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해.

14화. 다이아몬드 사건(3).

by 묭롶

부사장의 지시로 미셀의 보험 사기 사건에 대한 특별팀이 꾸려졌고 민정은 팀장으로 전보 발령이 났다. 발령 난 그날부터 민정은 법무팀과 추심팀에서 차출되어 온 팀원들과 대응방안에 대한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그녀는 먼저 법무팀을 통해 미국 시민권자인 미셀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과 더불어 통신사와 금융사에 정보공개 신청을 지시한 뒤 추심팀의 전문인력을 통한 공범의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퇴근을 한 이후에도 그녀는 대책방안을 모색하느라 온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밥을 먹던 중 수저를 손에 쥔 채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만약 내가 미셀이라면 그 큰 금액을 어디에 숨겼을까?

어차피 수중에 쥐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금액은 정해져 있는데

도피 자금을 어떻게 한 걸까?'


저녁을 먹으며 TV드라마를 보던 민정의 엄마는 TV화면에 남녀주인공의 청혼 장면이 나오자 차려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공상 중인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고. 저게 말로만 듣던 5부 다이아구만. 팔자가 좋은 년이네. 저런 것도 받고..."


그 순간 생각에 잠겨 있던 민정의 귀에 엄마의 말 중 '다이아몬드'라는 단어가 들린 순간 그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래, 다아아몬드. 그렇지."


그녀는 밥을 먹던 숟가락을 식탁 위에 올려둔 채 식탁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가서 노트북을 켰다.


'다이아몬드라면 어디서든 현금화가 가능하지.

만약 그걸 세공해서 장신구로 만들어 착용하고 비행기를 탔다면..

그래. 이제 말이 되는군...

일단 그렇다면 그걸 되팔기 위해서는 세계 공통의 인증서가 발행되는 곳에서 다이아몬드를 구입했을 테고

그걸 세공하기 위해서는 품질 보증을 위해 같은 곳에서 장기간에 걸쳐 세공을 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다음날 밤새 검색한 자료를 보고서로 작성한 민정이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그녀의 책상 위에는 미셀의 2년간의 입출금 기록과 통화내역이 올려져 있었다. 법무팀이 시간을 다투며 급히 진행을 해서 보름 만에 발급받은 자료였기에 그녀는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자료부터 검토하기 시작했다.


부사장 주재로 열렸던 1차 대책회의에서 미셀의 도피처로 싱가포르를 지목한 그녀의 예상대로 매월 상당한 금액이 싱가포르 시티 은행 계좌로 입금이 되었고 최근 일 년간은 매월 송금액이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상태로 동일 계좌에 대한 이 년간의 송금액 합계는 6억 원에 달했다.


'2년 동안 6억이라 미셀은 그동안 한국에 있었는데 미혼인 그녀가 왜 그 큰 금액을

싱가포르로 보내야 했을까? 누구에게 보냈을까?'


그 순간 언젠가 그녀가 업무 유관회의차 영업팀을 방문했을 때 사무실을 지나다 무심코 미셀 FC의 책상을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민정의 기억법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서 그녀는 눈에 띄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처럼 그 장면을 머릿속에 찍어서 기억했다. 미셀 FC의 책상 위에는 액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액자 속에는 활짝 웃는 미셀과 교복 차림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얼마나 아끼는 조카이길래 미혼인 미셀이 자신의 책상 위에 액자로 올려놓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까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만약 사진 속 아이가 싱가포르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녀는 그 즉시 인터폰을 눌러 특별팀 팀원들을 팀장실로 호출했다. 곧바로 팀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팀원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모두가 착석한 것을 확인한

민정은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지금 미국 쪽 범죄인 인도 요청은 어디까지 진행됐죠?"


-"네. 현재 미국 법무부 내부 결재 진행중입니다."


"그럼 서류적인 부분은 일단락된 거네요. 이제 법무팀은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싱가포르 경찰청에

미셀에 대한 긴급체포와 국내 송환 절차를 준비해 주세요."


-"네. 마침 정변호사님이 검찰 차장검사 출신이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추심팀은 오늘부터 미셀의 사진을 가지고 GIA 다이아몬드 보증서가 발행되는 세공소들을

돌면서 미셀이 접촉한 곳이 어딘지 파악해 오세요."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그녀의 지시를 받은 팀원들이 팀장실을 빠져나간 뒤 그녀는 싱가포르 국제학교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까이 모니터로 사진을 검색하던 그녀가 마우스를 클릭하던 손가락을 멈추고 화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찾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UWC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사진이 표시되어 있었다.

화면에서 이미지를 다운로드한 그녀가 급히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완성한 그녀는 출력키를 누른 뒤 프린터에서 출력된 용지를 빼내어 결재판에 넣고는 부사장실로 향했다.

부사장실에 들어서자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사장실 문을 두어 번 노크했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자 비서는 그녀를 대동해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고 부사장이 고개를 들어 민정을 쳐다볼 때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아.. 한팀장 왔나.

일각이 여삼추야. 경과과정 설명부터 듣세."


"부사장님, 현재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가장 높은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때

지금이 사태 해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때라고 판단됩니다."


-"그래, 내가 뭘 도와야 하겠나?"


"부사장님 일단 자료를 보시죠.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로 봤을 때 미셀은 사기를 통해 취득한 거액의 현금을 다이아몬드 장신구로

가공하여 착용한 채 싱가포르로 도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싱가포르에 있는 UWC에 다니는 누군가에게 장기간 학비로 보이는 거액을 매월 송금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미셀은 그 주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부사장은 저도 모르게 그 순간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먼저 현재의 추론이 맞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이아몬드 회수를 통한 사고액의

추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다이아몬드가 미셀이 부정한 방법으로 아이피생명의 공금을 횡령하여 취득한

장물임이 입증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경우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인 미셀의 위 사실을 인정한다는 본인 서명 날인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특별팀에서는 먼저 경찰에 다이아몬드를 횡령에 의한 장물로 신고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미셀을 잡아 다이아몬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헛수고이기 때문에

도피처 확인 후 싱가포르 경찰의 긴급체포와 국내 송환절차가 동의되어야 합니다.

이미 법무팀 정변호사가 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부사장님께서 검경 쪽 인맥을 동원하셔서 이 절차가 성사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알겠네. 내가 어떻게든 해낼 테니 한팀장이 계속 수고해 주게."



미로를 들어설 때 풀어놓은 실을 되감아나가며 출구로 나아가는 과정처럼 민정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미셀이 싱가포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심사에서 그녀가 착용한 고액의 장신구는 별도 검문의 대상이 되었다. 공항 내 특별 조사실로 옮겨진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다이아몬드 보증서와 구입 영수증 날짜로 해당 제품이 자신의 소유임을 싱가포르 세관에 입증했지만 워낙에 고액의 제품이었던 탓에 세관은 그녀가 머물 예정인 싱가포르 내 거주지 주소와 보증인 입보를 조건으로 그녀를 풀어주었다.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은 맺어지지 않았지만 금융범죄에 대해 엄격했던 싱가포르 경찰은 싱가포르 외교부와 인맥이 있던 아이피생명 부사장의 입김과 대한민국 경찰청의 공조 요청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