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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8화. 입덕.

장미가 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오전 열 시가 넘어서였다.   못 일어날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기가 무섭게 두통이 몰려왔다.  안방에서 골골대는 그녀의 기척을 느낀 동생 수련이 안방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언니.. 너 정말 미쳤냐?

  아니 내가 창피해서 못 살겠어."


"또 왜?"


동생의 잔소리가 귓가에서 사이렌처럼 울리기 시작하자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장미가 동생을 피해 주방으로 가서 물컵을 꺼내 들고 냉장고를 열어 물을 한 컵 가득 따라 마셨다.  그런 그녀를 보는 동생은 저걸 어쩌면 좋지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술집에서 언니 너 같은 사람보고 뭐라는지 알아?

  진상.  아니지 개진상이야.  개진상."


-"어떻게 이틀 연속 같은 집에서 사고를 치냐.

   암튼 창피하니까 앞으로 그 집 근처도 지나가지 마."


눈을 뜨기가 무섭게 잔소리를 해대는 동생에게 어제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장미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너무 창피해서 어제까지 실연의 아픔에 괴로웠다는 사실마저 잊은 그녀는 모든 걸 잊기 위해 다시 잠을 자기로 했다.  




토요일 하루를 종일 침대에서 보낸 장미는 일요일 아침이 되자 머리가 멍하고 온몸에 기운이 없이 나른한

상태로 눈만 감은 채 침대에서 이불을 감고 이쪽저쪽으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이 돼서도

안방에서 기척이 없자 동생이 안방문을 벌컥 열고 또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일어나.  나 소재거리 떨어져서 밖에 나가야겠어.  같이 가자고.  어? 밥도 먹고."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이틀 가까이 한 몸 같았던 침대를 벗어난 장미가 씻고 옷을 입은 뒤 거실로 나왔을 때 동생은 이미 드로잉태블릿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준비를 마친 동생 수련이 드디어 사람 꼴로 자신 앞에

서 있는 언니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이제 좀 멀쩡해 보이네.  가자.  홍대 쪽 가서 밥 먹고 소재거리 좀 낚아보자고."


웹툰 작가인 수련은 언제나 소재거리를 찾느라 골머리를 썩었다.  그림체는 훌륭하지만 스토리라인이 약하다는 평을 받는 수련은 틈만 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장미와 동생 수련은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브런치카페를 찾았다.  그들은 평소처럼 말없이 음식을 먹었고 수련은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듣느라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커피와 후식까지 먹은 뒤에도 특별한 소득이 없자 수련은 이번에는 밥도 먹었으니 경의선 숲길 쪽을 돌아보자고 했다.  

여름 햇살이 따가웠지만 토요일 내내 침대에만 있었던 장미는 오랜만에 동생과 걷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렇게 조금 걸었을 때 그녀의 귓가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들리는 노래의 멜로디가 왠지 익숙해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그녀가 걸어갔을 때 그녀의 눈앞에 많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버스킹을 하는 네 명의 남자들이 보였다.  그 남자들 중 한 명을 알아본 그녀가 '아'하고 탄식을 터뜨렸다.


-"어머.  언니. 저 사람 하드락포차 사장 아니야?"


이틀 연속 그녀를 데리러 하드락포차에 왔던 수련이 그를 먼저 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부르는 노래는

그녀가 하드락포차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들었던 곡이었다.  사실 그곳에 갈 때마다 틀어놓은 곡들이 좋아서 하드락포차를 자주 찾게 되었던 그녀는 그 노래의 주인공이 포차 사장이었단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포장마차 사장=가수 가 같은 선상에서 연결이 되지 않는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포장마차 사장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외양과는 달리 청량한 미성으로 막힘없이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그의 노래에 그녀는 잠깐 음료수를 사러 간다는 동생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공연은 그녀가 도착한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끝이 났다.  


-"지금까지 저희는 샤크였습니다."


그룹 샤크의 보컬인 태석(포장마차 사장)이 인사를 마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장미는 아직도 공연의 여운에 취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드러머이자 포차 주방을 담당하는 민수가 먼저 알아보았다.


-"형.  저기 엊그제 그 손님 아냐?"


민수가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태석이 바라봤을 때 그제야 자신을 보고 있는 태석과 눈이 마주친 장미는 놀라서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을 걷다가 시원한 커피숍 의자에 앉은 그녀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에 '밴드 샤크'를 검색했다.  

오 년 전 종편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 ROCK TO YOU에 출연해서 준우승을 한 그룹 샤크는 그 이후로 그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귀에 아이팟을 꽂고 샤크의 동영상을 검색해서 듣기 시작한 그녀는 실력 있는 밴드가 왜 가수활동을 하지 않고 포장마차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드락포차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는 까맣게 잊어버린 그녀는 한참 동안 그룹 샤크와 관련된 자료들을 검색하다 동생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언니.  너 어디야?"


"어.. 수련아.  안 그래도 너한테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어디야?"


-"언니, 나 일이 생겨서 너 먼저 집에 들어가 있어

   가서 설명할게.  알았지.  끊는다."


수련이 전화를 먼저 끊은 뒤 그녀는 스마트 폰 검색창에 샤크 팬클럽을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검색 어플을 바꿔서 검색해도 팬클럽은 조회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실력 있는 밴드가 팬클럽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나라도 만들어서 가입을 해야 하나?'


그렇게 서른다섯이 도록 엔터테인먼트 쪽으로는 관심이 없던 장미는 그렇게 덕질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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