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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우화(寓話)

by 묭롶

{'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모든 걸 망쳐버렸어.

해가 질때까지 못 갈 거 같아.'

~빠홈은 달렸고 ,~목이 탔다. ~심장은 망치로 내리치듯 고동쳤으며,

다리도 자기 다리 같지 않게 자꾸만 꺾였다.

빠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모음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실린 위 단편에서 빠홈은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궤적을 자신의 땅으로 인정한다는 공고에 따라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 죽고 말았다. 그에게 주어진 땅은 묘지에 안장된 공간이 전부였다.

어린 시절 이 단편을 읽었을 때 나는 작중인물 빠홈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삼십년

가까이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내가 빠홈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스스로 불행해지고 싶은 인간은 없다. 대부분 더 나은 삶을 꿈꾸기에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그리고 또 다른 오늘을 제물처럼 바친다. 약속하지 않는 신의 구원을 갈구하는 신자처럼 더 나은 삶을 누구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태워 번제(燔祭)를 지낸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서야 빠홈처럼 깨닫는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던 것일까?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태생적 환경의 중요성을 특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누군가는 태어날때부터 금수저이고 누군가는 태어난 것을 원망해야 할 환경에 처하기도 한다.



{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걸 잃게 될 거야.

언젠가 유럽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젊은 사람들이

침을 뱉게 만들 거야.

그리고 유럽의 법과 세상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암송하게 할 거야.

~그들이 우리에 관해 쓰게 될 때 무슨 말을 하겠어?

우리가 노예로 만들었다고 쓸거야." } p120~121



여기 아프리카의 동부 해안에 태어난 유수프라는 소년이 있다. 그저 엄마, 아빠가 좋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만 아버지의 빚 때문에 고향과 부모를 잃고 아지즈라는 상인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아프리카 동부의 오지를 찾아 물물교환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한 상인 아지즈의 저택과 상가에는 다양한 인종의 고용인들이 있다. 처해진 처지는 노예이지만 노예라고 불리지는 않는 그들은 같은 아프리카에 살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서로 다른 피부색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통역이 필요한 상인의 고용인들 속에서 유수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 그는 미지의 곳 한가운데를 맹목적으로 통과하는 그들 모두가 그런 상태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느꼈던 공포는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꿈속에서 죽음의 가장자리 너머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장사를 하려고 그런 공포를 극복해가면서 그토록 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 p235




유수프는 상인 아지즈의 상단에 차출되어 차투가 지배하는 내륙지방으로 동행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미신과 무지가 지배하는 아프리카 내륙의 실상과 인간이 살기에 너무 가혹한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거짓말을 확인하게 된다. 지옥과도 같았던 상단의 여정에서 겨우 돌아온 뒤에도 유수프는 자신이 꿈꾸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고 그 무엇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을 읽으며 그가 이 작품으로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받게 된 이유를 공감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의 탄자니아 지역에 사는 유수프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그 소년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삼십년 가까이 한 내가 톨스토이 소설 속의 빠홈인것처럼 빠홈이 꿈꾸던 욕망이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가질 수 없었는지를 [낙원]은 나에게 들려준다.



{ "그들은 내게 자유를 선물로 주었어.

녀가 줬지. 그녀가 그걸 줄 수 있다고 누가 말해줬을까?

나는 네가 얘기하는 자유가 뭔지 알아.

내가 태어난 순간 가지고 있던 자유지.

이 사람들이 넌 내것이다,

나는 너를 소유한다고 할때, 그것은 비가 지나가는 것이나

하루의 끝에 해가 지는 것과 같은 거야.

~그들은 너을 가두고 쇠사슬로 묶고 네가 가진 하찮은 것까지 모두 남용하지만,

자유는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태어난 날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이것은 나한테 하라고 주어진 일이야.

저 안에 있는 사람이 이것보다 더 자유로운 것을 나한테 줄 수 있겠니?" } p292



그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벌써 인생을 어쩌면 절반도 넘게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앞만 보고 달리던 나는 멈춰서 지금 내 뒤를 돌아본다. 빠홈이 죽음이라는 결론을 맞아 끝내는 후회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였듯이 [낙원]에서 주인에게 자유를 허락받은 음지 함다니가 주인이 허락하는 자유를 거부하는 것처럼 현재의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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