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필요해.

19화. 서준이 들려주는 우리들의 이야기.

by 묭롶

"내일 촬영가?"


카메라 렌즈 가방에서 렌즈를 한 개씩 꺼내어 정성스럽게 먼지를 털어내고 세척액을 뿌려 렌즈를 닦는 서준을 본 민정이 보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고 그에게 물었다.


-"응. 인천. 내일 펜타포트 페스티벌 프레스 나가."


"그래. 난 당신 공연 사진이 참 좋더라. 이번에 인스타 팔로우 더 늘겠네."


-"난 공연 사진도 좋지만 우리 별아 찍을 때가 제일 좋아."


이번에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설정값을 확인한 뒤 SD카드 슬롯 1과 2를 체크한 서준은 셔터와 부속품을 카메라 가방에 챙기기 시작했다.


"서준 씨, 요즘 밤마다 뭘 쓰는 것 같던데. 그거 뭐야?"


가방을 꾸리던 서준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실은 내가 브런치 작가 등록을 했어. 그래서 첫 번째 작품으로 우리 얘기를 써보고 싶었어."


"뭐야. 그럼 나도 나오는 거야?"


-"소설이니까 픽션이 가미되긴 했지만 당신은 지금처럼 멋지고 강한 사람으로 나와."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응.. 오늘 밤에 마지막화를 쓸 거야."


민정이 서준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태블릿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 뒤 그는 노트북의 화면보호기

암호를 입력한 뒤 '사랑이 필요해 ' 마지막화를 쓰기 시작했다.




주말 저녁 저녁상을 서준과 민정이 차리고 있을 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에 있던 별아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는 친할머니를 먼저 발견하고는 쪼르륵 달려가 냅다 안겼다.


"할머니...."


품 안에 안긴 손녀가 예뻐서 눈을 맞추고 연신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이곳저곳을 살피던 할머니가 손녀의

팔꿈치에 붙여진 밴드를 보고는 놀라서 다급히 상처를 살폈다.


"이거.. 그냥 넘어진 거야. 난 괜찮은데 가리봉동 할머니는 팔이 부러졌어."


그제야 소파에서 일어나 팔에 기브스를 한채 자신에게 다가온 사돈을 알아본 서준 엄마는 눈이 휘둥글해졌다.


-"사돈.. 어쩌다가...."


식탁을 차리던 민정이 걸어 나와서 시어머니의 손을 이끌어 소파에 앉혔다.


"엄마.. 성격이죠. 놀이터에서 별아가 넘어질 것 같으니까 그 성격에 급히 별아한테 간다는 게

본인이 먼저 넘어져서 손목뼈가 부러졌잖아요."


사돈에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민정에게 그녀의 엄마는 부끄러우니 그만하라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 그런 눈치도 모른 채 그녀가 또 말했다.


"말도 마세요. 지난번에는 바지를 급히 입는다고 서둘다가 바지 밑단에 발가락이 끼어서 발가락이 골절됐지

뭐예요."


서준의 엄마가 난감한 표정으로 사돈을 쳐다보자 민정의 엄마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조. 그냥. 환장하겠어요. 머리도 시원허니 못 감고.

사돈도 그저 조심해야죠. 이 나이는 부러지면 안 붙어요.

하긴 사돈이야 매사 조용조용 조심조심이니. 그럴 일도 없겠지만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갈비찜을 그릇에 한가득 담은 서준이 식탁 한가운데에 찜을 올려두고 모두를 불렀다.


"엄마. 얼른. 손 씻고 오셔. 다들 저녁 먹자고요."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자 별아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느라 조잘조잘 애기꽃이 피었다. 두 할머니들은 손녀의 말에 연신 웃음꽃이 피었고 젓가락질을 못하는 민정 대신 갈빗살을 바른 서준이 연신 그녀의 앞접시에 고기를 놓아주었다. 민정의 앞접시에 놓인 고기를 본 그녀의 엄마가 사위에게 핀잔을 줬다.


"김서방. 여기 팔 부러진 자네 장모도 있네."


그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같이 웃던 민정이 앉아 있는 가족을 한 사람씩 둘러보았다.

어쩌면 이런 행복을 위해서 그동안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겪어왔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그녀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서준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그녀가 그 힘든 시간 동안 그토록 기다려왔던 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밝게 비춰 줄 이 사랑은 아니었을까?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눈동자에 그 사랑이 빛나고 있었다.




'그 사랑이 빛나고 있었다'에 마침표를 찍고 노트북을 닫은 서준이 이미 잠이 든 딸아이 별아의 방문을 열고 아이의 이불을 여며준 뒤 안방문을 열고 자신만의 빛인 민정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그를 보며 웃는 순간 그는 온몸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행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