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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1화. 꽃님이와 큰돌이.

머리가 멍하고 묵직하게 모호한 상태에서 나는 어떤 막 같은 것에 쌓여 있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낀 나는 눈앞에 보이는 애벌레막을


손과 발로 뜯으려다....


 '아니.. 이게 손도 아니고 발도 아니고

  다리가  네 개가 넘는 것 같은데.....'


아무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을 뜯어 입에 집 넣었다.  막을 다 먹고서 손이 맞는지 모를 무언가로 얼굴 쪽을 무심결에 비비는데 뭔가 더듬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더듬이의 존재를 느낌과 동시에 여왕개미와 동료개미들이 보내는 전파신호가 더듬이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신호의 주된 의미는 여왕개미의 위치와 음식물이 있다고 발견된 장소에 대한 정보 공유였다.  하지만 방금 막 1회 차 환생을 한 나는 개미들이 보내는 신호 따위를 따를 생각이 없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소중한 동생 큰돌이가 있다.  


'큰돌이에게 가야 한다.'


그렇게 무작정 알껍질을 벗자마자 개미굴을 탈출한 나는 여섯 개의 손인지 발인지 다리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부지런히 놀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마구 기어가기 시작했다.  

한나절 내내 기어서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질 것 같은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어느 초가집 마루로 기어올라가는 데 성공한 나는 저녁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야 방안에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더 부지런히 기어갔다.  아기로 환생한 내 사랑하는 동생이 벌린 입 속으로 하얗게 빛나는 떡 두 개를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그 황홀한 웃음에 따라 웃으며(개미가 웃을 수 있나? 아무튼 마음으로 크게 웃으며) 아이에게 다가간 나는 금세 죽었다.


아기가 까르륵까르륵 웃느라 벌어진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턱밑에 침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고 그 웅덩이에 빠진 나는 끈끈이 같은 침 속에서 곤죽이 되어 1회 차 환생을 종료하고 말았다.  






조선왕조가 개국한 이후 고려에 충성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충신들은 처형당했고 그의 식속들은 죽거나 살아남은 소수마저도 노비가 되어 이곳저곳으로 끌려갔다.   병조판서 댁 행랑채에 사는 꽃님이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어렴풋이 누군가 자신의 목에 염주 목걸이를 걸어주며 자신을 장독대 사이에 숨긴 것 같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병판인 배재학 정승의 행랑채에도 개국 공신의 상으로 내려진 각각의 사연을 지닌 노비들이 모여 살았다.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못 하게 된 개똥이라 불리는 어멈이 어린 꽃님이와 한 방을 쓰게 되었고 그들은 가족은 아니지만 그렇게 함께 살게 되었다.


아직 어린 꽃님이가 개똥어멈이 하는 옷수선을 거들고 있던 어느 날 밤 방문 밖에서 행랑채 아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똥이 자네 있는가?  좀 나와보소."


 말은 못 하지만 귀가 밝은 개똥 어멈이 수선하던 옷을 내려놓고선 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이미 해시도 지나 자시가 되어 가는 밤중에 시커멓게 형체를 드러낸 아범의 발아래 놓인 조그마한 뭉텅이가 어멈의 눈에 띄었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어멈은 두려움에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에 혀를 찬 아범은 눈으로 발아래 뭉텅이를 살폈다.


-"어린것이 어디로 도망치겠다고...... 쯧쯧.. 추노꾼들이 이 밤에 잡아서 데려왔다네.

  이 지경이면 송장 치르라는 밖에 더 되는가."


말을 마친 아범은 뒷짐을 진 채로 그들을 나 몰라라 뒤로 한채 걸어가 버렸다.

아범이 문을 열고 나간 뒤에야 어멈은 조심스레 마루에서 내려와 짚신을 신고 쓰러져 있는 뭉텅이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숨이 붙어있는지를 살폈다.  간신히 붙어있는 목숨을 확인한 어멈은 그대로 바닥에 있는 아이를 안아 들고 방 안으로 들였다.  꽃님이는 눈치껏 이부자리를 펼쳤고 그 위에 아이를 눕힌 어멈은 황급히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불 위에 누워 있는 아이는 꽃님이보다 서너 살은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이의 얼굴은 상처와 버짐으로 뒤덮였고 몸 또한 성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이 아이는 기를 쓰고 도망을 쳤을까.'


개똥어멈이 대야에 더운물과 닦을 천을 가져오자 꽃님이는 부지런히 아이를 닦기 시작했다.

열에 들떠 몸을 덜덜 떠는 아이를 보고 개똥어멈은 고개를 흔들었지만 꽃님이는 제 한 몸으로 아이를 감쌌다.


"내 동생 할래요.  내 동생 할 거예요."


몸으로 막아서는 꽃님이를 어쩌지 못한 개똥어멈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옆에 이부자리를 펴고 촛불을 껐다.

밤새 꽃님이는 열이 펄펄 끓는 아이의 몸을 천을 갈아가며 몸을 닦아 주었다.  

아이는 사흘 밤낮을 앓고서야 눈을 떴다.  열에 들떠 기억을 잃은 듯 다시 눈을 뜬 아이의 시선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저 옆에 앉아 있던 꽃님이의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꼭 잡았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린 아이의 모습에 기쁜 꽃님이가 옆에 놓여있던 물 한 사발을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먹었다.  


"너 이름이 뭐야?"


그녀의 물음에 한참을 생각하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내가 이름 지어줄까?"


그녀의 말에 아이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큰돌이 어때?  넌 이제 아프지도 않고 누구보다 센 큰돌이 되는 거야."


아이는 좋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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