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무수히 많은 독재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그들이 지배를 하는 지배자인 자신과 그 밑에 피지배자들 모두 그 독재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박정희가 유신통치를 통해 자신의 독재를 끊임없이 연장을 거듭하던 시절 독재의 끝은 희망사항일 뿐 그 어디에서도 희망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 ~그는 죽음이 자기를 니카노르, 니카노르, 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은 우리가 모두 죽는 순간에 죽음이 우리 모두를 그 이름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는 죽음이여, 안된다고, 아직 자기의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대야에 담긴 예언의 물에서 항상 예고되었던 것처럼 자기의 시간은
어두운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동안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죽음은 아니네, 장군, 그건 여기였네,
자네가 입고 있는 거지 옷에 맨발로 있는 여기였어, } p36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족장의 가을]에서 권력의 봄과 여름을 거친 독재자는 이제 권력의 무수했던 잎사귀를 모두 떨구고 겨울을 앞둔 가을에 다다랐다. 그는 죽음의 끝에 이른 순간에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죽고 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 앞에서도 아직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배의 최고층에 머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믿었던 박정희처럼 죽음 앞에서 독재자는 끝내 죽고 마는 필멸의
우리에 속하고 말았다.
마르케스의 소설 [족장의 가을]은 인류 역사상 그 대상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무한 반복될 독재 또는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지배의 최상층부의 존재를 내밀하게 파헤친다. 라틴 아메리카 인근에 위치한 어느 작은 나라를 배경으로 마르케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연상시킨다. 마침표 없이 연속된 쉼표로 연결된 그의 문장들은 흡사 이몽룡의 어사출두 대목을 연상케 하는데, 쉼표와 쉼표를 사이로 끊임없이 등장하는 여러 명의 화자와 그 중간에 대화를 이어받는 작중 주인공인 독재자의 대화는 해설자와 주인공들이 한 사람의 소리꾼에 의해 진행되는 우리네 판소리와 같은 형식을 띤다.
{ ~그가 혐오했지만 편의상 다시 임명했던 그들은 거기서 국사를 논의했고,
그러는 동안 마당에서는 수탉들이 암탉들의 꽁무니를 시끄럽게 쫓아다녔고,
매미들은 쉬지 않고 울어 댔으며, 불면증에 걸린 축음기는 이웃 동네에서
수사나, 이리 와, 수사나, 라는 노래를 불러 댔는데,
갑자기 그것들은 조용해졌고,
조용히 하시오, 장군님께서 잠드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눈도 뜨지 않고 코를 계속 골면서,
난 잠들지 않았어, 멍청이들아, 계속해, 계속하란 말이야, 라고 소리쳤고, } p89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행간의 의미를 읽는 일반적인 소설적 읽기와는 다르게 그 장면이 보이고 들리는 소설이다.
{ ~그의 가을을 보여 주는 노란 잎사귀가 조금씩 떨어지는 가운데서
자기가 가진 모든 권력의 주인이 절대로 되지 못할 것을 확신했고,
~당신은 우리가 알고도 남는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심지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바로 삶은 치열하고 험하며 덧없지만,
그것과 다른 삶은 없습니다, 장군님,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잘 알지만, 그는 영원히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죽음이라는 몽둥이를 맞아 뿌리째 뽑히고 부러져 죽은
늙은이의 탈장되어 불거진 불알에서 달콤한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그의 가을에 얼어붙은 마지막 잎사귀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가운데
망각이라는 진리를 보여 주는 어둠의 나라로 날아갔고, } p362~364
연극에서 주인공 자신은 모르지만 해설자와 주변 인물을 통해 주인공이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이 사실에 기만당하는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고 안타까워하는 경우처럼 [족장의 가을]에서 절대 권력자인 독재자는 끊임없이 기만당해왔고 그 스스로도 자신의 삶을 기만했음을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된다. 권력을 무한하게 연장하기 위해 자신과 닮은 인물을 앞세워 대신 독살당하게 하고 자신의 위장된 죽음을 통해 정적을 제거했던 장군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 그의 죽음을 믿지 되었다. 결국 그는 이제 체제 유지를 위한 신화로서의 필요성에 의해 실제로 권력을 잃은 허수아비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조작된 신문과 매체를 통해 자신의 유일성을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않았다.
마르케스의 소설 [족장의 가을]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무한히 반복되는 지배와 피지배의 전형을 소설이라는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쉼표로 이어지는 소설의 문장을 연극배우의 대사처럼 활용하여 단지 읽기로서의 소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영역으로까지 확장해 나아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자신의 소설 [백년의 고독]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지 못할 거라는 평단과 독자의 선입견에 맞서 닫힌 마침표로 막혀 있던 문장의 물결을 쉼표로 뚫어 놓음으로써 읽는 독자를 소용돌이치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문장의 격류 속에 표류하게 만들었다.
영화 <블랙 스완>의 감독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최신 영화 <마더>에서처럼 마르케스의 소설 [족장의 가을]은 파멸해버렸지만 그 파멸된 대상에서 심장을 빼내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게 재창조하는 영화 <마더> 속 세상처럼 주인공만 바뀔 뿐 계속되는 지배와 피지배의 세상 속에서 진실이 어디에 있으며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