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해.

11화. 불면증과 두통과 식이장애라는 고통의 트라이앵글.

by 묭롶

회사에서 민정은 평소처럼 행동했지만 고객상담 2팀의 김팀장이 활약한 덕분에 영업팀은 드러내놓고 그녀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를 밟고 올라서야만 진급에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김팀장은 영업팀에 딱 붙어서 그녀를 성토하는데 앞장섰고 그런 회사 내부의 분위기는 고객상담센터 1팀에 불안감을 조장해 갔다.


그런 회사 분위기 속에서 팀원들은 그 와중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을 대하는 팀장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불면증으로 인한 두통은 약이 소용없을 지경이 되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두통 때문에 그녀는 곧바로 구토가 올라왔고 불면증과 두통, 식이장애가 겹치면서 살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줄어드는 체중과

더불어 탈모도 진행이 되는 통에 평소 그녀만 보면 패악질을 부리기 바빴던 그녀의 엄마마저 그녀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민정은 아침에 출근을 위해 씻고 거울을 볼 때마다 상태가 나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담담했다.


'그래, 마음이 아픈 것보다는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나아.

적어도 엄마가 조심은 하니까.'


오늘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민정은 없는 힘을 억지로 끌어올려 미소를 지어보았다.


'팀원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출근을 한 그녀는 태엽 인형처럼 활기차게 움직였다. 아침 회의를 진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팀원이 있는지를 살폈으며 보고서를 상신했다. 팀원들이 점심을 권했을 때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자마자 두통이 몰려왔다. 그녀는 팀원들에게 괜찮다며 점심 식사를 다녀오라며 그들을 내보낸 뒤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두통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렸다. 어설프게 눈을 떴다가는 머리가 쪼개질까 봐 조심스러워서 그녀는 꼼짝도 못 한 채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으면 좋으련만 무수히

많은 걱정거리들이 떠올라서 그녀를 이리 떠밀고 저리 떠미는 통에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의 생각

전원을 끄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가 두통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녀가 있는 팀장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포장죽이 담긴 쇼핑백을

든 서준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팀장을 살폈다. 그는 조심스럽게 쇼핑백을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소리 없이 팀장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팀장실을 나와 탕비실로 갔을 때 먼저 와 있던 팀원들 몇몇이 팀장에 대해 걱정스러운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더는 못 보겠어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안잖아요."


"뭘 해야 팀장님께 도움이 될까요."


팀원들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매일 묻는 팀장이 정작 도움이 절실해 보이는 자신은 도움을 청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팀원들에게도 고통이었다. 이러다 한팀장이 문제라도 생겨서 옆 팀의 김팀장 같은 사람이 오게 되면 정말 큰일이라는 현실적인 위기감에 그들은 직면해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팀장을 지켜야 했다. 서로 얘기를 나누던 팀원들은 탕비실로 들어서는 서준을 보고는 그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서준 씨는 어떡하면 좋겠어요? 이대로는 큰일이잖아요."


-"팀장님이 고민이 많아 보이시는데, 허심탄회하게 얘길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역시, 서준 씨 좋은 생각이네요. 당장 날을 잡죠."




그렇게 팀원들은 팀장을 배려해서 조용한 한정식 집에 저녁모임을 잡았다. 팀원인 수진을 통해 내용을 전달받은 민정은 몸상태가 좋지 않아 내키지는 않았지만 팀원들의 성의가 고마워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팀장의 고민을 공유하자며 모인 자리였지만 누가 먼저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주제였기에 팀원들은 서로 분위기를 띄우려다 팀원들 모두 술을 과하게 마시게 되었다. 특히 민정은 차라리 술을 마시고 잠을 잘 수 있으면 몸 상태가 더 나아질 것 같아서 팀원들이 권하는 잔을 피하지 않았고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는 식당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렸다. 영업 종료를 알려야 하는 식당 주인은 한참을 망설이다 민정 옆에 앉아 자고 있는 서준을 흔들어 깨웠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다른 팀원들은 귀소본능에 의해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였고 그의 눈앞에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민정의 모습이 보였다.


차마 그녀를 깨울 수 없었던 서준은 그녀를 들쳐업고 일단 식당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집 주소도 모르는 그로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그녀를 근처 벤치에 기대어 앉히고 집 주소를 알기 위해 팀원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취해서 잠이 들었는지 통화가 되지 않았다.

계속 송신음만 울리는 통화의 종료버튼을 누른 그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 곁에 앉아 잠든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등짝이 푸짐한 게 완전 아줌마였는데 어쩌다 저리 빠졌을까.


처음 봤을 때라면 업는 게 무서웠을 텐데 생각보다 가벼워져버린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는 그냥 그녀 곁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러다 바깥에서 오래 있어서 그녀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 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목록 중 엄마를 누른 뒤 통화를 기다렸다


"지금 너 어디야?"


그녀 엄마의 화난 음성이 스마트폰을 당장이라도 뚫고 나올 듯 크게 들려왔다.


"그게 팀장님이 잠이 들어서요. 혹시 자택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음성이 들려오자 민정의 엄마는 놀란 눈치였다. 이내 그녀는 그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는 잠든 그녀를 택시에 태워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택시가 급히 좌회전을 할 때 그녀의 몸이 그에게로 쏠려 그의 어깨에 머리가 기대어졌을 때 그녀가 잠꼬대처럼 입을 열었다.


"나, 집에 가기 싫어. 집이 싫어."


꿈속에서도 싫은지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서준이었지만 왜인지 그 모습에 자신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온몸을 찌르는 것만 같은 살기 어린 그녀 엄마의 눈초리를 견디며 그녀를 침대에 눕힌 서준은

현관문을 빠져나오며 그녀를 집으로 아니 엄마에게 데려다준 것이 어쩌면 잘못한 일인 것만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밤안개가 자욱한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오며 그는 자신에게 기댔던 그녀의 무게와 그녀에게서 풍기던 얕은 향기가 아직까지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했다. 술기운 탓이라며 애써 자신에게 변명한 그는 이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밤은 그녀가 잘 자기를 밤하늘의 달님에게 빌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