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방 #앤젤라카터 #책 #소설 #문학 #문학동네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을 읽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왜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으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그 점이 참 의아해졌다. 누구에게나 남모르는 속사정이 있는 건데 백설공주의 새엄마는 “왜”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했을까? 또 라푼젤을 가둔 마녀는 키운 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동화 속 새엄마들은 하나같이 다들 악독한 것일까?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말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었을까? 등등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왜 그때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나라면 착하기만 한 고구마 오만 개인 신데렐라를 절대 동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엄마를 학대로 신고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생각은 하지 않고 쥐새끼(쥐한테 미안하지만 쥐만 생각하면 2mb가 생각이 나서...)나 참새들에게 마음을 토로하는 답답이는 되지 말아야지 스스로 자신을 지지리 궁상으로 만드는 신데렐라의 행동에 지금의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등의 100% 닫힌 행복한 결말 뒤에도 삶은 지속되는데 동화 속 마침표에는 이후의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가 1%도 없다. 동화가 갖는 비현실성은 바로 이 닫힌 마침표에 있다. 인류가 축적해 온 오래된 삶의 다양성을 학습해 나가야 할 어린이에게 결말이 닫힌 동화는 비교육적인 장르이다. 내 딸아이에게는 창작동화를 읽히지 이런 닫힌 결말을 지닌 동화책을 읽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앤젤라 카터의 작품이 바로 <피로 물든 방>이 되겠다.
앤젤라 카터가 동화 <푸른 수염>을 뒤집어엎고 그 뼈대 위에 새롭게 이야기를 증개축한 소설 <피로 물든 방>에서 주인공인 나는 더 이상 구원자인 오빠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기 위해 즉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고 그 엄마가 말을 타고 성으로 달려와 명사수의 실력으로 총알 한 발로 변태 성욕자인 남편을 처리한 이후 그녀는 정당방위를 획득하여 물려받은 재산으로 시각장애를 지닌 피아노 조율사와 재혼을 하여 다른 삶을 설계한다.
[ 그가 절반은 꿈꾸고 절반은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 있을 때,
나는 그의 부스럭거리는 머리카락을 크게 두 움큼 뽑아서
그가 깨지 않도록 아주 부드럽게 그 머리카락을 꼬아 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빗방울처럼 부드러운 손으로 그 밧줄을 써서 그의 목을 조를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모든 새장을 열고 새들을 풀어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소녀들로 다시 변할 것이고,
모두 목에 그가 애정의 표시로 물어서 생긴 붉은 상처 자궁이 있을 것이다. ] [마왕] p169
[ 그것은 빨간 눈에 침이 줄줄 흐르는 회색빛 주동이를 가진 커다란 늑대였다.
산지기의 딸이 아니었다면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죽었을 것이다.
늑대들이 으레 그러하듯 소녀의 목을 물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아버지의 칼을 크게 휘둘러 늑대의 오른쪽 앞발을 잘라버렸다.
~소녀는 피 묻는 칼을 앞치마에 문질러 깨끗이 닦아내고
엄마가 귀리 비스킷을 싸준 헝겊에 늑대의 발을 싸서
할머니 집을 향해 발걸음을 계속했다. ] [늑대인간] p211
<피로 물든 방>의 작중 인물들은 더 이상 마법사의 마법이나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엄마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요? 라며 묻는 스스로 꿈꾸지 못하고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물론 작품 내용의 수위 때문에 이 책을 아이들이 읽을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어른들이 스스로 닫힌 생각의 자물쇠를 풀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