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해.

8화. 그녀의 속사정.

by 묭롶

민정이 서준을 데리고 간 곳은 포장마차였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은 그녀는 국수 두 그릇과 곰장어구이 그리고 소주 두 병을 주문했다. 서빙하는 직원이 곧 기본안주와 소주를 가져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민정은 썰어진 오이를 한 조각 집어들어 입에 넣고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씹으며 소주병 뚜껑을 따서 그의 앞에 잔과 함께 놓아주고 자신도 한 병을 따서 소주잔에 한잔을 따랐다. 소주잔을 들어 올려 서준에게 어서 술을 따르라고 권하는 그녀를 서준은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 하자는 건가요?"


"한 잔 해요. 오늘 잘 자고 나면 어쩌면 내일은 좀 더 살만해질 거예요."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는 서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제가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먹는 데는 이골이 나서요.

계속 그러고 있을 거예요? 마셔요."


한숨을 내쉰 서준이 소주를 잔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이제 말해봐요."


그녀의 말에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왜요?"


"난 오늘 서준 씨의 팀장으로 여기 왔어요.

그럼 답이 됐나요?"


그녀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짓던 서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일단 무단결근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이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어졌어요."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누구나 뭔가를 시작하는 건 쉬어요.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고 학교도 회사도 다 같죠.

하지만 내가 시작한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건 힘들어요.

그리고 제대로 맺지 못한 일들은 평생 후회로 남게 되죠."


민정은 왼쪽 손목에 걸려 있던 팔찌를 풀어 손목을 서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내 후회의 흔적이에요."


그녀의 손목을 본 서준은 깜짝 놀라 당황했다.

손목에는 베인 상처를 십여 바늘 넘게 꿰맨 자욱이 선명했다.


"이거 지퍼처럼 보이죠?

마음이 안 좋을 때 이걸 보면 다시 열고 싶어져서 가리고 다녀요."


서준은 담담하게 말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매사에 그토록 당당하고 팀원들을 위해서는 몸을 사리는 법이 없어서 여성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별명도 남직원인 그녀가 어찌 저리 여린 속살을 숨기고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는 마음이 짠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달라진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채 민정은 곰장어구이를 배추에 싸서 한 입 가득 욱여넣고는 씹기 시작했다. 소주 한잔을 털어 넣은 그녀는 손목에 팔찌를 다시 채웠다.


"미칠 것 같아서 술을 마시는데 그런 내 맘도 모르고

그 순간에도 살겠다고 쿵쾅거리며 흐르는 내 피가 싫어서 칼로 그었어요.

그런데 참 우습죠. 힘을 제대로 못 줘서 끝내지 못했죠.

그런 내 모습이 참 비겁해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어차피 나를 못 죽일 거라면 날 내가 책임지기로 했어요.

그 길로 새벽에 응급실에 걸어가서 열 다섯 바늘을 꿰매고

아침에 바로 출근했죠."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왜 나만 이렇게 힘든거냐며 원망으로 가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상처를 보는 순간 그는 이미 깨달았다. 자신만 그런 게 아니었다고.....

누구나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비겁해지고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며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지만 결국 스스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겉으로 누구보다 강한 모습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인정하는 한 여자가 그의 눈앞에 앉아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곰장어구이를 먹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국수까지 한 그릇을 잘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내일 회사에서 봅시다."


그는 그를 자리에 남겨두고 걸어가다 뒤로 돌아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다시 걸어가는 자신의 팀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