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드라마처럼 어느 날 멋진 차를 타고 나타난 중년의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사실은 내가 너의 친엄마란다”라고 내게 말하는 몽상을 하기도 했다. 남루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허황된 몽상이었지만 성냥팔이 소녀를 성냥불이 켜져 있던 딱 그 몇 초 동안 따뜻하게 해 준 온기만큼의 위안을 나는 그 속에서 맛보곤 했다. 한편으론 만약 내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 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저명한 외과의사 윌리엄 와일드와 민족주의 시인이자 번역가인 제인 프란체스카 엘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의 두 줄만으로도 오스카 와일드가 금수저로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저명한 고전학자 존 마히피 교수의 지도 아래 그리스 문학과 문화를 공부했고,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으며 유미주의의 선구자인 윌터 페이터와 존 러스킨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위의 세 줄을 통해 오스카 와일드가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 속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인정받는 사회적 계급(금수저)으로 태어나 훌륭한 교과과정(지적 우위를 선점)을 통해 사회적인 명성과 부를 획득한 오스카 와일드는 사회 계급의 피라미드 꼭짓점에 위치해서 나른한 눈길로 자신을 따르는 대중을 자신의 문장과 언어로 지휘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던 그가 전생을 걸쳐 갖지 못한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사랑(완벽한 예술작품으로서의)’이 아니었을까?
39세의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23세의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보는 순간 오스카 와일드는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자신에게 없던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단 한 가지를 가진 존재가 대단히 정신적으로 유약한 남자였다는 점이다. 만약 오스카 와일드의 눈에 띈 존재가 여성이었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다른 꽃도 무수히 많은데 기어이 가파른 절벽에 핀 꽃을 꺾겠다고 절벽을 기어오르다 추락해버린 전설 속의 인물들처럼 오스카 와일드는 끝내 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 ~ 사랑은 상상력을 먹고 자라지. 우리는 상상력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현명해지고,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나아지고,
지금의 우리보다 더 고귀해질 수 있어.
상상력에 의해 우리는 삶을 하나의 전체로 볼 수 있는 거야. } p 90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술을 형상화해내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말을 자신 스스로의 삶으로 증거 해냈다.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만난 순간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죽고 만 나르시시스트처럼 오스카 와일드는 앨프리드 더글라스를 향한 사랑이라는 캔버스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예술적 실체를 지닌 사랑의 결과물을 표현해내려 했지만 파도에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모래성처럼 법정 구속과 이년 여의 수감생활 끝에 그는 그 자신의 이름마저 잃게 되었다.
{ ~신들은 참 이상해. 우리를 벌줄 때 우리의 악덕을 그 도구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우리 안의 선하고 다정하고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이용해 우리를 파멸로 이끄니 말이야. } p 80
{ ~ 나는 나의 천재적인 재능을 헤프게 썼고,
영원한 젊음을 낭비하는 것에 야릇한 즐거움을 느꼈어.
정상에 있는 것이 지겨워진 나는 새로운 감각들을 찾아
의도적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내려갔던 거야. } p 137
나는 오스카 와일드가 앨프러드 더글러스를 만난 순간 이 모든 것을 예감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는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끝내 뒤돌아서지 않았고 끝까지 걸어갔다. 물론 그 길에 앨프리드 더글러스는 없었다.
[심연으로부터]를 읽으며 나는 그가 진정 사랑한 인물은 앨프러드 더글러스가 아닌 바로 그 자신(자신의 사랑이 예술적으로 투영된 작품으로서의 앨프러드 더글러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앨프러드 더글러스(보시)를 만나기 전에도 그는 왕성하게 단편과 극작품들을 써왔다. 시골 마을에서 저녁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남자가 어느 날 정말로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는 입을 닫고 말았다는 그의 작품 속 이야기처럼 오스카 와일드에게 세상은 그의 글 밭이었다. 그 자신이 연구해 온 그리스의 고전문학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도 얼마든지 소재는 넘쳐났고 그는 그 소재를 문장으로 엮는데 천재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 ~ 예술에서의 진실이란 결국,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내면을 표현하는 외형, 인간의 모습을 한 영혼,
정신이 충만한 육체, 형식이 내용을 드러내는 삶”이 아닐까? } p 172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의 흥미와 시선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써내던 오스카 와일드는 보시를 만난 순간 삶을 통해 예술을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앙드레 지드에게 “예술에는 1인칭이 없다”라고 말한 그의 말의 의미는 결국 예술가의 삶은 그 자신의 삶조차도 예술을 위한 헌신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찰나동안 느낀 자신의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절망의 조각상을 가져다 기쁨의 조각상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한 조각가처럼 앨프러드 더글러스라는 인물에 자신의 사랑을 투영한 예술품을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실패의 처참하고 씁쓸한 잔재가 깨진 사금파리처럼 [심연으로부터]에 담겨 있다. 가장 빛나는 보석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추앙받았지만 산산이 부서져 모래 한 움큼이 되어버린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이 만들려다 실패한 작품의 잔재가 가슴속에 남아 감옥을 나와서도 글을 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 ~어느 날, 와일드의 어머니의 친구였던 애나 드 브레몽 백작 부인이
그에게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지 묻자(그녀는 전날
그를 모른 체했던 것을 미안해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글로 쓸 수 있는 것을 다 썼습니다.
나는 삶이 뭔지 모를 때 글을 썼지요.
이젠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쓸 게 없습니다.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 p32
써지지 않는 글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은 오스카 와일드를 떠올려보니 글로는 쓰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보려다 무참히 실패한 잔해들을 잔뜩 쌓아둔 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도 같아서 양희은 선생님의 <사랑 그 쓸씀함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떠올리게 된다. 왠지 한 때 너무 뜨거워서 죽을 것 같았던 내 사랑의 잿더미가 눈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노래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