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서울 올림픽이 치뤄지던 1988년,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온 나라가 올림픽으로 들썩였던 그 시절을 떠올려볼 때 나는 올림픽보다는 불주사(BCG 접종)와 ‘국민교육헌장’이 먼저 떠올랐다. 불주사(BCG 접종)는 초등학교 고학년(4학년 이상)에 올라가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5학년 때 맞는 불주사를 놓고 아이들은 4학년 때부터 공포에 떨었고 왠지 이 주사를 맞아야만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통과의례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고른 줄을 발목에 묶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인디언 족의 성인식만큼은 아니지만 불주사를 떠올리며 느꼈던 그 시절의 공포는 왼쪽 어깨 위에 남은 접종의 흔적을 볼 때마다 지금도 생생하게 소환되고 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불주사만큼이나 큰 공포의 대상은 ‘국민교육헌장’ 외우기였다. 매년 6.25 즈음이면 그리던 각종 반공 포스터와 글짓기, 그리고 수시로 써야 했던 위문편지는 강제적이었지만 강압적인 폭력이 수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민교육헌장’ 외우기를 하던 교실의 풍경은 지금까지도 시대가 한 세대(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 가했던 폭력의 증거로 가슴 깊이 남아있다. 어찌어찌 외운 아이들의 안도감은 외우지 못해서 두들겨 맞고 맞으니 더 주눅 들어서 자꾸 틀려서 더 두들겨 맞는 아이들을 보고 듣는 고통 속에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비겁함과 모멸감을 가슴속 깊이 심어주었다.
아마 ‘국민교육헌장’ 외우기를 거쳤던 그 시기 이후로 나는 해가 저물면 술김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5.18의 울분을 토해내던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며 말리던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교실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는 반 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함과 비겁함은 이후에도 세상에 저항하기보다는 세상에 순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만들었다.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작품 [고양이와 쥐]가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글이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학창 시절을 겪은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 들려주는 요아힘 말케라는 동급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고양이와 쥐]는 시대적 현실 속에 저항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동조해야 했던 작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교실 내의 살아있는 권력인 급장 엄석대에게 동조하며 그의 수족이 되었던 반 아이들이 새로운 권력인 김 선생이 등장한 이후 그간의 악행을 선생님에게 고발하는 장면에서 유일하게 병팔이만 “너네들도 나빠!”라고 외치며 울었다. 전후 반전 문학의 대표 격이었던 귄터 그라스의 나치 친위대 입대 사실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작가 커트 보니것이 독일 드레스덴 폭격의 참상이 담긴 글을 수십 년이 지난 후 [제5도살장]에 담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치에 동조했던 사실은 어쩔 수 없던 시대적 현실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 목에 걸린 가시처럼 갈수록 더 그 사실을 의식하게 만들었고 그 부채감과 죄책감을 귄터 그라스는 유난히 목울대가 큰 요아힘 말케라는 인물을 통해 털어놓아야만 했다.
귄터 그라스의 작품 [양철북]에서 화자인 오스카는 누군가의 바람대로 자라나는 걸 거부해서 스스로 성장을 거부한 채 5살의 키에 머무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이방인이다. [고양이와 쥐]의 주인공 요아힘 말케는 보통의 기준보다 너무나 큰 목울대를 감추고 싶은 보통 사람이고 싶은 이방인이었다. 그는 목울대를 가리기 위해 각종 드라이버나 털방울, 넥타이, 스카프 등을 이용해서 이를 감춰보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그를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 “이젠 뭐할 거 같으냐? 내기할까, 벌써 목앓이에 정신이 없을걸!
두고 봐. 그 자식은 언젠가 목을 매든가 큰일을 해내든가
대단한 걸 발명한다든가 할 거야.” } p82
감춰서라도 아이들과 한 무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신성(성모 마리아)을 통한 구원을 갈구하지만 응답 없는 기도일 뿐이었다. 그는 엄청난 노력 끝에 수영과 잠수 실력을 길러서 아이들 사이에서 으뜸을 차지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자신의 태생적인 약점(큰 목울대)을 가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오랜 시간 잠수를 해서 난파선에서 뭘 건져 올리든 그 난파선에 그만의 공간을 만들든 수영을 제일 빨리 오래 해낸 들 언제나 아이들의 시선은 그의 목울대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 그리고 시하우 조선소에서 그 배를 훔친다 해도,
인양해서 해체하거나 새로이 수리한다 하더라도 그런 일이 네게 도움이 되었을까?
너는 군사우편에 유치하게 러시아의 전차를 끄적거려 넣고
파란 펜으로 지우는 짓을 그만두었을까?
그리고 누가 마리아를 갈아 부수었을까?
누가 우리의 정든 김나지움에 마술을 걸어 새 모이로 변하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고양이와 쥐는?
멈출 수 있는 이야기란 있긴 할까? } p139
단 한순간도 목울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말케에게 전쟁영웅이 되어 학교를 찾아온 학교 선배의 훈장은 그에게 자신의 약점을 가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훈장을 훔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말케는 이후 전쟁에 참전해서 무훈을 쌓게 되고 그 공적으로 인해 훈장을 수여받고 자신의 고향으로 휴가를 오게 되었다. 이제 훈장까지 받은 요아힘 말케는 과거 훈장을 훔쳤던 사건으로 퇴학처리된 자신의 모교에서의 강연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떨쳐내고자 하지만 퇴학된 학생에게 강연의 기회를 거부하는 교장 클로제로 인해 그의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제 자신의 목울대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마지막 시도마저 좌절된 말케에게 이제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말케는 결국 탈영을 하게 되고 자신만의 안식처인 난파선으로 도피를 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모든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는 나는 말케의 의도치 않은 자실에 동조한 채 침묵하고 말았다.
그 침묵의 대가를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고양이와 쥐]라는 글로써 고백할 수밖에 없었음을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 귄터 그라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5년 독일 드레스덴의 폭격을 다룬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서
보니것은 { ~빌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었다. } p82라고 말했다.
바꿀 수 없어서 계속 반복되는 시대적 폭력에 항거하지 못한 채 입 다물 어야 했던 사람들의 죄책감은 귄터 그라스의 [고양이와 쥐]를 통해 그리고 1988년 국민교육헌장을 외어야만 했던 나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 오늘 저녁처럼 그 초상화가 다 만들어지면
나는 그것을 쳐들어 보이며 비탄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 딱하게도 이게 바로 나라는 인간입니다!” 하고 말하지요.
논고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가 나의 동시대인들에게 내밀어 보이는 초상화는 거울로 변해버립니다.
그리하여 “이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는 대목에 이르면 일은 다 된 셈이어서
나는 그들의 진실을 폭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전락] p141
어쩌면 귄터 그라스는 알베르 카뮈의 [전락]에서처럼 [고양이와 쥐]를 거울처럼 우리 앞에 비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거울에 비치는 우리의 비겁함과 죄책감 앞에서 ‘나’는 ‘우리’에 속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