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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테스', 97년 '암무' 그리고 김지영

#더버빌 가의 테스 #문학동네 #토마스 하디 #소설 #문학 #책

by 묭롶

1891년에 출간된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 가의 테스>를 읽다가 정말 여러 번 책장을 덮고 싶었다. 운명론으로 치자면 박복해도 지지리 복도 없는 여인네의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었으니 나는 읽는 동안 고구마만 백 개 먹은 것 같아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실은 1890년대를 살아간 테스라는 여인의 삶과 내가 살아온 삶의 동질성 때문에 나는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는 마흔 살의 나이로 당좌수표를 부도내고 그걸 수습(감옥에 가는 일)하는 것이 두려워 세상을 버렸다. 빚잔치를 하고 단칸방에 월세로 들어앉았을 때 내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내 밑으로는 두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남동생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열두 살의 나에게 말했다. 네가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안 그러면 너흰 전부 고아원에 가야 한다고….




[ “저 자신이 길게 늘어선 사람 중 하나라는 걸,

옛날 책에서 저하고 똑같은 사람이 살았다는 걸,

저도 그 역할을 되풀이하게 될 뿐이라는 걸 배워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슬플 따름이죠. ] p195




나는 부득이하게 일찍 철이 들어서 눈치라는 것이 있었지만 도대체 왜 열두 살인 내가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무거운 굴레를 벗어던지는 길은 아버지처럼 알아서 삶에 마침표를 찍는 방법이 유일한 해답으로 보였다.




[ 자연은 불쌍한 피조물이 보는 것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순간에도

그에게 “보라”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숨바꼭질이 지루하고 낡아빠진 장난이 될 때까지,

“어디 있어요?”라는 인간의 질문에 “여기”라고 답해주지 않는다. ] p67




여기 무능력한 아버지와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들은 지닌 1800년대 말의 테스가 있다. 그녀가 삶에 대한 가능성과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노력하기도 전에 이미 태생적인 가난과 부모의 무책임이라는 운명이 그녀를 삶을 불행 쪽으로 내몰았다.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기도 전에 막다른 길에 내몰린 사람에게 과연 선택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어느 날 자신이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테스를 인근 마을에 신흥 부자로 자리 잡은 더버빌 가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청원자로 보냈다. 하지만 친척의 호의를 바랐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들이 친척이라고 믿었던 스타크 더버빌 가는 졸부가 소위 말해서 족보를 사들인 상황이어서 테스의 집안과는 아무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소녀인 테스에게 음심을 품은 그 집의 아들 알렉 더버빌에 의해 테스는 원치 않는 관계에 의한 임신을 하게 되고 곧 그 아이는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테스가 그런 불가항력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얼마 없어서 더버빌에게 성폭행을 당한 상황을 어쩔 수 없다며 현실에 주저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이 알렉 더버빌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수 없다며 재력을 지닌 그의 곁을 스스로 떠나 가난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다.


가족에게 돌아온 이후 그녀는 아이를 잃게 된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탤버테이스 목장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낙농업을 배우기 위해 그 농장에 임시 거주하는 에인절 클레어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지만 끝내 자신의 과거(원치 않는 관계에 의한 임신과 사산)를 그에게 고백함으로써 그에게 버림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용서를 기다리며 돌아오기를 간절히 희망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길가에 내몰린 친정 식구들을 어찌할 수 없어서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알렉 더버빌의 손을 잡게 되었다. 이후 브라질 농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남편 에인절 클레어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이 전부라는 깨달음 끝에 귀국하여 아내를 찾지만 이미 그녀는 더버빌의 정부가 된 상태였고 에인절을 보고 극도로 좌절감을 느낀 테스는 우발적으로 더버빌을 죽이고 에인절과 도피를 했지만 잡혀서 교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아~정말….. 줄거리를 쓰는데도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마구 답답해진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도 아닌데 어쩌면 이다지도 삶이 힘들 단 말인가.


아량이 1도 없는 에인절의 철벽 같은 마음에도 화가 났지만 어쩌면 알렉 더버빌 같은 호색한의 눈에 띄게 원인 제공을 한 테스의 부모에게도 엄청나게 화가 났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 건 1891년의 <더버빌 가의 테스>과 1997년 발표된 <작은 것들의 신>,

그리고 2016년 발표된 <82년생 김지영>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에는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테스’의 죽음 이후 무려 130년 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여성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맹세를 할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가혹한 심판을 받았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무엇이든 간에 의도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범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끊임없이 벌을 받아야 하는가? ] <더버빌 가의 테스> p530



[ 암 무는 알레피에 위치한 어느 지저분한 방에서 죽었는데,

누군가의 비서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갔던 곳이었다.

그녀는 홀로 죽었다. 천장 선풍기의 소음을 벗 삼아,

등 뒤에 누워 그녀에게 이야기할 에스타도 없이.

서른한 살이었다.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경찰들이 가위를 짤깍거리며 다가오는,

코타얌 결찰들은 시장거리에서 체포한 창녀들에게 그렇게 해다.

그들이 누구인지 모두가 알도록 일종의 낙인을 찍는 것이었다. ] <작은 것들의 신> p225


[ “할머니 계셨으면 큰누나는 엄청 혼났을 텐데.

어디 여자애가 남자 머리를 때리냐고.” ] <82년생 김지영>





불행해지고 싶은 인간은 없다. 그건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누구나 인간이라면 당연히 바라고 희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자의 불행 앞에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다. 불행의 원인을 따지기 전에 이미 그 원인을 여자에게 돌리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지금도 그대로다. 똑같이 혼전 순결을 잃었다는 고백을 하는데 에인절은 당당하고 어쩔 수 없었던 테스는 죄인이 돼야만 하는지 이 일이 1800년대 일이라고 옛날 얘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991년에도 2016년도에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참으로 가슴 아픈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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