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세일럼의 마녀 재판, 매카시즘에 대한 반발
아서 밀러의 작품 <시련>을 읽고 나는 2016년 10월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자백>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을 추적 조사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국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렸던 사람 대부분은 현재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시켰던 전 국정원장 원세훈을 비롯한 다수는 구속이 되고 있다. 물론 2016년 이 영화 개봉 당시 감독이었던 최승호(그 당시 mbc 전임 pd)는 현재 MBC 사장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누구도 이 나라가 이제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고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언제든 법은 필요에 의해 우리 누구라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서 밀러가 이 작품 <시련>을 썼던 시기인 1951년 6월, 미국 공화당 의원인 조셉 매카시는 미 상원 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들 다수가 공산당을 은닉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서 밀러의 작품을 연출했던 엘리아 카잔이 과거의 동료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의 배신행위가 사회적 영웅행위로 추앙 받는 현실에 아서 밀러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는 1692년 세일럼에서 벌어졌던 마녀 재판이 당시의 미국에서 재현되는 현실을 자신의 작품 <시련>에 담아내었다.
[엘리자베스 : 여보. 마을이 온통 미친 것 같아요.
메리가 애비게일 얘기를 하는데 메리 말을 들으니
애비게일이 성녀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애비게일이 다른 여자애들을 이끌고 법정으로 들어오는데,
그 애가 걸어가면 마치 홍해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갈라지듯
사람들이 길을 열어 준다는 거예요.
그 애들 앞으로 사람들이 불려 오는데, 만약에 애들이 고함지르고 울부짖으며
바닥에 넘어지면 그 사람들을 아이들에게 마법을 건 혐의로 감옥에 처넣는대요.] p83
영화 <자백> 중 당시 새나라당 의원은 대한민국에 이 만여 명의 고정간첩이 암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1692년에 세일럼에서 일어났고 1951년 미국의 상원에서 주장되었으며 다시 2016년 새나라당 의원의 입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주장들은 법에 의한 합법적 폭력으로 실행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실체 없는 개인의 주장이 실체화 있는 피해를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작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1939년에 쓰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의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하인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그놈은 항상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
'망할 놈의 빨갱이들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가 이 빨갱이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여기 서부로 온 지 얼마 안 된 젊은이가 ~그런 말을 듣더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렇게 말했지.
'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2권 p148
조작은 조작을 통해 이득을 얻는 개인을 위해 자행된다. <분노의 포도>에서 30센트를 달라는 노동자가 빨갱이로 몰리는 것은 바로 25센트를 주고 노동력을 착취하기를 원하는 자본가 때문이다.
<시련>에서 프록터의 집에 하녀로 일하던 애비게일은 프록터에게 연정을 품고 그의 아내를 마녀로 몰아서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 촉발된 마녀 사건은 세일럼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패리스 목사의 욕망과 얽히고 또 자신의 견제 세력을 제거하려는 퍼트넘의 목적의식이 더해지면서 개인적 원한 해소의 수단이 되고 만다.
[애비게일 : ~저는 세라 굿이 악마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어요!
오즈번 부인이 악마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어요!
브리짓 비숍이 악마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어요!] p75
마녀로 지목 당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 앞에 하나 둘 조작된 거짓을 사실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마녀 사건은 마을 사람 수십 명을 교수형에 처해지게 만들었는데, 프록터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증언하는 진실 앞에서 법을 집행하는 판사 댄포스가 자신이 내린 판결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서 나머지 사람들을 마저 사형시키는 비극을 낳게 되었다.
이제 마을은 부모 없는 고아들이 이곳 저곳으로 유리걸식을 하기에 이르고 들판에는 추수하지 못한 곡식이 썩어가며 관리 받지 못한 가축들이 거리를 헤매는 지경에 이른다.
이미 마녀 사건을 촉발시킨 애비게일은 야반도주를 했고 마녀 사건을 확대시킨 패리스 목사는 내쫓김을 당했으며 마녀 사건에 얽힌 마을 주민들은 서로의 원한에 의한 피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문제는 아서 밀러가 극화한 <시련>속 마녀 재판이 지금 이 순간도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이라는 조직을 개혁한다는 것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그러한 시도 자체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작금의 현실 앞에 진실의 가부가 아니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라면 없는 간첩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얼마만큼의 국민을 희생시킨다 할지라도 기꺼이 해낼 수 있는 그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똑똑히 지켜봐 두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주민 일흔 두 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댄포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