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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본질적인 감정이 아닌 진화된 감정이다.

#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 #테네시윌리엄스 #책 #희곡 #민음사

by 묭롶

[사라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라가 하는 이야기가

동화 속 상상에 불과할는지도 몰랐다.

~”그곳에는 꽃으로 가득한 들판이 펼쳐져 있어.”

~거기다가 마을을 둘러싼 담장은 모두 진주와 금으로 되어 있는데,

그 높이가 낮아서 사람들이 걸터앉을 수 있어.

거기 앉아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웃기도 하고

아름다운 메시지도 날려 보내 주는 거야.” ] <소공녀 中>


위 대목은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 로티에게 사라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엄마가 부재하는 현실은 동일하지만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주변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라는 로티를 위로한다. 물론 어린 로티는 나중에 사라가 했던 이야기가 꾸며낸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견뎌내는 힘이 결코 극복 의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나는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소공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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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국 남부의 대저택에서 자란 블랑시가 있다. 과거 영광의 불빛은 이미 오래전에 꺼져버렸고 대저택 벨리브마저 잃어버린 상실감에 그녀는 방탕한 생활에 자신을 맡겨버렸다. 그녀는 시처럼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의탁할 곳이 없는 그녀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고서 동생 스텔라가 있는 극락이라는 동네에 도착하게 된다.


동생 스텔라와 제부인 스탠리가 현실이라는 토양에 뿌리내린 채 그저 내리는 비와 햇빛에 몸을 맡기는 식물과 같다면 블랑시는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육지 없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카나리아처럼 위태로운 인물이다.


블랑시를 현실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은 바로 <소공녀>에서 사라가 로티에게 들려줬던 이야기처럼 상상력(꿈)에 있다. 언젠가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서 행복해질 수 있기를 꿈꾸는 블랑시의 꿈을 스탠리가 깨 버린 순간 블랑시는 삶의 의욕을 잃고 정신분열을 일으킨다.


요즘 현대인에게 꿈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는 스탠리에게 비치는 블랑시의 모습만큼이나 이해불가능의 영역에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스탠리나 스텔라처럼 그저 삶을 소모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런 삶은 작중 블랑시의 표현대로라면 동물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유인원과도 같다.

블랑시처럼 꿈꾸는 사람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 깨라” 며 “하던 일이나 잘하라” 고 말하거나 “소설 쓰고 있네” 나 “배가 부르니 헛소리 한다”는 말을 한다. 분명 일정 수준의 현실인식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력은 ‘망상’에 불과하지만 현실이라는 높은 장벽의 그 너머를 올려다보는 시도마저 스탠리 식의 조롱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블랑시 : 그래, 맞아. 네 처지가 나보다 더 한심해!

너는 그걸 모를 뿐이야. 나라도 뭔가를 해야겠어.

정신을 차리고 새 삶을 찾을 거야!

스텔라 : 그래?

블랑시 : 하지만 넌 포기해 버렸어. 그건 옳지 않아.

아직 젊다고! 벗어날 수 있어.

스텔라 : (천천히 그리고 단호하게) 난 벗어나고 싶은 상황에 있지 않아. ] p 67


아마도 작가는 블랑시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최초의 유인원과는 달리 상상력을 지닌 존재로 진화해 왔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상상력이 시력을 잃어버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계속 작품을 쓸 수 있게 만들었으며 ‘로맹 가리’의 어머니의 꿈이 그의 어린 아들을 작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더불어 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으며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도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던 본질적 성향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진화된 정신적 감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블랑시 : 네가 지금 말한 건 동물적인 욕망, 그냥 욕망일 뿐이야!

~스텔라 :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블랑시 : 그러니 걱정이 돼! 그저, 걱정이 될 뿐이야………… ] p73


작중에서 스텔라와 스탠리가 하는 사랑이 일차원적인(유인원) 동물적인 욕망(일상적 대화로서의 문자)이라면 블랑시가 원하는 사랑은 시(문학으로 승화된 문자)와 같다. 아마도 ‘로미오와 줄리엣’도 결혼을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존재하지 않고 순조롭게 결혼을 할 수 있었다면 정신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닌 현실적인 육체적 사랑을 획득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블랑시 : 나는 낯선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가졌어요.

앨런이 죽고 난 뒤…… 낯선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만이

내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어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보호받으려 했던 것은 공포,

공포 때문이었죠. ] p133


정신적인 ‘사랑’을 꿈꾸며 낯선 이의 친절을 받아들였던 블랑시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폐결핵으로 인한 각혈 중에도 현해탄을 건너간 작가 ‘李箱’과 <자기 앞의 生>의 모모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로맹 가리처럼 더 많이 꿈꾸고 더 많이 상상하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육체적 욕망으로서의 사랑은 한계가 있지만 꿈꾸는 사랑은 언제어디서나 가능한 것이니 나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이 가능성의 기회를 더 많이 시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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