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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4화. 환생 사진관.

언뜻 보면 시골마을의 오래된 성당처럼 보이는 사진관은 사면이 각각의 문양으로 칠해진 스테인드 글라스 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바깥은 환하게 밝은 태양이 비추고 있었지만 채색된 창을 투과해 들어오는 실내의 빛은 바깥과는 다른 빛으로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   사진관 주인이 하릴없이 창문 너머 바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닫힌 문 틈으로 개미 한 마리가 기어 들어왔다.  기어 오는 개미를 본 사진관 주인은 소리 내어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미련한 것.

  내 이미 말하지 않았나.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그 아이와 같은 시간을 살 수 없다고..."


사진관 주인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널브러진 개미를 손가락으로 집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개미는 다리로 더듬이를 문지르더니 한참을 더듬이를 움직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개미를 카메라가 세팅된 맞은편에 놓인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  이제라도 내 말 알아들으니 다행이야.  그럼 다음 생으로 넘어가자고.

  찍는다.. "


카메라 옆에 설치된 플래시가 팟하고 터짐과 동시에 찰칵하고 사진이 찍힌 뒤 사진관 주인은 현상실 안으로 들어가서 액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액자에는 하루살이 한 마리가 찍혀있었다.  한 손에 액자를 든 그는 액자 위에 개미를 올려놓고는 넓은 홀로 되어 있는 공간으로 걸어갔다.  사면에 놓인 스테인드 글라스를 투과한 각각 다른 네 개의 빛이 겹쳐지는 가운데 공간에 놓인 원형의 탁자에 그가 개미가 올려진 액자를 올려놓자 곧 눈부신 빛과 함께 그 위에 놓인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꽃님이의 2회 차 환생이 시작되었다.




바닥에 누워 있던 꽃님이는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큰돌을 찾았다.  분명 큰돌과 함께 멍석말이를 당해 함께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던 그녀는 목이 터져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숲 속을 헤매었다.   그렇게 한참을 숲길을 걷던 그녀의 눈앞에 탁 트인 공간이 보였고 그곳에 있는 건물을 발견한 그녀는 어쩌면 큰돌이 그곳에 먼저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건물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큰돌아.  너 여깄 니?"


-"큰돌이 벌써 갔는데....."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꽃님은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다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옥구슬로 만든 염주가 부딪히는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순간 그녀가 목에 건 목걸이를 바라본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기요.  우리 큰돌이 어디로 갔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간절하게 그에게 두 손을 모으고 부탁을 했지만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던 그가 마침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나

참담해서 그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큰돌을 찾아야 했기에 다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우리 큰돌이가 여기 왔었나요?"


안경 너머로 남자의 서늘한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꽃님은 순간 소름이 돋아 저도 모르게 몇 발짝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동방삭이라고 하네.  이 사진관의 주인이지.

  자네 동생 큰돌이는 방금 전 소금 장수 김서방 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네."


그의 말이 믿기지 않는 꽃님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믿기지 않겠지.  여기 오는 대부분이 다들 그래.

  난 그런 이들을 다음 생으로 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네.

  그런데 말이야. 그 옥염주 말일세.

  그 물건은 내가 자네 할머니에게 준 것인데...."


꽃님은 자신의 목에 걸린 옥염주를 손으로 잡아들고 눈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실내에 들어온 순간부터

옥염주에서는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경황이 없었던 꽃님은 그제야 그 사실을 알아챘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어릴 적 누군가 제 목에 걸어줬어요."


-"그래, 그 난리통을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는 없었겠지.

  자네 할머니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명왕의 고모였네.  

  그 옥염주를 그녀에게 줄 때 난 그 물건 주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다네.

  약속은 약속이니 이제 말해보게.  자네의 소원은 무엇인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나 옥염주에 얽힌 이야기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큰돌을 찾아야 다는 생각만 앞섰던 그녀는 그의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제 동생 큰돌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동방삭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단호한 표정의 그녀를 본 그는 이내 생각을 돌린 듯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말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야.  달리 인연이라 하겠는가.

 인연을 억지로 맺는다는 건....."


말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감정이 격해진 동방삭은 목이 메는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에 마음을 진정시킨 동방삭이 그녀의 눈을 다시 힘주어 마주 보았다.


-"그래.  정 그렇다면 자네는 이제부터 98번의 환생을 거쳐 99번째에 이르러서야

  그와 같은 시대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네.  끝내 감내하겠는가."


"네.  얼마든지요."


기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동방삭은 단호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98번을 환생하는 동안 그를 스칠 수는 있으나 그와 함께 할 수는 없다네.

  그리고 사람으로 환생하기 전까지는 환생하는 동안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네.  내 말 알겠는가."


꽃님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큰돌과 함께 살 수만 았다면 99번이 아니라 999번이라도

자신이 있었다.  (물론 모든 일은 겪어보지 않고는 자신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그녀는 환생을 거듭하는 동안 거듭제곱으로 깨닫게 되고 말았다.  )


말을 마친 동방삭은 그녀를 카메라 맞은편 의자에 앉게 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그녀는 개미가 인화된 사진 액자를 가슴에 안고 개미로 1회 차 환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전 03화 99번의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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