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뇌파 인식기+델타파 = 볼트와 너트
지하 5층에 위치한 박상무 사무실의 회의용 탁자가 디스플레이 패널 모드로 전환되어 있고 패널에는 박상무가 그전부터 맞추고 있던 만 피스의 퍼즐 조각이 표시되어 있다. 깊은 밤, 쇼팽의 Etude Op. 25 No.11의 겨울바람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는 퍼즐 맞추기에 한참이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놓아둔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상무님, 방금 전 마지막 피실험자까지 뇌파 로그인이 되었습니다.
99명은 델타파 송출과 동시에 수면모드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계속 지켜봐."
"네."
전화가 끊기고 화면에서 퍼즐 한 조각을 떼어 패널에 이어 부치던 박상무는 정박사의 논문을 처음 봤던 날이
떠올랐다.
어디에도 고정하지 못하고 서랍에 묵혀둔 김종수의 뇌파 로그인 기술이 볼트였다면 그녀의 델타파는 너트였다. 뇌파 로그인 기술은 애초에 계획했던 보안의 영역으로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델타파를 만남으로써 특정인을 향한 뇌파 송출 가능성의 길을 열어주었다.
서로 연결되지 못했다면 절대 상용화될 수 없었던 기술을 만들어 낸 자신의 안목이 참으로 대견해서
박상무는 못내 뿌듯했다. 김종수와 정박사는 자신들의 기술이 이런 결과를 빚어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럴 기회도 없을 테지만....
지금 드림리조트 객실 내에서는 실리콘 수면 모자형으로 개발된 뇌파 로그인 기계를 머리에 쓴 피실험자들이
꿈도 없는 완벽한 수면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제 아침이 밝아 드림헤븐(비램수면 델타파) 송출이 종료된 후
이상 없이 깨어난다면 일 년 안에 드림헤븐은 특허권과 상표등록을 얻게 된다.
정박사의 아파트 안, 현관은 폴리스 라인 접근 금지 테이프가 둘러져 있다. 집 안 이곳저곳을 확인하며 외부인 출입 흔적과 폭력의 정황 등 각종 정보를 확인하느라 바쁜 장 형사에게 현관의 테이프를 한 손으로 들추고
들어온 민 형사가 말을 건넸다.
"서 로 들어오래?"
"부검결과 나왔데."
광진서 수사과로 돌아온 장 형사는 수사과장과 민 형사와 함께 부검 소견서와 현장 사진 그리고 탐문수사 및
수집된 증거들을 가지고 한 시간가량 브리핑을 진행했다. 브리핑을 듣던 수사과장이 말했다.
"부검결과로 보나 증거물로 보나 동반자살인데...."
"과장님, 하지만 유족 측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있는 침대 옆 협탁에 비워진 졸피뎀 세 통이 놓여 있는 현장사진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수사과장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증거가 말을 하는데.. 무슨.."
"여기도 적혀 있네. 장시간 수면으로 인한 탈수증에 의한 사망."
"사망자 신원이 정신의학과 박사라며. 치사량의 약처방도 문제가 없고,
다른 사건도 많은데 빨리 종결짓자고.."
"단순자살로 종결짓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외부인 출입 흔적은 없지만 평소 결근 한 번 없던 정진주 씨 남편이 갑자기 문자로 휴가를 통보한 것도
이상하고 가장 중요한 자살 동기가 없습니다."
"주변에서도 평소 다투는 걸 본 적이 없다는데요."
민 형사가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말귀를 못알아듯는 것이 답답하다는 듯 수사과장은 장형사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말 못 하는 사정이 있었으니까 둘이 해결 못하고 죽은 거 아냐."
장 형사는 부검 결과지에서 혈액 분석표를 빼서 수사과장에게 들이밀었다.
"여기 보시면 혈액과 체내 어디에서도 졸피뎀은 추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처방전 기록도 없고요. 이 정도 양이라면 기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수사과장은 짜증 난다는 듯이 브리핑 자료로 책상을 내리쳤다.
"형사면 증거를 가지고 과학수사를 해야지 왜 추측으로 소설을 쓰냔 말이지.
그럴 것 같으면 증거를 가져오라고.. 증거."
수사과장이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자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던
민형사가 참으라는 표시로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신도 과장을 부르며 뒤따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