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7화. 태석과의 만남.

팀원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장미는 사무실로 돌아온 뒤 사무실 키폰으로 자신의 스마트폰 번호를 눌렀다.  신호만 여러 번 울릴 뿐 받지 않자 전화를 끊은 그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소장 미술품 보관 실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후 세 시가 넘을 때쯤 한숨을 돌린 그녀가 텀블러에 내려 담은 커피 한잔을 들고는 다시 자신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한참을 신호만 가던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상대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여보세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혹시 거기 어디실까요.  제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려서요."


-"아~어제 오징어에 물린 분이시죠.  여기 하드락 포차예요."


남자의 말에 그녀는 밴드가 둘러진 자신의 손가락을 댱황해서 수화기를 든 채 눈앞에 들고 쳐다보았다.

어제 일이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은 찾아야 했기에 그녀는 퇴근 후 포차에 들리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업무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서던 장미는 자주 가던 포차였지만 오늘은 창피해서 섣불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자고 동생을 그곳으로 부르자니 잔소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박물관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 하드락 포차로 향했다.


그녀는 좀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여름이라 해가 긴 탓에 포차 앞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바깥이 환했다.  

그동안에도 자주 왔던 곳이었지만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는데 막상 혼자 들어서려니 조금은 머뭇거려지기도 해서 망설이고 있을 때 포차 옆 수납공간에서 소주 두 박스를 겹쳐 든 덩치 큰 포차 주인이 물건을 들고

출입문을 들어가는 것이 그녀의 눈이 보였다.  그간 오며 가며 주문도 하고 계산도 했었지만 햇빛 아래서 포차 주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는 왠지 빈속에 독한 술 한잔을 들이부은 것처럼 마음이 찌르르하고 싸해졌다.  뭔가 감정의 큰 덩어리가 한꺼번에 목울대를 통과한 것처럼 목이 메고 눈이 시기도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놈과 헤어져서 마음이 허약해진 탓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애써 혼란스러운 마음과 머리를 가다듬은 채 포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환한 여름 저녁 일곱 시여서인지 포차 홀에는 손님이 한 팀밖에 없었고 그녀는 평소 자주 앉던 자리에 앉아서 소주를 소주 냉장고에 넣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하릴없이 쳐다보았다.  

소주를 채워놓고 고개를 돌리는 태석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대놓고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자 놀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저.. 스마트폰 찾으러 왔는데요."


그제야 태석도 빈 소주박스를 손에 들고 선채 그녀를 마주 보았다.  항상 손님으로 왔기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로서도 그날이 그녀를 제대로 본 첫날이었다.  어제 테이블에 엎드려 눈물과 초장으로 얼룩졌던 얼굴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자신 앞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작아 보였는지 태석은 자신이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주방에서 준비된 안주를 가져가라며 부르던 민수가 냄비를 들고 홀에 나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형.. 뭐 해?  스마트폰 찾으러 왔다잖아."


민수의 말을 듣고서야 머릿속에 피가 다시 돌기 시작한 태석은 빈 소주박스를 그 자리에 내려놓고는 계산대로 가서 충전기에 꽂혀 있던 스마트폰을 빼내어 들고 와서 그녀에게 건넸다.  

폰을 그로부터 건네받은 그녀는 어제의 기억나지 않는 모든 일들이 창피했지만 그냥 폰만 받고 나간다는 게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다시 테이블에 앉은 그녀를 본 태석은 메뉴판과 물, 물컵, 물티슈가 놓인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설마..  또 어제처럼 그러는 건 아니겠지.'


메뉴판을 건네는 태석의 머릿속에 순간 수조 앞에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표정에서 생각을 눈치챈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번에는 생각을 들킨 태석이 당황했다.


-"어... 아니에요.  주문하세요."


"그럼, 곰장어구이에 국수, 소주 한 병 주세요."


'그래, 술집에 혼자 와서 술 안 마시고 안주만 먹는 건 더 이상하겠지.  한 병만 먹자.  그럼 괜찮겠지.'


그렇게 장미는 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한잔 따르고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열어 바탕화면에 저장된 자신을 차버린 나쁜 놈의 배경사진을 삭제하며 한잔을 들이붓자 또 가슴이 쓰려왔다.  


'어차피 집에서 이 지랄하고 있으면 수련이 그년 잔소리에 먼저 죽지.

 그래.  잘 됐어. 여기서 정리하고 가자.'


다행히 SNS를 안 해서 계정을 정리할 것은 없었지만 불시에 앨범에서 발견하게 되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그녀는 스마트폰에 담긴 그의 사진 한 장 또 한 장을 소주 한잔씩을 넘기며 삭제해 갔다.


'이 시계 사줬을 때 정말 좋아했는데. 내가 전날밤부터 노숙줄 서서 사다 준 건데.  나쁜 시키.'


"그러게.  이 멍청아.  요즘 누가 간 쓸개 다 빼주는 여자를 좋아해?

 그건 이용하는 거야.  이 병신아."


동생 수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어쩌면 하나같이 그런 놈들만 만났을까.'


장미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녀의 두 뺨 위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주방에서 일하던 민수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포차 홀로 나왔을 때 그의 눈에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테이블에 널브러진 오징어에 물린 단골의 모습이 보였다.   민수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계산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의 눈에 난감한 표정으로 문제의 테이블을 바라보는 태석이 있었다.  

손님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 여유가 생겼을 때 태석은 오늘도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녀의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ㄱ을 손가락으로 그려서 잠금을 해제한 뒤 이번에도 그녀의 통화목록 중 '혈육'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진짜.. 어쩔라고 그래.. 어디야?  지금."


오늘도 노기가 창창한 목소리가 송신구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저, 여기 오늘도 하드락포차입니다.   네.. 어제.. 거기요."


그녀의 혈육은 오늘도 이십 분 만에 택시를 타고 다급하게 문을 열고 포차 홀로 들어섰다.  혈육이 오늘도 술값을 계산하고 그녀에게 몸을 돌릴 때 태석은 알아서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챙겨서 혈육에게 건네고  택시 뒷좌석에 그녀를 눕힌 뒤 차 문을 닫았다.

혈육이 차 조수석에 타면서 그에게 다급하게 절을 연거푸 했지만 그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고

출발하는 택시의 뒷모습을 본 태석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뱉었다.  


'허참.  이틀 연속 같은 사람 부축한 건 또 처음이네.'


이전 06화 99번의 환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