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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5화. 하드락 포차.

주방에서 계란말이를 썰던 태석의 눈에 수조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하드락 포차의 단골이었다.  그가 포차를 시작한 뒤 그녀가 데려온 남자는 서너 명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가 바뀌어도 남자들을 대하는 여자의 헌신적인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항상 자신보다 남자를 먼저 챙기는 그녀의 모습이 요즘 사람 같지

않아서 그녀가 포차에 올때마다 그는 그녀를 눈여겨보곤 했었다.  


'오늘은 왜 혼자지?  또 실연당했나?'


"아얏!"


수조 앞에 서 있던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태석은 음식을 썰던 칼을 그대로 든 채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가락에 오징어 한 마리가 대롱대로 매달려 있었다.  죽은 오징어는 못 물지만 산 오징어는 물 수 있는데 수조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으니 오징어가 빨판으로 미끼를 물 수밖에.

오징어에 물린 그녀는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오징어를 떼어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손에 그대로 들고 온 칼을 뒤늦게 인식한 태석이 칼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그녀의 손가락과 오징어를 조심스럽게 떼어 놓았다.


태석이 겨우 떼어낸 오징어를 손에 들고서 그녀를 바라봤을 때 그녀는 오징어에 물려서 울었는지 물리기 전부터 울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울어서 딸꾹질을 하는 그녀에게 그가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 있는 물을 따라 건네주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물을 마신 뒤 그를 쳐다보았다.


"나 문 오징어.   꼭 그놈으로 썰어주세요."


그 말을 하고는 다시 자기 테이블에 앉은 여자를 보며 태석은 당황했다.  


'이미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굳이 산오징어회까지 먹겠다니...

그래도 손님이 해달라니. 어쩔 수 없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 태석은 손에 든 오징어를 주방으로 가져가서 얇게 회를 쳤다.  오징어회를 들고 그녀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소주 한잔을  따라 마신 그녀가 오징어회를 한 젓가락 가득 집어서 초장에 푹 찍은 뒤 한 입 가득 밀어 넣었다.   그제야 뭔가 마음에 드는지 흐뭇하게 웃는 그녀를 뒤로 하고 태석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모회를 썰기 시작했다.  


밤 열한 시가 넘어가자 손님들이 한 팀, 두 팀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태석의 눈에 테이블 위에 엎드린 오징어에 물린 단골이 보였다.  밤 열두 시에 마감을 해야 했던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가 그녀의 모습에 기겁을 했다.  오징어회를 먹느라 초장을 입 주변에 칠갑한 그녀가 그 와중에 팔뚝으로 입 주변을 닦았는지 얼굴과 팔목 옷 등이 초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저기요.  손님.."


몸을 흔들어 깨울 엄두가 나지 않는 태석이 그녀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그녀를 깨우려 했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주방을 정리한 민수가 포차 홀로 나와서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민수야.. 야.. 좀 어떻게 해봐."


"아.. 뭘 어떡해.  핸드폰 올려져 있네.  최근 통화목록에서 누구라도 찾아봐."


태석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을 들어 올리자 잠금 패턴 화면이 나타났다.  

패턴에 에라 모르겠다 싶은 그가 ㄱ 을 손가락으로 긋자 화면 잠금이 풀리면서 메인 화면에 그녀와 함께 웃고 있는 남자의 사진이 나타났다.  통화목록을 열고 가장 자주 통화한 '혈육'이라고 저장된 번호의 통화버튼을

누른 태석은 이 문제를 해결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다.  


-"야.. 너 지금 어디야?"


스마트폰  송신구에서 열이 과하게 받은 듯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저기 여기 용산에 있는 하드락 포차인데요..

  손님이 술이 과하셔서요.  지금 저희 마감도 해야 하는데요."


-"어머.. 죄송해요.  제가 지금 바로 데리러 갈게요."


그녀의 혈육은 통화한 지 이십 분 뒤에 택시를 타고 나타났다.  혈육은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그녀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 쉰 다음 카드로 음식값을 계산했고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그녀를 태우려고 했지만 테이블에 엎드린그녀를 일으키지도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석은 눈빛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녀의 혈육을 나 몰라라 하지 못하고 그녀를 부축해서 택시에 태워주었다.  택시 안에서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그녀의 혈육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핸드폰을 뒤늦게 발견했지만 택시는 이미 떠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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