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생존을 위한 집단 무의식
=죄의식

#테레즈라캥 #책 #에밀졸라 #소설 #문학동네

by 묭롶


영화 <박쥐>는 원작 소설인 <테레즈 라캥>에서 많은 부분(인물과 사건 등)을 가져왔다. 이 작품을 쓴 에밀

졸라는 공쿠르 형제와 플로베르의 영향을 받아 특정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그 모습을 글로 남겼다. 이 책은 자연주의 소설로 분류되지만 내가 보기엔 범죄 심리 소설로 보인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C.G. JUNG이 환자들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1941년에 [무의식의 구조]라는 논문에서 ‘집단적 무의식’과 ‘아니마’, ‘아니무스’의 개념을 다뤘다면 에밀 졸라는 그보다 80여 년이나 빠른 1866년에 <테레즈 라캥>이라는 소설 속에서 융이 다룬 논문의 내용을 소설 속에서 실연(實演) 해 보였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를 보면서 나는 뱀파이어가 된 상현이 여전히 인간의 감정 즉 죄책감을 지닌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강주의 아내인 태주를 욕망하게 된 뱀파이어 상현은 태주와 공모해서 강주를 물에 빠뜨려 죽였다. 이제 방해물이 사라졌으니 태주와의 관계에 걸림돌이 없어야 하는데 태주를 볼 때면 자꾸 강주를 의식하게 되는 상현의 심리와 자신이 태주를 자신과 같은 뱀파이어로 만들고서 그런 그녀의 모습에 죄책감을 갖는 모습이 내 눈에는 이상하게만 비쳤다.


하지만 만약 뱀파이어가 된 상현이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모두 잃었다고 가정해봤을 때 영화 <박쥐>는 영화 <부산행>과 같은 좀비물이 됐을 것이다. C.G. JUNG은 [인격과 전이]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집단무의식(페르조나Persona)이 적용되지 않는 인간을 ‘원시인’이라고 말했다. 인류사를 통해 형성된 ‘집단 무의식’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건 아마도 수렵, 채집 등 독자적인 개체로 생존했던 원시인들이 필요해 의해 집단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인류라는 종족이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면 인류라는 종족은 이미 지구 상에서 자멸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죄의식'은 융의 이론에 비춰봤을 때 인류의 생존을 위한 암묵적인 약속(집단 무의식)으로 보여진다.






[ 사회는 이것을 일종의 안정보장책으로써 요구한다.

즉, 각자는 자기의 위치에 서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인위적 인격의 구축은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이 되고 있다.

~집단적으로 어울리는 페르조나의 구축은 외부 세계에 대한 엄청난

양보와 진정한 자기희생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아를 곧장 페르조나와 동일시하도록 강요한다. ] <인격과 전이> p100~101






원시 인류는 집단을 만들면서부터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서로 죽이지 않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을까.

그 약속은 인류의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좀 더 세분화되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집단 무의식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게 되었다. 고로 듀얼 코어로 움직이는 컴퓨터처럼 집단 무의식과 자아를 동시에 지닌 채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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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테레즈 라캥>에서 병약한 남편으로 인해 욕구불만에 싸여 있던 테레즈에게 남편인 카미유의 친구인 로랑은 구원자로 여겨졌다. 로랑 역시 자신의 동물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테레즈가 필요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동물적인 일차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걸림돌인 카미유를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고 사고사로 위장했다.

카미유를 살해한 이후 발생한 테레즈와 로랑의 신경증은 평소의 일상생활에서는 전면에 나서지 않던 집단 무의식이 그들이 ‘살인’이라는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죄의식(카미유의 환영)’으로 활성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 그것은 나의 현실 세계가 환상적인 비현실성에 의해

위협받고 있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그저 하나의 환상이라는 것,

즉 전적으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한순간이라도 망각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의 환상을 구체화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러나 인간은 환상을 구체화하려는 엄청난 성향을 갖고 있다. ] <인격과 전이> p132



-> [ 날이 갈수록 두 연인들의 공포는 커가고 있었으며,

매일 밤 그들은 미칠 듯한 악몽에 짓밟혔다. ] p179






이제 둘은 홀가분하게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면 되는데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버금가는 연기력으로 경찰과 지인의 의심을 사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갔음에도 그들은 그들 스스로 열지 말았어야 할 문을 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 육안으로 발견되지 않는 세균이 갑작스러운 시력의 발달로 온 몸에 묻어 있는 세균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테레즈와 로랑은 ‘죄의식’이라는 집단 무의식의 보복으로 ‘죄의식’의 환영인 카미유를 보게 되는 것이다. 거듭되는 환영으로 인해 고통받는 테레즈와 로랑은 서로에게 자신의 죄의식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이제 그 거울을 깨지 않는 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테레즈와 로랑은 청산가리를 나눠 마시고 죽고 말았다.






[ 그러나 만약 무의식의 내용(이러한 환상)이 ‘실현’되지 않을 때는

그로부터 부정적인 활동이 생기고,

하나의 인격화, 즉 아니무스와 아니마의 자율성이 발생된다.

정신적인 이상 상태, 즉 일상적인 기분과 관념에서 정신병Psychose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도의 빙의 상태가 발생한다. ] <인격과 전이> p142


-> [ 그는 다시 잠들려 했다. 그러나 욕정에 싸인 옅은 잠과

갑작스럽고 가슴을 찢는 듯한 깨어남이 계속되었다.

그는 미칠 듯이 끈기 있게 테레즈 쪽으로 갔으나

부딪히는 것은 역시 카미유의 시체였다.

~그리고 번번이 정부를 껴안으려고 팔을 벌리면 물에 빠져 죽은

카미유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 p171







<테레즈 라캥>이 쓰인 1866년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인간의 억눌린 욕구의 이상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시기였으나 에밀 졸라는 그 같은 증상에 시달리는 임상 환자의 사례들을 겪지 않고도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체에 다가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동물적 욕구 충족이 우선이었던 로랑이 테레즈의 기질을 닮아가는 모습은 융의 이론에 비춰볼 때 로랑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여성적인 부분인 ‘아니마’가 활성화(로랑의 신경증을 촉발)되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부분이다.


<테레즈 라캥> 의 발표 이후에 발자크의 <인간극>에서 영감을 얻어 쓰기 시작한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속에서 발생하는 주인공들의 치정과 살인 그리고 복수는 융의 [인격과 전이] 속 이론을 펼쳐 보이는 사이코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캥>을 시작으로 해서 이후 그의 작품을 통해 인간이라는 풀기 어려운 방정식에 다양한 해(사건)를 적용시킴으로써 그 실험의 결과물을 그의 [루공 마카르 총서]에 담았다.


나는 에밀 졸라의 첫 실험의 결과물인 <테레즈 라캥>을 읽으며 정신분석학이 발견하지 못하는 지점을 어쩌면 문학이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한 사람의 생애는 인류사라는 큰 물결 속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공기방울처럼 스러지지만 문학이라는 집단 무의식을 통해 인류는 생물학적 진화는 멈췄지만 ‘인간’을 가능성의 영역을 향해 문을 열어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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