혼자가 아닌 둘로서 맞는 첫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다를 거 없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그래도 오늘은 운 좋게 자리가 나서 앉았다. 요즘 최애 플레이리스트 루시드폴 곡을 들으면서 갔다. '바람 또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를 듣다가 가사와 멜로디에 마음을 내주고 말았다. 생일에 듣기에는 다소 청승맞은 노래일 수 있으나 내 기분 또한 그랬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그런 날이었다.


노래는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아(처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이 가사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와는 상관없이 나에게는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과 사람의 무게에 지치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가끔은 현재 진행형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은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에 발걸음이 늘 무겁다. 입덧으로 빠진 몸무게와는 별개인 것이다.


자기 계발 서적에 심탐한 시기가 있었다. 그 책들이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라고, 나를 사랑해줘야 한다고,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내게 말했었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에 나를 태웠었다. 한 동안은 그 문장들을 열심히 되새김질했었다. 그러나 내가 탄 문장의 작은 튜브는 하루 안에서 수십 번 뒤집혔다. 그래도 터지지 않고 잘 버텨내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날, 삶에 발길질을 시작한 첫날이 있다.

이제 나도 그 발길질에 하나를 보태게 되었고, 사람들은 축하를 해줄 것이다.

수많은 하루가 지나 네 삶을 시작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나도 여느 엄마처럼 울지도 모른다.

반가워하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안에 있을 때 모두 나의 몫이었던 많은 감정들과 살아가는 것 자체의 괴로움이 이제 온전히 네 몫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함에 가슴 한편이 시큰해질 것 같다.

생일은 이제 마냥 기쁘지 않다.


배경 이미지: 두 개의 심장 by 키 큰 나무(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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