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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언제나 모든 일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선천적 재능이 부족한 방면에서는 순전한 의지의 힘으로
자신을 한계 너머까지 몰아갔다.
~그는 벽을 마주치면 계속 들이받고 매번 넘어졌다
일어서면서 결국 언젠가는 그 벽을 돌파했다. ] <어두운 숲> p18~19
[ ~머리를 뒤로 넘기려고 손을 올린 그는
변색된 왕관이 여전히 머리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왕관을 벗어 바위 위에 올려두고 돌아서서,
수천 년의 물과 수천 년의 바람에 깎인 와디로 들어섰다.
~그는 이제 아주 멀리까지, 저 멀리 요르단까지 볼 수 있었다. ] <어두운 숲> p345
[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 <에브리맨> p188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어두운 숲>의 작중 인물인 앱스타인은 자수성가한 유대계 변호사이다. 그는 어려운 현실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 정점에서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이후 그는 자신의 부를 주변에 나눠주고 자신이 투자한 영화에 단역인 다윗왕으로 촬영을 위해 대기하던 중 왕관(소유를 상징)을 내려놓고 언덕 위로 사라지고 말았다.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에서 작중 인물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으로 자신이 정착한 유니언 카운티에 에브리맨(보통사람)이라는 상호로 보석상을 열었다. 보통사람이 갖기 힘든 다이아와 시계를 마을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권하고 외상으로 주면서 그 대금의 상환을 재촉하지도 않아서 주변에 좋은 평판을 받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충실했던 삶의 결과로 뼈가 되었으며 일생을 현재의 행복을 좇아 살아왔던 나도 곧 저 무덤 속에서 한낱 뼈로 흩어지고 만다는 작중 인물의 깨달음은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어두운 숲>의 작중 인물 앱스타인의 마지막과 닮아 있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읽고서 바둑에도 한 수 물리기가 있고 가위 바위 보도 삼세판이며 도박도 밑천이 떨어질 때 까지는 도박기구를 다룰 수 있는데 왜 인간의 삶은 단 한 번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도 거지도 권력의 유무를 떠나 모두에게 단 한 번이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공평하지만 그 살아가는 과정에서의 격차를 따져본다면 이건 참 억울한 일이다.
<에브리맨>의 작중 인물은 그나마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첫 번째 결혼이 행복하지 않으니 그 결혼을 깨고 자신에게 헌신하는 여성 피비를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했고 자신을 너무나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딸 낸시를 얻었지만 육체적인 행복을 포기하지 못해서 비서와 바람을 피웠고 또 젊은 모델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아내에게 들키게 되자 피비와 이혼한 이후 자신보다 스물여섯이나 어린 모델과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이후 육체적 건강을 잃게 되자 직장생활 동안 꿈꿔왔던 화가의 길을 걷고자 하지만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회한과 스스로 버려버린 가족과의 행복한 노년에 대한 후회가 매일같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가운데 그는 홀로 동맥 폐쇄 방지용 스텐트 삽입술 도중 사망했다.
[ 노년은 전투예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 p149
그래도 <어두운 숲>에 나오는 앱스타인이나 <에브리맨>의 ‘그’는 보편적인 기준에 놓고 볼 때 사는 동안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후회 없이 모두 경험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내 나이 12살에 당좌수표를 부도내고 스스로 죽음이라는 도피처로 떠나버린 아버지 대신 세 명의 동생과 할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친정을 물질적으로 도울 수밖에 없는 나는 이제야 늦은 나이에 얻은 딸아이 한 명과 어렵게 장만한 집 한 채가 있지만 벌써 내 나이는 마흔여섯이다. 정말 하고 싶은 게임이 있었는데 공인인증서가 잘못돼서 그걸 복구하느라 핸드폰 배터리를 다 쓰고 남은 배터리가 10% 임을 확인했을 때의 느낌이 이와 같을까. 이제 내게 남은 건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면 한 개씩 더 늘어나는 질병들과 소멸되어 가는 체력 그리고 감퇴되는 기억력………. 거기에 가장 두렵게 다가오는 퇴직의 날 뿐이다.
<무소유>를 실천하고 집필했고 ‘무소유’로 떠나신 법정스님은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듯 참으로 덤덤하게 입적을 하셨지만 일평생을 ‘소유’를 꿈꿨고 ‘소유’를 위해 살았고 또 지금 남은 생애 동안도 ‘소유’에 질질 끌려 살아가야 하는 나는 <에브리맨>을 읽고 마음이 심란하기만 하다. 그저 작중 인물의 말처럼 [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늘대로 받아들이세요.” ] p13 문구를 이 앙다물고 되뇌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