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가세상을이해하길멈출때 #뱅하민라바루트 #문학동네
새로운 2000년대의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 1] 을 본 이후로 나는 지금의 현재를 의심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지만 않았지만 그 당시
인식하는 현재에 대한 믿음 속에서 주체적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내가 인지하는 모든 것이 가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떤 것이 실제이고 어떤 것이 가상일까? 내가 아침마다 힘들게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해서 보내는 나의 모든 일상이 실제로는 프로그램에 의한 인지 작용이며 내 실체는 캡슐에 갇혀 전기 에너지나 뽑히는 신세라면......?
나는 [매트릭스 1]을 보며 내가 사는 실제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는 영화의 마지막에 구원자로 각성한 네오가 자신의 물리적 신체를 0과 1의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로 변환하는 장면에서는 영화적 상상력이 과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고 난 지금 나는 1999년에 제작된 영화 [매트릭스 1]이 양자역학 이론의 기반에서 증명 가능한 가능태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매트릭스 1]은 양자역학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확장시켜 증명한 하나의 방정식과도 같다.
1915년 12월 22일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참호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발송된 독일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슈바르츠실트의 편지에는 양자역학의 잠재태뿐만이 아니라 상대성 이론의 가설도 담겨 있었다. 그의 문제제기 이후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 드 브로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그의 가설은 실제로 입증되었고 20세기의 가장 큰 과학적 업적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 [매트릭스 1]이 양자역학의 영화적 방정식 표현이었다면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양자역학을 소재로 한 소설적 방정식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처럼 독특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매트릭스]를 봤던 그때만큼 충격적이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수학과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 이처럼 재미가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던 일이다.
이 소설의 시작은 과학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서 출발한다.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는 1907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기에서 직접 질소를 채취했다. 이후 풍부한 질소의 공급은 식량을 증산했고 곧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식량 증산이라는 업적을 통해 인구 증가를 이뤄낸 하버는 역설적이게도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염소가스를 발명해내서 수천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살상 무기로서의 잔혹함으로 인해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내에서도 염소가스의 사용은 금지되었다. 염소가스와 더불어 하버가 해충을 박멸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치클론은 2차 세계대전 중 치클론 B로 변형되어 유대인 살상 무기로 사용되었다.
소설 속 인물이자 실제 수학자와 물리학자였던 등장인물들은 지금까지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자신들의 수학적, 물리적 발견이 인류문명에 미칠 반작용을 두려워했다. 노벨평화상을 제정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고 아인슈타인의 E=mc² 이 핵폭발 운동의 이론을 제공했던 것처럼 인류 앞에 열린 신세계가 인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실제로 영화 [인터스텔라]가 보여주는 것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인류의 우주공간 탐사를 가능하게 하고 겹쳐진 시간 사이의 단층 이동 가능성을 높여준다.
{ 그의 공식에서 예측되는 공허 속에서 우주의 기본 매개변수들은 성질이 뒤바뀌었다.
공간은 시간처럼 흘렀고 시간은 공간처럼 늘어났다. 이 왜곡은 인과 법칙을 바꿨다.
슈바르츠 실트는 가상의 여행자가 이 텅 빈 구간을 지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미래로부터 빛과 정보를 받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을 볼 수 있으리라 추론했다.
중력에 찢어발겨지지 않고서 심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여행자는 마치
만화경에서 보듯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자기 머리 위의 작은 원에
한꺼번에 중첩되어 투사되는 것을 볼 것이다 } [슈바르츠실트 특이점] p68
물론 이 책에서 등장하는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의 원리는 현실세계의 일반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만약 이 원리에 의해 우리의 현재를 본다면 이것은 중첩된 시간의 곡선 속에서 움직이는 입자가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찰나의 결과물들은 모두 가능성의 결과물이기에 이를 현재의 사실로 인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 1]의 마지막에서 구원자가 된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변환되어 그 전체의 프로그램 소스 속에 침투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엔터를 치면 CPU에서 이 명령을 숫자 코드로 변환하여 우리에게 결과물을 전달하는 그 모든 과정을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양자역학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이다.
{ 전 세계를 장악한 스마트폰 뒤에는, 인터넷 뒤에는, 산과 같은 연산 능력이라는
가슴 벅찬 약속 뒤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양자역학은 우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양자역학의 역설과 모순을 감당할 수 없다.
양자역학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론 같아서 우리는 유인원처럼
그 주위를 뛰어다니고 만지작거리고 노리개로 쓸 뿐 결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 p253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수학과 물리학의 기원이 어디에 있으며 이를 연구함으로써 발견한 가설을 몇 백 년에 걸쳐 증명해 내며 그 방정식 속에서 해를 찾아내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보게 만든다. 학창 시절 수포자였던 내가 이 책을 읽고 이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진정 흥미진진하다. 이 작가가 쓴 다른 책도 꼭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