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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Feb 11. 2024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C.G.JUNG]

나는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를 읽으며 예전에 봤던 C.G.JUNG(칼 구스타프 융)의

『인격과 전이』를 설명하는 도식인 『현자의 장미원』그림이 떠올랐다.  내 짐작대로

헤르만 헤세가 1920년에 융의 심리치료를 받은 후 집필한 책이 『황야의 이리』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해 나가지만 그 과정은 저마다

개인의 기억 속에 경험으로 축적될 뿐 사회적으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겪었던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융의 심리치료를 받으며

그 과정을 문학적 결과물(『황야의 이리』)로 남겼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작중 인물 하리 할러(자신을 황야의 이리라고 자칭하는 인물)의

수기를 읽은 남자는 저자에 대해 몰랐다면 미치광이가 쓴 글이라고 던져버렸을 거라고

고백한다.  이는 헤르만 헤세가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이다.  아마 작중인물에

대한 소개 없이 곧바로 하리 할러의 수기가 시작되었다면 이 책은 어쩌면 황당무계한

환상을 기록한 허무맹랑한 글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잘 유지해 왔던 삶이 뒤집어질 정도로 큰 위기를 겪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타인을 

원망한다. 그리고 그 원망의 화살은 때로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 결과 과거에 잘 유지됐던 나의 

겉모습에 대한 회의로 새로운 나로 살아가길 희망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한 나의 모습들을 단절한 채 새로움을 꿈꾸며 만든 새로운 자아는 어딘가 이상하고 스스로가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이 경우 

과거의 나(실패한)들이 현재의 나를 비웃고, 이로 인해 내가 어떤 겉모습을 취해야 할지 선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 문단은 극우 민족주의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 반대 입장에 섰던 

헤르만 헤세는 정신적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문단의 공격을 받아 매장되기에 이른다. 

작중 인물 하리 할러의 울분과 자기 살해 욕구는 당시 헤르만 헤세의 심리상태와 일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어쩌면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헤르만 헤세는 융의 심리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 융이 그에게 어떠한 치료를 했는지 그 구체적 과정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황야의 이리』를 읽고 

융이 그의 저서 『인격과 전이』에 나오는 『현자의 장미원』의 과정을 심리치료에 이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았다.


도식의 과정을 이 책과 대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자의 장미원』  1. 메르크루리우스의 샘.

메르쿠르리우스는 자기 자신을 잉태시키고, 죽이고, 삼키고 다시 잉태하는 뱀으로, 메르쿠르리우스의

샘은 한 인간의 심리 속에서 생겨나고 없어지는 심리의 순환고리를 도식화한 그림으로,

『황야의 이리』의 작중인물 하리 할러의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 분열, 붕괴 상태에 놓인 초기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현자의 장미원』  2. 왕과 여왕.

이 도식에서 왕과 여왕은 각자 서로의 반대 성질, 남성의 경우 아니마(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여성은 아니무스(여성의 억압된 남성적 특성)를 의미한다.  이는 대표인격(겉모습)

에 가려진 무의식의 영역으로 작중인물 하리 할러는 자신의 억압된 심리를 투영한(전이의 대상)

아니마적 인격인 헤르미네(여성이지만 남성인 헤르만과 같은 자신의 분신)를 만들어낸다.


 


                       「"네가 소년이라면, 네 이름은 틀림없이 헤르만일 거야 "  ~


                                     "내가 정말 헤르만인지 누가 알아요.  


                         단지 변장을 한 것뿐인지"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네 이름은 헤르미네가 아닌가?"


        그녀는 내가 이름을 알아맞힌 것이 기쁜 듯 얼굴이 환해지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 p152


 


『현자의 장미원』 3. 벌거벗은 진실.

이 단계의 중요한 점은 인격의 전이가 이뤄지는 상대 인격(ex: 하리 할러의 아니마적 인격 헤르미네)과의

융합이 시도된다는 점이다.   그 융합의 과정에 쓰이는 것이 바로 마리아의 공리(하리 할러와 헤르미네를

연결하는 인물명이 '마리아'인 점도 흥미롭다)이다.  4개의 원소(태앙과 달, 왕과 여왕)는 마리아의 공리에

따라 3 위성에서 2->1로 이뤄지는 융화의 과정을 거친다. 


『황야의 이리』에서 헤르미네가 하리 할러에게 '마리아'를 보내서 그를 기존과 다른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과정이 이 단계에 해당된다.


 


                                          「나는 쓸쓸하게 거실의 불을 끄고,


                                                 쓸쓸하게 침실로 들어가,


                                             쓸쓸하게 옷을 벗던 참이었다. 


                             그때 처음 맡아보는 내음 때문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눈을 돌려 둘러보자 침대에 아름다운


                                        마리아가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가 왔어요.  화나셨어요?"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다 알고 있어. 


                       헤르미네가 열쇠를 준거지.  그러니 할 수 없지.」 p193


 


『현자의 장미원』  4. 욕조에 몸을 담그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 도식에서 보았던 폐쇄적인 (한 사람의 심리) 메르쿠르리우스의 샘과  다른 욕조

(심리 영역의 확장, 무의식의 영역)가 등장한다. 이 욕조에서 바로 전이의 과정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의식(하리 할러)이 무의식(헤르미네)으로 녹아들어 융합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바로 융화를 통한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헤르미네의 말은 모두가 그녀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혜안을 가진 헤르미네가 내 생각을 읽고,


                            거기에 숨을 불어넣어 다시 나에게 제시함으로써,


                       내 생각은 모양이 잡혀 새롭게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내 친구이자 춤 선생인 그녀가 오늘 나에게 성스러운 피안,


                                  무시간적인 세계, 신성한 실체와


                      영원한 가치의 세계를 다시 선사해 준 것이다.」 p219


 


『현자의 장미원』  5. 융합.

이 단계에 대해 『인격의 전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융합의 시간에 가장 위대한 기적이 나타난다." 


                           즉 이 순간에 현자의 아들, 또는 라피스lapis가 생긴다.


                           ~즉, 융합은 하나인 것, 하나로 된 것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사라져 버린 빛의 인간의 재현이다. 」 p266~268


 


이제 둘이었던 몸은 마리아의 공리(Axiom der Maria)에 의해 하나가 된다.  이 단계는 심리 치료의 과정 중

받아들일 수 없는 현재를 무의식에 전이시킴으로써 현재 억압상태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이 춤에서 헤르미네는 그녀의 우월감에 찬 냉소적이고 침착한 태도를 잃었다. 


           그녀는 나를 사로잡기 위해 더 이상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는 춤에, 눈초리에, 키스에, 미소에 자신을 다 바치고 있었다. 


                    열에 들뜬 이날 밤의 모든 여자들, 나와 함께 춤을


                  춘 모든 여자들, ~내가 사랑의 동경을 품고 바라보았던


                    모든 여자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한 여인이 되었다.


                   바로 그녀가 내 팔에 안겨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p243


 


『현자의 장미원』  6. 죽음.

 

이 단계를 『인격과 전이』에서는 "하나의 파괴는 다른 하나의 생성이다."p277고 말한다.  

이 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다음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데미안』 p123


 


이제 하리 할러의 아니마적 인격 헤르미네를 통해 전이된 억압된 무의식과의 결별을 통해 현재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이상한 나라의 폴이 영원히 그곳에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자살을 유보해 왔던 하리 할러는 자신이 어떻게 현재를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지를 자각하게 된다.


 


                                     「축제에서 남은 시체는 이미 새로운 몸,


                       즉 양성자Hermaphroditus(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와 아프로디테-


                                           비너스의 융합)이다.」   『인격과 전이』p278


 


->「이제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그녀가 완전히 나의 것이 되기 전에 나는 내 연인을 죽인 것이다.


~덜덜 떨면서 나는 돌처럼 굳어버린 이마를, 뻣뻣해진 곱슬머리를,


싸늘하게 식어가는 창백한


귓바퀴의 미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거기서 물결쳐 나오는 냉기는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면서도 아름다웠다. 


그것은 울림이 있었고 놀라운 비약이 있었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그렇다, 모차르트에게서, 저 불멸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p298


 


괴테가 그렇게 얻으려고 했던 불멸의 울림이 예기치 않은 곳에서 울려올 때 삶의 예기치 않음은

하루하루 자살을 유보하며 살아가는 자살 예고자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과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과의

화해가능성을 깨닫게 해 준다. 


 


         「삶은 기술과 정신없는 활동, 추한 욕구와 허영심을 이념과 현실 사이에,


                         오케스트라와 귀 사이에 어디에고 밀어 넣는 것이라네. 


          인생이란 그런 거라네.  우리는 그걸 있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네.


                      그러니 당나귀가 아닌 이상 우리가 웃지 않을 수 있겠나. 


                                    ~우선 듣는 법부터 배우게!


                진지하게 여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게.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은 비웃어버리게나.」 p302


 


 윗글은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기 힘들어 수십 개의 인격을 가면처럼 갈아 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헤르만 헤세가 주는 귀한 경험담이다.  수렁에 빠져 그 끝에 발을 딛고서야 여기가 바닥임을 알게 된 사람이 들려주는 경험담이기에 대부분이 몽환적이고 충격적이라고 표현한 이 책이 내게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정상적인 가치를 지닌 사람이 돈키호테나 바보취급을 당하는 세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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