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로 살던 시간을 가로 방향으로 가로지른다면.

#책 #소설 #어두운숲 #니콜크라우스 #문학동네

by 묭롶
200CF3104A57236A05.jpg

니콜 크라우스의 장편소설 [어두운 숲]을 읽고 나는 2006년에 개봉했던 영화 [사일런트 힐]이 떠올랐다. 밤마다 몽유병 증상을 보이며 “사일런트 힐”을 찾는 딸 샤론과 함께 30년 전 화재로 사라진 “사일런트 힐”이라는 마을을 찾아 나선 엄마는 마을의 경계에서 딸을 잃고 그 딸을 찾아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너무나 끔찍한 진실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 마을에서 다시 희생물로 바쳐지려는 자신의 딸 샤론을 구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온 공간은 이미 그전에 남편과 함께 가족으로 살던 그 공간이 아닌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익숙한 아내의 향수 냄새를 맡지만 아내를 볼 수 없는 남편과 딸과 함께여서 행복한 엄마의 모습이 비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나는 오래도록 잊히지가 않았다.


다시 소설 [어두운 숲]에서 작가인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을 맴도는 예루살렘 가자지구에 위치한 힐튼 호텔에 가서 작품을 써낼 글감의 실마리를 찾아내고자 하지만 그곳에서도 글은 써지지가 않았다. 투숙객의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되지 않아 힐튼호텔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받지 못한 과일 바구니를 잘 받았느냐는 지배인의 인사를 받게 되고 카프카의 ‘변신’에 관련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리드만의 소개로 여행을 떠나던 길에 뜻하지 않게 큰 병을 앓게 되었다. 고립된 사막에서 신열에 들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돌아온 호텔에는 그녀가 그전에 받지 못했던 과일바구니가 그녀의 객실에 미리 준비되어 있었고 호텔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녀는 자신이 이스라엘로 출발 전 투숙객 사망사고를 들었던 바로 그 사망사고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가 택시에서 내려 짐가방을 든 채 그녀는 자신의 집 거실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솔직히 나는 데카르트가 싫고 그의 공리를 무언가의 확고부동한

근거로 신뢰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가 숲에서 나와 일직선으로 나아가라고 하면 할수록 나는,

예전에 우리가 매사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그것이 존재와

세상에 대한 진정한 인식의 전제 조건이라고 이해하고 살았던

그 숲 속에서 헤매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p 66~67






[어두운 숲]은 순서가 뒤바뀔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연속성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전복시킨다. 일 차선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한계를 넘어선 색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시공간이 겹쳐져 있다는 가정하에 누군가는 그 시공간을 직선으로 살지 않고 그 시공간의 측면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다면 그는 어떠한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일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미래의 아버지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딸에게 공식의 실마리를 전하기 위해 애를 썼던 장면처럼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볼 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그 힘을 잃는다. 이 책에 의하면 나는 생각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사막을 가로질러 난 길의 본질……

가나안은 평생 그의 콧구멍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가 죽기 직전에야 그 땅을 볼 수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모세가 가나안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인생이 짧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 p173






바로 이러한 데카르트의 명제를 역행하는 길 위에서 [어두운 숲]은 출발한다. 이미 오래전 장자의 ‘호접몽’에서처럼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고 나비가 사람이 된 꿈을 꾸는 것일 수도 있다는

가정은 일 차선으로 인식했던 인간의 삶의 영역을 무한대로 늘려 놓았다.

[어두운 숲]은 바로 그러한 다층적 시간의 개념을 깨달은 프란츠 카프카가 실은 폐병으로 죽음을 맞은 것이 아니라 변신에 성공해서 사막의 정원사로 제2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으며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영혼이 공허해서 빈 껍데기처럼 느껴진 성공한 유대계 변호사인 엡스타인의 실종을 통해 그가 스스로 다른 차원을 선택해서 여행을 떠났음을 짐작하게 하고 글을 못 쓰는 작가인 ‘나’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다층적 시간의 결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 그날 저녁, 하늘이 주황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해갈 때.

엡스타인은 셔츠를 벗고 바다 앞에 서서 넘치는 생동감,

새와 같은 자유를 느끼며 그동안의 포기와 기부가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마침내 이해했다.

~그의 나날은 산란하게 퍼져나갔다.

물과 하늘을 나누는 선이, 그 자신과 세상을 나누는 선이 없어졌다. } p291


116F1B10AB906E55DB.jpg

1999년 개봉된 영화 [매트릭스 1]과 2006년도의 [사일런트 힐], 2010년의 [인셉션] 그리고 2014년의

7b4dd01f05e74ec79136e419f674196d1578962830150.jpg
22021D4C544570692D.jpg

[인터스텔라]는 모두 장자의 ‘호접몽’이 갖는 역전환의 가능성에 바탕을 둔 세계관을 그린다는 공통점을 지닌 작품이다. 바로 그 영화를 통해 보인 ‘호접몽’의 세계를 글로 옮겨 쓴 소설이 2017년에 니콜 크라우스가 쓴

[어두운 숲]이다. 어찌 보면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유대계 변호사 앱스타인의 실종과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인 나의 이야기)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바늘로 꿰매어 놓은 양면점퍼 같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 함께 꿰매어져 있는 그 이면이 무엇 일지를 상상해보게 된다

. 혹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로맹 가리도 이러한 변신의 비밀을 깨닫고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인물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무수히 오랜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소멸되며 매일매일이 똑같은 삶일 뿐이라는 인류의 문명이라는 “어두운 숲”에서 그 어둠 속에 잠겨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 그 숲을 뚫고 나아가 다른 곳을 찾은 누군가가 있고 또 있을 거라는 희망을 이 책을 통해 꿈꾸는 오늘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