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요새에서 희망을 꿈꾸다.

#디노부차티 #책 #문학 #소설 #타타르인의사막 #문학동네

by 묭롶

[타타르인의 사막]의 작중 인물 조반니 드로고는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직급으로 북쪽 경계선인 바스티아니 요새로 첫 부임 발령을 받았다. 익숙했던 도시를 뒤로 한 채 산속 깊은 외곽에 위치한 부임지에 도착한 드로고는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넉 달 후 있을 건강검진 때 전근을 도와주겠다는 선임 소령의 말을 믿고 요새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바스티아니 요새가 군사요충지가 아닌 북쪽의 국경을 구분 짓는 경계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요새의 경계선 너머 사막을 지나 언젠가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타타르인에게서 요새를 지키고 있다는 자기 암시는 드로고를 요새에 눌러 앉히고 말았다. 요새 근무가 사 년이 넘어갈 즈음 그는 어머니의 부탁 하에 주선된 장군과의 만남을 통해 전근을 요청하지만 이미 바스티아니 요새의 인원감축 계획이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드로고가 요새 내에서 인원감축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 채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군은 드로고의 전근 요구를 묵살하고 말았다.





{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려와 테라스에 하얗게 쌓여갔다.

그 광경을 보면서 드로고는 평소보다 더 강렬한 불안을 느꼈다.

자신의 젊음과 남아있는 긴 세월을 생각하면서

불안을 쫓아버리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시간은 믿기지 않을 만큼 점점 더 빨리 지나가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른 하루를 집어삼켰다.

자기 주위를 살피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고,

벌써 밤이 내려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돌아

반대편에서 다시 떠오르며 눈으로 가득 찬 세상을 비추곤 했다. } p226




쉼 없이 바뀌는 계절처럼 반복되는 요새 근무를 해나가던 드로고는 중령이 되었지만 이제 퇴역까지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건강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요새 근무 삼십 년 동안 그토록 영웅적인 전승 기록을 기대하며 기다렸던 침략이 그동안 없었건만 정작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요새로 적이 침공해오고 드로고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시 체계 전환 과정 중에 요새에서 내쳐졌다.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싶은 그의 마지막 바람마저도 내팽개진 채 드로고는 귀향을 하던 중 묵게 된 여관의 침대 위에서 자신의 삶을 향해 다가오는 최후의 적인 죽음에 의연하게 맞서 싸우기 위해 마지막 투지를 불태운다.


조반니 드로고의 이야기를 읽으며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 가슴이 아팠다. 그가 특별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전과를 올릴 가능성이 없는 바스티아니 요새에 발령을 받고 느꼈던 좌절감과 그렇지만 뭔가 기회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보냈던 무의미하게 사라진 많은 시간과 끝내 누구에게도 무엇이 되지 못한 채 그저 죽음을 앞두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그의 이야기가 보통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라는 요새에 배치된 각각의 노역자 인지도 모른다. 그 삶이라는 요새 안에서 동료라고 믿었던 사람들 속에서 이질감과 배신감 그리고 고립감과 고독을 맛보게 되고 그 누구도 눈에 띄는 성공과 업적을 이룰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꿈꾸고 그 희망을 잡아보려 헛손질만 하다가 결국 화장터에서 한 줌 뼛가루로 끝나고 마는…………..


나는 드로고를 보면서 내가 배치된 요새를 돌아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하기도 전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회사에 입사를 하고 이십칠 년 넘게 말단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 요새에서 밀려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적이 죽음이었음을 깨닫고 그 죽음과의 마지막 싸움을 위해 의지를 다지는 드로고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그저 죽음이 오면 파리채로 파리를 때려잡듯이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최후의 마지막에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희망과 꿈을 놓지 않는 것이 또한 인간임을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 대령은 이 순간에 이르는 데 칠십오 년의 세월이,

그가 살아온 칠십오 년의 일각 일각이 필요했다.

대답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더럽혀지지 않았고 솔직하며 무적이라고 느꼈다. }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p94


{ “용기를 내, 드로고. 이게 마지막 카드야.

군인답게 죽음을 만나러 가는 거야.

엉망이 된 네 삶이 적어도 잘 마무리될 수 있게 말이지.

드디어 운명에 복수를 하는구나.

아무도 너를 칭송하지 않고,

아무도 너를 영웅이나 그 비슷한 존재로 부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지.

굳은 발로 그림자의 경계를 넘어가.

열병식에서처럼 지체 없이, 할 수 있다면 웃으면서 말이야.

그러면 적어도 내 양심은 가벼울 거야. 신께서도 용서해주시겠지.” } p279




희망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극단에 처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의 작품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대령과 [타타르인의 사막]의 조반니 드로고를 보면서 아무 족적을 남기지 못하는 삶일지라도 그 삶의 모든 과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님을 그리고 그래서 인간이 벌레나 짐승에 머무르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57년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대령과 1차 세계대전 이후 1940년에 디노 부차티가 쓴 [타타르인의 사막]의 조반니 드로고가

1857년 발표된 허먼 멜빌의 작품 [모비딕]의 에이해브 선장과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 [모비딕] p681


그렇다, 인간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 이리라.」

p133~134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절망해선 안되지. 오히려 미쳐야 돼.

폐도 없이 땅 위에서 살아보려고 물 밖으로 배를 내놓고,

어떡해서라도 숨을 쉬어 보려고 애썼던 최초의 파충류도 미쳤던 거지.

어쨌건 그래서 인간이 생겨나게 되었지.

항상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하늘의 뿌리]


1857년 [모비딕]의 에이해브 선장과 1919년 발표된 [데미안]에서 사람이 되길 바라며 태초에 던져 놓은 돌과 1938년에 알베르 카뮈가 쓴 [시지프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적인 인간 그리고 1940년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의 조반니 드로고와 1956년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의 모렐과 1957년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대령이 모두 한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왜 사람이 사람인지 그리고 왜 사람이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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