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여줄 남자.

5화. 환생(還生)의 조건.

by 묭롶

화엄사 대웅전에서는 법회가 열렸다. 일제의 감시 때문에 시신도 위패도 없이 법회를 진행하는 자명스님의 가슴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삼칠일도 되기 전에 일제에 부모를 잃고 어리광 한 번 부리지 못한 채 독립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했으며 피어보지도 못한 목숨으로 스러지고 만 조카 미리내가 떠올라서 자명은 애통함에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것 같았다. 법회에 모인 사람들은 말로 할 수 없는 염원을 담아 미리내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들의 염원이 타종 소리에 실려 지리산 곳곳에 울려 퍼진 바로 그 순간 염라전의 관음 촛대에 세 번째 촛불이 켜졌다.




미리내는 감은 두 눈 위로 내리쬐는 환한 빛을 느꼈다. 쨍한 가을날 자명스님과 암반 위에서 한바탕 겨루기를 한 뒤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워 두 눈을 감았을 때 느꼈던 바로 그 햇살과 같은 빛이었다. 나른한 꿈 속에 잠긴 아이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와 같은 그 빛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가토를 죽이기 위해 자신이 그와 같이 죽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놀란 미리내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얼떨떨하고 약간 멍하기도 해서 눈을 떴지만 눈앞의 사물이 곧바로 인식이 되질 않았다. 먼저 보인 것은 그녀를 비추던 밝은 빛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떠 있는 붉은 광원이 실내를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단상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 명의 인물이 보였다.

순간 그녀는 생각했다.


'이곳이 죽은 자들이 오는 저승인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던 가운데 의자에 앉은 백발의 남자가 미리내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염라전이다. 난 염라대왕이지."


미리내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고개를 들어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원래대로라면 넌 환생할 수 없다.

살심으로 너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순간 이미 넌 소멸되었어야 했다."


"왜 제가 환생할 수 없나요?"


-"자살한 사람은 환생하지 못한다."


"전 자살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넌 자살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너 자신을 죽였다.

지금 내 뒤에 타오르는 세 개의 촛불이 보이느냐?"


말하는 염라의 오른쪽 뒤편에 놓인 세 개의 촛대에 켜진 촛불이 환하게 일렁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을 관음 촛대라고 한다. 너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저승까지 닿았을 때 이 초에 불이 붙는다.

첫 번째 촛불은 바로 너의 부모가 널 놓고 세상을 버린 그날 마지막 순간까지 부르짖던 너였다.

두 번째 촛불은 널 기르고 가르친 네 스승의 피눈물이다.

세 번째 촛불은 너를 아는 사람들이 너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그 염원을 모아 올린 기도지.

보통의 망자들은 한 개가 대부분이고 많으면 두 개의 촛불을 피우는데 그치고

더러는 한 개도 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로 너처럼 세 개의 촛불을 켜는 자는 저승에서도 예외를 인정한다. "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 사실은 넘치는 사랑으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미리내는

다시 살고 싶어졌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주먹을 꼭 쥔 그녀가 염라에게

물었다.



"그 예외는 무엇인가요?"


-"그건 내가 얘기하마."


염라 옆에 자리 한 백발의 할머니가 말을 꺼냈다.


-"나는 삼신이다. 내가 널 점지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수명을 가지고 태어난단다.

자살자가 환생을 하지 못하는 건 바로 그 수명의 실을 자신의 손으로 잘라버렸기 때문이지.

뿌리가 잘린 화초의 줄기가 줄기를 땅에 꽂는다고 살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손으로 자른 실은 다시 이을 방도가 없어.

그런데 넌 그자와 함께 죽을 각오로 널 찔렀기에 네 실을 스스로 자른 겪이지."


"그럼 전 어떡해야 하나요?"


-"네 실을 다른 자의 손을 빌어 다시 잘라야 한단다."


"그걸 누가 할 수 있죠?"


간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미리내의 얼굴을 바라본 삼신은 잠시 망설였다. 마침내

삼신은 한숨을 쉬며 힘들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가 목숨을 끊은 자 만이 너의 실을 자를 수 있다."


삼신의 말을 듣는 순간 미리내는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껏 해서 원수의 목숨을 끊었더니 그자의 손에 내가 죽어야 다시 환생할 수 있다니...

그런데 이미 죽은 자의 손에 내가 어찌 죽을 수가 있나.'


혼란스러운 미리내의 표정을 본 삼신은 그 모습이 안쓰러운 듯 잠시 말을 멈춘 채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래 이 모든 게 혼란스러울 테지."

하지만 모두의 기도로 어렵게 얻은 기회니 그 기회를 허투루 버리진 않아야지."


삼신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미리내가 다시 고개를 들어 삼신을 바라봤다.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네가 죽인 가토가 환생하여 전생에 죽임을 당한 나이 서른둘이 되는 때부터 일 년 안에

네가 그의 손에 죽는다면 너는 환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일 년이 되는 그날까지 죽지 못하면 넌 그대로 소멸된단다."


"그럼 절 죽인 가토의 환생은 그걸 어찌 감당하나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넌 어차피 세상에 없는 존재이고 네가 죽거나 소멸되는

순간 너에 대한 그의 기억은 사라진다."


삼신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미리내가 답했다.


"하겠어요. 어찌하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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