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해.

2화. 물개부녀와 물먹은 하마 엄마.

by 묭롶

'첨벙.'


서준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수영장에 입수한 순간 물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솟았다. 입수를 해서도 한참을 잠수해서 앞으로 나아간 그가 접영 동작 몇 번에 출발선 반대편 수영장 벽면을 발로 차서 몸을 돌린 뒤 출발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가 출발한 옆라인에서는 딸아이 별아가 아빠보다는 느리지만 빠른 속도로 돌아오고 있었고 먼저 스타트라인에 도착해 있던 서준은 그런 딸의 동작을 주의 깊게 살폈다. 부녀가 수영장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동안 엄마인 민정은 인간 수건걸이가 되어 그들을 기다렸다.


"팔동작과 발동작이 맞아야 해.

숨을 쉴 때도 음 파 할 때 팔동작 이렇게...."


스타트 라인에서 몸소 딸에게 시범을 보이는 서준은 열심이었고 별아도 어지간한 수영강사보다 잘 가르치는 아빠를 아는 탓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딸아이는 잘 가르치는 서준이었지만 민정은 뭘 가르쳐도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


서준은 결혼에 대해 특별한 로망은 없었다.

딱 하나......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아침에 배우자와 조깅을 하고 저녁에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신혼 초 그가 시도했던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단 걸 깨닫게 해 준 그녀였다.

그녀와의 배드민턴은 많아야 두 번을 주고받는 게 가장 잘한 경우였고 서브를 아무리 가르쳐도 헛손질이 다반사에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셔틀콕을 쳐서 보내도 그녀는 콕이 이미 지난 간 3초 뒤에 몸이 반응했다. 발로 차는 건 좀 나을까 싶어서 공차기를 시도했더니 얼굴로 공을 받아 쌍코피가 터진 이후로는 그녀는 공만 보면 떨었다.

회사에서 남직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찬 그녀가 이토록 운동 고자일 줄은 그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아빠아빠, 근데 엄마는 왜 수영 가르쳐줘."


수영장 풀 바깥으로 나온 그 둘에게 인간 수건걸이인 민정이 빠르게 다가와 서준에게 긴 타월을 건네고 자신은 딸아이에게 다가가 타올로 몸을 감쌌을 때 딸아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민정을 바라본 그는 그 순간 입사 초기 워크숍이 떠올랐다.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네 엄마한테 물어봐라. 왜 그러는지."




서준이 입사한 첫날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바로 자신의 책상 위에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 액자를 올려둔 것이었다.

콜센터의 특성상 남직원이 적은 탓에 상담센터 직원들의 시선과 관심은 자연스럽게 서준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사진액자 속 인물을 일부러 지나가는 걸음에 곁눈질로 확인한 여직원들은 그를 단념해야 했다. 언뜻 보기에도 경쟁자의 외모 수준이 상당해서 굳이 스스로 거울을 보며 비교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일지라도 젊은 남직원이 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상담센터에는 묘한 설렘이 감돌았다. 주말에 신입 직원들과의 단합을 위한 동강 래프팅을 앞둔 금요일이어서 직원들은 오랜만에 들떠 있었다. 딱 한 사람 한민정 팀장만 빼고.......


단합대회 당일 아침 민정은 고민으로 밤을 꼴딱 세워서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데 래프팅이라니 어린 시절 물놀이의 트라우마 때문에 물은 씻는 것 외에는 접하지 않는 그녀에게 래프팅은 사형선고와 같았다.

팀 행사인데 팀장이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녀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지만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해야 했다.


버스에 탑승한 여직원들은 서준의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를 놓고 눈치게임을 벌였다. 그의 탑승에 맞춰 같이 올라가 좌석에 따라 앉으려는 여직원들이 세워져 있는 버스에 올라타지 않고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미리 버스에 탄 민정이 피곤한 눈을 감고 있을 때 버스에 올라탄 서준이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그냥 직원이 앉았겠거니 생각하고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서준이 그녀의 곁에 앉자마자 낭패한 표정의 여직원들이 얼굴에 낭패와 아쉬움이라는 짐을 얹고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버스는 그렇게 강원도 동강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가 톨게이트를 거쳐 두 시간 정도를 달리는 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의 어깨에 얹어진 무게가 느껴지자 그녀는 눈을 떠서 자신의 옆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든 서준을 발견한 순간 민정은 화들짝 놀랐다.

명백히 성별이 다른 자신의 부하직원이었기에 그의 몸에 손을 대서 그를 깨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수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휴게소에서 정차를 할 텐데 이를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그녀는 그 모습을 다른 직원들에게 들킬세라 살짝이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지만 평소 과중했던 업무 탓에 팀원들은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초조한 그녀의 마음이 통했던지 버스가 과속으로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충격으로 그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어깨를 기댄 채 잠든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눈을 감고 있는 자신의 팀장을 살폈지만 다행히 잠이 든 것 같아서 그는 몸을 바로 세우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래프팅 행사장에 버스가 도착해서야 그제야 잠이 깬 것처럼 민정은 과도하게 기지개를 켰다. 제발 저린 서준이 먼저 버스에서 내린 뒤 민정과 팀원들이 따라 내렸다.

래프팅은 여섯 명씩 네 개 조로 나뉘었다. 강사의 설명을 듣고 구명조끼를 입고 안전모에 안전화를 신고 장갑까지 낀 그들은 강사를 포함해서 일곱 명씩 래프팅 보트에 탑승했다. 민정은 서준이 같은 팀이 아닌 사실에 안도했고 서준과 같은 팀이 된 여직원들은 환호했다.


"여러분. 긴장하실 것 없어요. 이곳은 유속도 느리고 물이 얕아서 절대 빠져 죽기가 힘들어요.

아시겠죠. 그럼 출발합니다."


강사의 덕담과 같은 얘기를 들은 민정은 이미 물을 본 순간부터 위기감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이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손에 쥐고 있는 노를 갤리선의 노예처럼 온 힘을 다해 젓기 시작했다.

팀원들과 속도를 맞춰서 저어야 하는 노를 혼자서 내젓는 그녀 덕분에 래프팅 보트는 얼마 가지 못해 전복되었다. 어른 가슴 정도의 깊이여서 물에 빠진 팀원들은 이내 강바닥에 발은 딛고 몸을 일으켰다.

단 한 명 한팀장만 빼고......


물에 빠지는 순간 눈을 감은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발버둥 치기 시작하자 구명보트를 입은 그녀의 몸이 물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녀는 돌면서 물에 빠져 꼬르륵 물을 먹었고 발버둥 치면서 수면으로 돌아 나왔다가 다시 물속으로 빠지며 빙글빙글을 연속했다. 팀원들은 팀장이 새로운 장난을 치나 싶어 신기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고 보트에 있던 강사는 다른 팀원들을 챙기느라 그런 그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었다.

바로 그때 수영장 에이스였던 서준은 위기를 직감하고 보트에서 내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미친 듯이 무한 반복으로 물을 먹으며 정신을 놓은 팀장을 어렵사리 구해서 물가로 옮겨놓은 서준이 말했다.


"아.. 이건 완전히 물먹은 하마네."


워크숍 이후 한팀장의 별명은 '남직원'에서 '물 먹은 하마'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