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졸라 #문학동네 #제르미날 #소설
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을 읽으며 나는 2009년 4월 세상을 떠난 택배 노동자 박종태 열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 “이럴 수가!” 마외가 중얼거렸다.
~지금 자신들을 놀리는 건가?
그들은 탄차에서 줄어든 10상팀을 갱목 작업으로 결코 채우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8상팀을 받을 수 있을 뿐이며, 나머지 2상팀은
회사가 그들에게서 훔쳐가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
~탄광일로 단련된 남자의 거친 얼굴이 절망으로 부풀어 오르더니,
굵다란 눈물이 뜨거운 빗줄기처럼 눈 밖으로 넘쳐흘렀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식탁 위에 50프랑을 내던지면서
어린아이처럼 흐느꼈다. } 1권 p281~385
2009년 당시 택배회사 대한통운은 정규직이던 택배 노동자를 새로 입법된 화물운송법을 근거로 택배 개인 사업자의 지입 방식으로 전환했다. 당연히 택배회사 소속으로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은 반발을 했고 가뜩이나 2,500원의 택배비 중에서 노동자에게 실제 돌아가는 몫은 920원이 채 안 되는 상황에서 택배노동자 집행부는 건당 30원의 요금 인상을 회사에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대한통운은 파업에 맞서 파업 참여 인원에 대한 계약 폐기는 물론 파업 진행부에 대해 형사고발과 손배가압류를 진행했고 가압류와 수배로 인한 압박 속에서 지부장이었던 박종태 열사는 대전 대한통운 지사가 내려다보이는 야산에서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 마외는 탄광회사에서 경매에 부친 마흔 곳의 작업장 중
하나도 따내지 못할까 봐 잠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경쟁자들 모두가 앞다퉈 입찰가를 낮췄다.
다들 위기설과 실업의 공포에 사로잡혀 잔뜩 겁을 집어먹은 터였다.
탄광 기사 네그렐은 그들의 악착스러운 모습에 느긋한 태도를
보이며 입찰가가 가능한 한 낮아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 1권 p230
직접고용 대신 지입차주제로 전환한 2009년의 대한통운처럼 소설 [제르미날]에서 광부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안전을 위한 비용마저도 자신의 임금에서 지불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탄광회사는 자신들의 수익을 보장받기 위해 직접고용 방식 대신 탄맥 구역별 임금을 노동자들에게 경매를 통한 도급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들끼리 피와 살을 깎는 경쟁으로 내몬 것이다.
{ “아, 이렇게 비참할 데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리가 대체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거지?
식구들을 땅에 묻고, 살아남은 식구들도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아무 희망도 없이……..
저들은 마차를 모는 말처럼 우릴 부려먹었어.
이건 너무나 부당한 일이야.
죽도록 일하면서도 채찍질이나 당하는 가축처럼 살아가면서,
생전가야 맛난 음식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부자들의 배만 불려주다가 죽어야 하다니.
~단지 정당한 것을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 거냐고!” } 2권 P240
1800년대 말에 탄광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한 탄차 당 5수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자식들이 굶어 죽고 파업 참가자인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고 탄광회사에 백기투항을 하고 다시 작업장에 내려갔다가 매몰사고로 자식은 죽고 매몰된 동생을 구하겠다던 오빠는 가스폭발 사고로 죽었으며 그 어미는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나머지 자식과 정신을 놓은 시아버지의 생존을 위해 마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40도가 넘는 지하 갱도로 내려가야 했다.
탄광 노동자가 그저 빵이라도 굶주리지 않고 먹게 해달라고 “빵을 달라”라고 외쳤던 1800년대 말에서 100년이 흐른 1997년 대한민국은 IMF를 거치며 [유연 임금제]와 [손배가압류],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직 보호법] 등의 자본가 보호법이 속속들이 입법되면서 이후 십 년 동안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은 암흑기를 맞게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정규직이 될 수 없으며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집은 살 수가 없으며 또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헬조선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규직에서 허울 좋은 지입 택배 자영업자로 내몰려 택배를 위한 보험료, 자동차세, 유류대 등등의 각종 비용을 자부담하게 된 택배 노동자 아니 이제 노동자라는 호칭도 쓸 수 없게 자영업 사장님이 되어 버린 그들은 현실에 분노하게 되었다. 그래서 먹고는 살게 해달라고 택배 한 건당 30원 인상을 요구했다가 평생 동안 쓰지 않고 모아도 모을 수 없을 금액의 어마어마한 금액을 가압류를 때려 맞았으니 그 절망과 분노가 얼만큼이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제르미날]에서 무정부주의자인 수뇌르는 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없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임금을 인상한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임금은 임금 철칙설에 따라 생존에 필수적인 적은 금액으로 고정돼 있어.
노동자들이 맨 빵만 먹으면서 번식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금액만큼만……..
임금이 너무 내려가면 노동자들이 굶어 죽지.
그럼 새로운 인력이 필요하니까 임금을 올리게 되는 거야.
반대로 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넘치는 노동력 때문에 임금을 다시 깎게 되지…….
빈 뱃속이 그렇게 자연적으로 균형을 잡아나가는 거지.
그러니까 노동자들을 굶주림이라는 도형장에 영원히 갇혀 있는 셈인 거야.” } 1권 P227
[제르미날]에서 탄광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가족의 수를 늘리기 위해 자식을 낳는다. 자식이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그보다 앞서 태어난 자식들이 돈을 벌어서 버텨야 하지만 굶주림을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노동력의 보급은 가족의 생계를 개선하기보다는 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수단이 될 뿐이다.
「~네 번쩍이는 뿔을 자르게 해 다오.
그러면 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주마.
~네 날카로운 이빨을 자르게 해 다오,
그러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주마.
~그때부터 이 짐승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채
컴컴한 암반 사이를 느릿느릿 기어 다니며 흐느껴 웁니다.
마지막으로 숨이 넘어갈 때쯤 되면 이 짐승의 살과 뼈는
검은 피와 눈물로 다 빠져나가, 들쥐 새끼만 하게 쭈그러들어 있다지요.」 [ 검은 사슴] p244~245
한강의 소설 [검은 사슴]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보고 싶은 마음에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죽음을 맞는 “검은 사슴”은 [제르미날]의 탄광 노동자와 대한민국에 사는 이 땅의 노동자들과 닮아 있다. 아마도 그 분노한 “검은 사슴”의 좌절감이 본모르 영감이 목덜미가 새하얀 세실을 목졸라 죽이게 만들었고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이 박사장의 가슴에 칼을 꽂게 만들었을 것이다.
소설 [제르미날]은 어둡고 무겁고 분통 터지는 책이다. 노동자가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시작해서 굶어 죽고 맞아 죽고 패배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그 누구도 글로 쓰지 않았던 그 시절 있는 그대로의 삶을 공론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 특히 그 당시 프랑스의 탄광 노동자들은 작가 에밀 졸라에게 감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가스중독으로 에밀 졸라가 1902년 사망했을 때 그의 장례식에서 노동자들이 “제르미날”을 외쳤던 것은 아닐까.
이제 다시 2020년을 사는 우리가 “제르미날”을 외칠 때다. 4월 15일 선거가 우리의 앞으로의 100년을 결정짓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명박근혜의 당선이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었는지를 되돌이켜 본다면 다시 그런 실수를 범해서는 안될 일이다. 소설 [제르미날]에서 빈곤이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특히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내일이 어두워질수록 그 그늘에서 고통받는 건 여성의 몫이 더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르미날]은 에밀 졸라가 쓴 루공-마카르 총서의 일부이다. 이 책은 1800년 대 말 제2제정이 통치하는 프랑스 몽수 지역의 탄광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로 탄광 노동자의 비참한 노동현실과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1800년대 초반 산업화에 힘입어 호황을 맞았던 석탄산업은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경기불황이
지속되자 중소 경영인들이 줄지어 파산을 하는 가운데 과다 생산으로 인한 원가 인하 경쟁을 하게 되었다.
석탄산업의 원가 인하는 곧바로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으로 이어졌는데 탄광회사는 임금의
삭감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파업을 부추김으로써 석탄재고를 조절할 음모를 꾸몄다.
실제로 1869년 10월 7일, 아베롱Aveyron 지방의 오뱅 탄광에서는 파업에 참여한 광부들과 군인들의 유혈충돌로 인해 모두 열네 명의 사망자와 스무 명의 수상자가 생겼으며 이후에도 1878년 프랑스 북부 앙쟁에서 파업이 발생했으며 1884년 2월에는 1만 2천 명의 광부가 참여한 파업이 두 달 동안 지속되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에밀 졸라는 지인인 알프레드 지아르의 초대를 받아 드냉 부근에 있는 르나르 갱을 방문해서 갱도 내에 직접 들어가 갱도 내의 상황을 세밀히 살피고 탄광촌을 방문해 광부들의 삶의 실상을 <앙쟁에 관한 노트>에 세밀하게 기록했고 이 기록이 소설 [제르미날]을 낳게 되었다.
“제르미날”이라는 소설 제목은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공회가 개정한 달력의 절기 중 ‘싹트는 germer달’을 의미한다. [제르미날]의 도입부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목로주점] 제르베즈의 아들 에티엔이 우연히 드 보뢰 탄광의 광부가 되게 되고 광부들의 파업을 위한 구심점이 되었다가 파업이 실패한 후 다시 희망을 꿈꾸며 떠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소설 [제르미날]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