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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r 24. 2024

99번의 환생.

9화. 동방삭.

독수리로 98번의 환생을 마친 꽃님이가 환생 사진관에 찾아왔다.  드디어 인간으로의 99번째 환생을 하는 꽃님이는 많이 떨고 있었다.  그녀가 인간으로의 환생을 위해 그곳을 떠난 직후 사진관 주인인 동방삭은 꽃님이가 자신을 처음 찾아왔을 때 받아뒀던 옥염주를 목에 건채 방금 전 꽃님이가 앉았던 중앙홀의 단상 위에 올라섰다.   자리에 앉은 그는 눈을 감았고 사면에서 비추는 각기 다른 네개의 빛이 중앙에 모인 순간 환한 빛이

번쩍였다.  눈부신 빛이 사라진 뒤 시력을 회복한 동방삭의 눈에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대로변이 들어왔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대로변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골목 안이었다.  이번이 지금까지 삼천갑자를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얻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을 얻을 마지막 기회였기에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환생한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몇 살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는 막연하기만 했다.  그전까지는 옥염주를 걸고 온 그녀의 다음 환생을 뒤따르기만 하면 됐지만 바로 직전의 생을 살았던 그녀가 옥염주를 자신의 손녀인 꽃님에게 넘겨줬기에 그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꽃님이와 연결된 그녀의 인연을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에서 줄에 걸린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그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가 골목 안쪽에서 몇 발자국 걸어 나왔을 때 교복 차림의 남학생 네 명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형씨.  불쌍한 동생들 담배 값 좀 적선하쇼."


그의 앞을 막은 학생들은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치며 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삼천갑자를 살아오면서 돈과 권력을 다 가진 동방삭이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갖지 못한 것은 그녀였고 또 한 가지를 꼽자면 체력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웬만한 여자보다 어여쁜 외모에 키는 크지만 근육이라고는 없는 그의 몸은 그에게 항상 마음의 짐이었다.   그래서 그는 환생하는 그녀를 따라갈 때마다 맨 먼저

자신의 호위를 먼저 고용하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시간조차 없이 불량학생들을 먼저 만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일을 빨리 쉽게 해결하고 그녀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그가 윗옷 재킷 안에서 지갑을 꺼내어 오만 원권 한 장을 학생 한 명에게 건넸다.  


"그럼.  내가 좀 바빠서."


동방삭이 돈을 건넨 뒤 앞을 막고 있던 학생들에게 비키라고 손짓을 한 순간 곧바로 그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눈앞에 별이 번쩍 하는 순간 그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쭈.  우릴 뭐 거지로 아나.  꼴랑 이거 주고.  애들아.. 밟아버려."


그에게서 지갑을 통째로 빼앗은 학생들은 쓰러진 그에게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참을 그렇게 맞고 있을 때 골목 입구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하고 있어..  응.. 계속 그렇게.. 해."


동방삭에게 발길질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잠깐 행동을 멈춘 채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넌.  뭐야.  너도 죽고 싶어?"


"응.  내가 죽진 않을 것 같아.  경찰에 신고는 했고

  내가 인스타 라방 중인데 너희 생중계로 화면 나가는 중이야.

  너네 정말 리얼하게 잘한다고 지금 댓글 장난 아니야.

  봐봐.  여기 너네 교복 보고 한양고라고 댓글 올라왔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차의 사이렌 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찰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학생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바퀴벌레들처럼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제야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육체적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진 동방삭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그의 상체를 일으켰고 경찰차에서 내린 두 명의 경찰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미안해요.  내가 더 빨리 서둘렀어야 하는데.

 신고를 하려면 증거가 필요해서요.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이도 때렸네요."


그녀가 미안해하며 그에게 말을 했을 때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동방삭은 순간 아픔을 잊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말았다.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사건 접수를 위해서는 경찰서로 가셔야 합니다."


경찰이 그에게 사건 접수를 권하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사건 당사자가 사건 접수를 거부하자 경찰들은 그와 그녀를 그 자리에 남겨둔 채 경찰차로 돌아갔다.  


수련은 사건접수를 거부하는 그를 보고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우선 골목 끝에 있는 커피숍으로 데려가 의자에 앉히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를 본 동방삭은 다급히 그녀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런 그를 본 수련은 안심하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괜찮아요.  어디 안가요.  요앞 편의점에서 약 좀 사올게요."


그녀는 편의점에서 연고와 밴드, 소독약을 사서 다시 커피숍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녀가 자신 앞에 아이스커피를 놓아주고 물티슈를 건낸 순간 동방삭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래.  처음 봤을 때도 내 코피를 닦아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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