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그레이초상 #오스카와일드 #책 #소설
코로나 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근무를 했더니 얼굴이 접촉성 피부염에 걸려 온통 발진으로 뒤집어졌다.
피부과에 가서 연고도 처방받고 피부과 약도 먹었지만 한 번 뒤집어진 피부는 진정이 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특히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닿을 때면 가려움에 얼굴에서 피가 날때까지 긁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별 수 없이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고 내렸던 앞머리를 죄다 핀을 꼽아 위로 고정시켜야 했다. 꽤 오랜 시간을 잘 보지 못했던 내 이마는 그동안 열심히 나이를 먹어 있었다. 업무를 할 때 짜증이 나거나 힘이 들 때마다 인상을 써서 미간에 확 패인 세로 주름과 온갖 감정을 죄다 이마로 표현했는지 가로 주름이 자글자글한 나의 이마는 내 나이를 액면가보다 높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업무를 하다가 그동안 앞머리가 가리고 있었던 나의 이마를 볼 때마다 나는 한숨을 쉬게 되었고 며칠 전 읽었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떠오르면서 만약 소설 속 인물 도리언이 현재의 코로나 19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의 초상화도 그 대신 접촉성 피부염으로 온통 벌겋게 발진이 일어난 모습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대신 나이를 먹는 초상화라니 신데렐라 풍의 동화와 같은 참 막연한 상상력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종교를 통해서라도 영원과 영생을 추구하는 무수히 많은 인간들을 떠올려보니 차라리 오스카 와일드의 상상력이 종교를 통해 꿈꾸는 영생보다는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꿈꿨던 도리언은 외양은 멀쩡하지만 속으로 곪아 들어간 사과처럼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타락한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내면과는 반대로 빛나는 젊음으로 가득한 자신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환멸을 견디지 못한 채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말았다. 도리언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영원한 작품으로 남기기를 바랐던 베질은 그 자신의 뮤즈였던 도리언에게 살해당했다. 도리언의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바질의 재능을 부러워했던 해리는 그들로 인해 자신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을 냉소하는 것으로 환멸 가득한 세상을 살아갔다. 이 작품에선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젊고 아름다움을 지닌 도리언도 재능을 지닌 베질도 위트가 넘치는 해리도 결국은 삶을 비극으로 끝내고 말았다.
{ “좋아하지. 나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어.
물론 내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 친구에게 찬사를 늘어놓기는 하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럴 때마다 야릇한 기쁨을 느낀단 말이야.
하지만 이따금 그가 아무런 배려도 없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은 때도 있어.
해리, 그럴 때면 어떤 느낌인 줄 알아?
그가, 송두리째 내준 내 영혼을 어느 여름날 웃옷 깃에 장식할 꽃 한 송이,
하루만 쓰고 버려질, 허영심을 만족시켜줄 장식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네.” } p24
오스카 와일드가 36세에 발표한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며 나는 베질이 헨리 경에게 도리언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 36세의 오스카 와일드는 그가 이 소설을 쓴 후 39세에 만난 앨프러드 더글러스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고 그 감옥에서
쓴 [심연으로부터]에
{나는 당신에게 내 삶 전부를 주었지. 그런데 당신은 인간의 강렬한 감정
중에서 가장 저급하고 경멸스러운 증오와 허영심과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 삶을 허비해버렸어. } [심연으로부터 ] p106
라고 적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도리언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신의 작품으로 영원에 기록하길 바랬던 화가 베질은 도리언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작품을 쓰고 3년 후 만난 앨프러드 더글러스로 인해 오스카 와일드는 사회적으로 매장되었고 감옥에서의 노역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예술적 뮤즈인 도리언에게 집착하는 베질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오스카 와일드와 닮은꼴이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실제의 삶에 저주가 될 수 있음을 그는 비평가들이 허무맹랑한 소설이라고 치부했던 그 자신의 소설을 통해 그 무엇보다도 실감 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는 이 작품을 쓴 당시부터 그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비극을 향해 있음을 예감했지만 끝내 자신 스스로 그 끝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 모든 것을 예감했으면서도 왜 멈추지 못했을까? 다른 작가들이 문학이라는 좁은 틀이라는 그 한정된 공간에 글로써 물감칠을 했던 반면 오스카 와일드에게는 문학이라는 캔버스가 너무 좁게만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그 자신의 삶이라는 보다 넓은 영역에 앨프러드 더글러스(아름다움으로써의 예술)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예술을 자신의 인생으로 표현해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뜻하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실제로 삶 속에서 살아냈던 오스카 와일드 그 자신의 삶이 이미 하나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감옥에서 나온 이후로는 더 이상 문학이라는 좁은 틀 위에 글을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삶을 도화지 삼아 온몸으로 예술을 살아낸 오스카 와일드를 보며 예술과는 거리가 먼 나는 그저 코로나 19가 빨리 사라져서 나의 액면가를 드러내는 내 이마를 도리언의 초상화처럼 앞머리로 감출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