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 남자
"엄마, 저녁은 드셨어?
몸은 좀 어때?"
병세는 떨리는 목소리를 엄마에게 들킬까 봐 전화기를 쥔 손을 다른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내가 너한테 면목이 없다. 나라도 짐이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
보호자도 없이 오늘도 혼자 투석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 불도 안 켠 방안에 누워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병세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 나 이번에 회사에서 사택이 나와서 아파트 보증금을 뺐어.
그거 엄마 계좌로 보냈으니까. 걱정 말고 치료받아."
"그래, 너도 몸 조심하고 밥 잘 챙겨 먹어."
"엄마, 이만 끊을게. 잘 주무셔."
"응."
운전석에 앉아 전화가 끊긴 스마트 폰을 홀더에 내려놓은 병세는 그대로 잠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끓어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고 자신을 괴롭히던 팀원들과 팀장의 얼굴이 떠올라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눈을 뜬 그는 조수석 아래에 준비해 놓은 철제 통을 내려다보았다. 큰 냄비 사이즈 정도의 철제 통 안에는 네 개의 동그란 돌 위에 놓인 번개탄이 올려져 있었다. 조수석 대시보드 아래 수납함에는 미리 작성한 유서가 들어있었고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한강 물에 뛰어 들까? 지하철에 몸을 던질까? 를 고민했지만 이 경우들은 죽은 시체들이 너무 참혹했기에 남은 엄마에게 너무 죄스러웠고 또 그 자신도 무서웠다.
시체를 온전하게 남기려면 약을 먹거나 동맥을 끊거나 목을 메야하는데 약은 죽을 정도의 양을 구하기 힘들고 결정적으로 피만 보면 기절할 것 같아서 손목도 그을 수가 없는데다 목을 매는 건 죽고 나서 배설물이 자동적으로 배출된다고 해서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번개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그는
실내에 가스만 차고 불은 붙지 않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그가 근무하는 더원건설은 한서대학교 인맥이 두터운 곳이었다. 사실 한서대학교가 아닌 대학 출신이 입사한 경우도 드물었고 가끔씩 특채로 들어오는 직원들도 모두 해외파였다. 그런 곳에서 병세는 혈혈단신으로 벌써 오 년을 버텼다. 건설디자인협회 디자인상 특선으로 뽑힌 그가 더원건설에 입사해 구조안전기술팀으로 배치가 된 그 순간부터 괴롭힘은 시작됐다.
자신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팀장과 그런 팀장과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대놓고 괴롭히는 팀원들 속에서 병세는 속수무책이었다.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경력을 우선시하는 업계 특성 상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버티질 못하고 그만둔다면 자신을 받아줄 회사를 찾기 힘든 상황이었고 한 달이면 최소
두 차례는 투석을 해야 하는 엄마의 병원비를 생각하면 고정적인 수입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안간힘으로 버티면 버틸수록 괴롭힘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업무 또한 정당하게 업무분장되지 못한 채 그에게 가중되었으며 프로젝트의 과정 중 생기는 모든 책임 또한 그에게 전가되었다. 결정적으로 같은 팀원인 이대리가 단톡방에 올린 글을 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아참에 출근한 이대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아이씨, 아침에 신은 건데 벌써 올이 나갔네."
주위를 둘러보던 이대리는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병세를 손짓을 하며 불렀다.
"윤대리, 요 앞 편의점 가서 스타킹 하나 사와."
입사 동기이지만 팀장의 총애를 받는 이대리의 말에 옆 자리에 있던 후배 직원들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병세는 이대리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런 건 사 본 적이 없어서요."
"뭐야? 입사동기가 그런 것도 못해준단 말이야? 사람이 왜 그래?
그럼 내가 이 올 나간 스타킹 신고 기어이 편의점에 가야겠냐고?"
이대리의 말에 무안해진 병세가 마지못해 다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며 비닐봉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병세가 건넨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본 이대리가 봉투에서 포장된 스타킹을 꺼내 책상에
내리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아. 진짜. 뭘 몰라도 이렇게 몰라. 롱스타킹을 샀어야지. 반스타킹을 어떻게 신으라고?"
이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병세는 소리 지르는 이대리를 피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모니터만 바라봤다. 팀장은 그런 그를 보며 혀를 찼고 팀원들은 저마다 스마트 폰을 보며 킥킥거리며 웃었다.
[ 이대리-병새 말이에요. 머리는 삶아 먹으려고 반쯤 털 뽑은 닭 꼬라지에 시킨 일 해온 꼬락서니 좀 보세요.-
팀장- 생긴 거 봐라. 여자나 사귀어 봤겠냐고.
정국- 눈치까지 없어서 저렇게나 버틸 일인가요. 버틴다고 천민이 진골이 되는 것도 아닌데. ]
구조안전기술팀의 단톡방은 두 개가 운영되었다. 한 개는 병세가 포함된 전체 팀원용 단톡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병세가 빠진 단톡방이었는데 주로 병세를 병새(병신새끼)라고 놀리고 따돌리는 팀의 정신적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대리가 자기들끼리 따로 쓰는 단톡방에 글을 올린다는 게 전체 톡방에 글을
올렸고 팀장 포함 다른 팀원들도 그걸 모른 채 이대리의 글에 호응글을 올렸는데 그걸 병세가 읽은 것이었다. 뒤늦게 톡방을 잘못 올린 사실을 이대리와 다른 팀원들은 확인했고 병세가 그 글을 읽었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모두들 모르는 척했다.
병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를 빠져나왔다. 더는 한시도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싶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미안했지만 이제 자신이 없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인사팀에 휴직 신청 메일을 보낸 그는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빼서 엄마 명의 통장으로 송금하고 자신의 차 안에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했다.
번개탄에 불을 붙인 병세는 운전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힘이 들까.
내 죽어 귀신이 되서라도 이 원한을 꼭 갚을 테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이 고통도 끝이 나겠지.'
병세의 감은 두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차 안은 금세 번개탄에서 피어오른 일산화탄소로 가득 찼다. 산소를 요구하는 폐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는 듯해서 목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병세의 의식은 조금씩 흐려져갔다.
병세의 몸부림이 잦아들고 의식이 둔중하고 모호함 속으로 사라져 가던 그 순간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차량의
앞 유리가 박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