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문학 #레마르크 #민음사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는 동안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왜 책 제목이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야?”
“응, 아가야 그건 책 제목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야.”
“<신데렐라> 나 <콩쥐, 팥쥐>처럼 이 책은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엄마, 그런데 왜 하필 사랑과 죽음이야? “
“아가야, 우리 아가는 엄마와 아빠를 매일 볼 수 있지만 만약 한 달에 한 번이나 만약
언제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바로 그것처럼 언제 헤어질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은 들려주고 있어. “
[ “우린 지금 행복한 걸까요, 불행한 걸까요?” 그녀가 물었다.
~”둘 다야. 그럴 수밖에 없어..
이 시대에 행복만을 누리는 건 암소들 뿐이야.
아니 암소들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지도 몰라.
아마도 돌멩이라면 행복할 테지.”
~”그 무엇이 중요한 거예요.”
“맞아.”~
“우리는 죽지 않았어.” 그가 말했다. “아직 죽지 않았어.” ] p297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은 1954년에 발표된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뿐만 아니라 1944년에 발표된 말라파르테의 <망가진 세계>와 1969년에 발표된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등 여러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레마르크의 작품은 다른 두 작품에 비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다.
[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그녀를 느꼈다.
그녀는 갑자기 특정한 이름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름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그 순간 견딜 수 없는 흰색의 빛과 같은 불꽃이 그의 온몸으로 타올랐다.
이별은 귀환이고, 소유는 상실이며, 삶은 죽음이고, 과거는 미래였다.
영원히 그리고 도처에 영원의 석상이 존재하며 그것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477
독일군이 러시아 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하던 2차 세계대전의 말미에 3주간의 휴가를 얻은 그래버는 고향에서 가족과의 해후를 기대했지만 고향집은 공습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부모님의 생사도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의 행방을 찾아 헤매던 중 그는 학창 시절 급우였던 엘리자베스를 만나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고 전선에 복귀하지만 전사하고 만다.
[ 시체들은 햇빛 아래 놓이면 우선 눈[目] 부위부터 녹아내렸다.
눈은 광채를 상실했고, 동공은 아교질처럼 번들번들했다.
눈 속의 얼음이 녹아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마치 울기라도 하는 것처럼. ] p9
단 4줄로 요약되는 그래버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535페이지를 읽으며 나는 전쟁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전쟁이 인간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일선으로 가고,
그것을 알면서도 공범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해야 할까요?” ] p248
[ “우린 순교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공범 관계는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요?
보통 영웅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어제 살인이 되는 겁니까?
더 이상 명분을 믿지 않을 때일까요?
아니면 목적을 믿지 않을 때일까요?
그렇다면 그 경계선을?” ] p251
흡사 이명박과 박근혜가 지배하던 십 년의 시간 동안 억눌리고 빼앗겼던 것이 무엇인지를 무심코 한꺼번에 깨달았던 그날처럼……나는 인간이 왜 인간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 4대강 공사 강행, 천암함 침몰 사건 등으로 세상은 어수선하지만
4월의 금수강산은 의연하고 아름답다.
온 산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불꽃처럼 피어난다.
파괴의 힘은 거칠지만 그 파괴를 복원하는 자연의 힘은 더욱 부드럽고 강력하다.
선악을 넘어 세상의 고통과 희망을 전하는 문학의 힘이라는 것도
그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 역자 후기 中
아마도 2010년도에 이 책을 번역했던 역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번역했는지를 역자 후기를 보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뜰”을 빼앗기고 나서야 “빼앗긴 뜰에도 봄은 오는가”를 부르짖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굳이 전쟁이 아니라도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인간의 존엄이 우리에게 있다. 그 존엄을 부르짖어야만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나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으며 깨닫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반전을 주제로 한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경쟁적으로 출간되었지만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이유는 바로 그 드라마적인 힘에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사람들이 작중 인물 ‘김지영’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지만 자신이 ‘김지영’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 놓고 작중 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그 많은 작품들 속에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을 때 나는 그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피어나는 드라마에 감동받았다.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가 아닌 문학이 지닌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