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국경찰과 아이피생명 법무팀에 미셀과 다이아몬드가 든 007 가방을 넘긴 민정은 그제야 병원까지 동행하겠다는 팀원을 만류한 채 혼자서 공항 인근 종합병원을 찾았다. 응급실에 접수를 하고 응급실 병상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응급실 레지던트가 다가와서 스카프로 대충 묶어
놓은 상처를 살폈다.
-"일단 지금 상태로는 진단이 불가능하니 오염된 부분을 소독한 뒤에 인대나 다른 부분에 손상이
없는지 엑스레이를 찍어보죠. 혹시 임신 가능성 있으신가요?"
의사의 말을 들은 민정은 그제야 머릿속으로 달력을 헤아려보았다. 미셀건에 매달려 근 두 달을 정신없이 지내느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요즘 그전과 달리 잠을 너무 잘 자고 있었다.
혹시나 싶은 민정이 의사에게 말했다.
"확실치는 않은데 확인 후 엑스레이를 찍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우선 오염된 어깨 부위 상처를 소독한 뒤 임신테스트 시약을 받아 든 민정은 화장실에서 선명한 두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민정이 자신을 담당했던 의사를 보고는 씩 웃었다.
"엑스레이는 못 찍겠네요."
그녀는 이미 지혈은 되었지만 칠 센티미터 정도 가로로 벌어진 어깨의 상처를 꿰매야 했다. 간단히 부분마취 후 어깨의 상처부위를 봉합하는 의사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왼쪽에는 내가 낸 칼빵, 오른쪽에는 남이 낸 칼빵. 참 파란만장하구나.'
상처부위를 꿰매는데 자꾸 혼자 웃는 민정을 응급실 담당 의시는 연신 왜 저러나 싶은 표정으로 자꾸 쳐다보았다. 그런 의사의 시선에도 상관없이 완전한 내편 만들기에 돌입했다는 기대감에 민정은 자꾸 웃음이 나왔다.
불행한 가정에서 불우한 유년시절과 성장기를 보내며 자란 민정에게는 꿈이 있었다. 자신은 행복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이만큼은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자란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물론 사랑받고 자란 자신의 아이는 본인처럼 엄마를 미워하는 대신 자신도 사랑해 줄 것이 분명했기에 아이가 생긴다면 지금과는 달리 그녀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가 있어야 했다. 서준에게는 미안했지만 이건 지금까지 그녀의 불행했던 삶에 대한 하늘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어깨 치료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아이피생명 본사로 향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회사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해야 했고 바로 지금이 그 기회라고 생각한 그녀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10층에 있는 부사장실로 향했다.
방문한 그녀를 발견한 비서가 문에 노크를 하기도 전에 부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부사장이 직접 문 앞까지 나와 그녀를 반겼다.
-"자네가 이번에 정말 큰일 했네.
그래. 다친 곳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보고가 먼저 급해서요."
-"그래, 그래, 앉게, 앉아. 앉아서 얘기하세."
"우선 부사장님께 죄송한 말씀 먼저 드립니다.
다이아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미셀의 동의서를 받기 위해 미셀이 횡령한 금액 중 딸의 학비
UWC에 선금으로 들어간 6억을 협상카드로 써야 했습니다.
물론 미리 확인한 바에 의하면 UWC의 학비는 돌려받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미셀은 이미 싱가포르로 도피 전부터 딸의 친구 엄마인 진수림에게 돈을 주고 진수림 앞으로
핸드폰과 통장을 개설했으며 그 명의를 이용해서 다이아몬드를 한 개씩 되팔아 도피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습니다.
다행히 다이아몬드 제품을 훼손하기 전 빨리 회수가 되어 경찰 측에서 장물 등록 내용 확인 후 반환을 받은
뒤 재판매를 통한 보험사고액의 추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몸까지 다쳐가면서 일을 수습했으니 정말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보험 사고 피해고객들에 대한 대응이 또 문제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래, 이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네가 특별팀을 계속 맡아주게.
그나저나 너무 고생을 해서 자네한테 회사를 대신해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원하는 게 있나?"
"부사장님 사실 말씀드릴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뭔가. 걱정 말고 뭐든 얘기하게."
"제가 임신을 해서 팔 개월 뒤에 출산휴가를 가야 합니다. 그로 인한 불이익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녀가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부사장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애써 진정하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의 사생활이고 자네는 이 회사의 인재네. 그런 걱정 말게."
"감사합니다. 저는 그럼 후속 조치를 위해 나가 보겠습니다."
부사장과의 면담을 끝낸 뒤 특별팀으로 돌아가 오후 업무를 마무리한 민정은 야간 진료가 가능한 회사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7주가 넘어 8주 차로 접어들었다는 초음파 사진 속 아이는 암흑으로 가득한 우주 속에 빛나는 별처럼 보였다. 산모수첩에 붙여진 초음파 사진을 보는 민정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지독한 어둠으로 가득했던 나의 삶에 별처럼 찾아온 나의 아이야. 넌' 사랑'이구나.'
그녀는 아이의 태명을 '사랑'이라고 지었다.
만면에 웃음꽃이 피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민정이 발걸음도 가볍게 병원문을 열고 나올 때 한구석에서 그녀의 스카프를 돌려주기 위해 회사에서부터 그녀를 뒤따랐던 서준은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충격으로 굳어진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