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담보로 잡힌 19세기의 라파엘 이야기.

#책 #소설 #나귀가죽 # 오노레드발자크 #문학동네

by 묭롶

새어머니와 의붓언니들의 구박속에 있던 신데렐라를 구원했던 마법의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가 있다면 19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라파엘에게는 나귀 가죽이 있었다. 다만 동화 속 신데렐라에게 주문을 외워준 마법사는 그녀에게 인어공주처럼 목소리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1800년대 후반 프랑스에 살았던 라파엘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이뤄주는 대가로 그의 수명을 가져갔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副를 이룬 순간 줄어드는 나귀 가죽을 보는 순간 앞으로 다시는 뭔가를 욕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끝내 문을 열고 마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라파엘에게는 무언가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마는데……….





[ 장군이나 장관이나 예술가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들의 존재에 격렬한 일탈의 욕망을 대립시켜 평범한 삶을 벗어나겠다는

욕구가 강렬하기 때문에 방탕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

결국은 피의 방탕이고 정치는 이해득실의 방탕인 셈이라네.

모든 방탄은 서로 형제간이야. ] p268







에밀 졸라는 1864년경 발자크의 <인간극>에 자극을 받아서 <루공마카르 총서>의 집필을 계획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에밀 졸라는 1877년 <목로주점>을 시작으로 자신의 연작 <루공마카르 총서>에 해당하는 각종 계급(상인, 부르주아지, 창녀, 살인자, 예술가, 사제 등)의 인물들이 살아내는 시간을 글로 적어냈다.


에밀 졸라 작품의 뿌리를 이루는 <루공마카르 총서> 출간에 영향을 준 발자크의 작품 <나귀 가죽>을 읽으며 나는 이 작품이 단순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실험관찰 기록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오! 여긴 오리들이 참 많지요.” 박물학자가 대답했다.

~기러기목은 고니에서 시작해 진진 오리로 끝나는데,

그 사이에 아주 뚜렷이 구별되는 137종의 개체가 있어요.

그것들은 저마다 이름과 습성. 서식지와 모습을 달리해서 백인과 흑인이

완전히 다르듯이 서로 전혀 닮지 않았지요.

~”짝짓기는 아주 순조롭게 이루어져서 몹시 조바심을 내며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짝짓기에서 138번째의 새로운 종을 얻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는데,

그 새로운 종에는 아마 내 이름이 부여될 것입니다! ] p 345






소설 속 오리 생물학자 라브리유가 기다리는 138번째의 새로운 종의 소설적 제목이 바로 발자크의 <나귀 가죽>이지 않을까?


<나귀 가죽>에서 자신의 욕망의 대가로 자신의 남은 수명만큼 줄어든 나귀 가죽을 늘리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구하던 라파엘이 찾아간 생물학자 라브리유 씨가 라파엘에게 들려준 새로운 오리 개체에 대한 이야기는 각각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각각의 인류를 떠올리게 한다.






[ 자네들은 모르긴 해도 조그맣거나 무력한 위를 가지고 태어났지?

커가면서 그 위를 길들이고 키우는 거야.

술을 부어 넣는 법도 배우고,

취기를 다스릴 줄도 알고,

잠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마침내 중기병 부대 지휘관의 기질을 획득하게 되지.

이렇게 자네들은 가신의 힘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거야.

신병이 대포를 상대하며 담력을 키우고 행군을 통해

다리도 단련해 선임병이 되고 나면,

아직 괴물에 예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지만 아직은 자기와 괴물 중 누가 주인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와 괴물은 때로는 승리자가 되고 때로는 패배자가 되기도

하면서 엎치락뒤치락하지 모든 것이 세계에서 말이야. ] p270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무수히 오랜 시간 동안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채 소멸된 그 많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대부분 학습된 사회화의 과정 속에서 제도와 사회 속에 발효식품처럼 절여진 채 독자의 개별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바로 그러한 어떠한 상황에 처해진 인간의 개별성을 문학을 통해 길어 올리는 시도를 발자크는 작품을 통해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 가금 사육장에서 어떤 새가 다른 새들 틈에 끼어 시름시름 앓고 있다면,

다른 놈들은 부리로 쪼아 그놈을 쫓아내고 깃털을 뽑아 죽여버린다.

이기주의의 강령에 충실한 이 사회는 비천한 자들이

자신의 축제에 대항하려 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퇴색시키려고

그들에게 그 엄격한 강령을 아낌없이 들이댄다.

돈이나 권력이 없다면 육체나 정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자는

누구라도 하나의 불가촉천민이다. ] p392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성실히 공부하고 그 사회화의 과정에 열심이었던 청년 라파엘에게 사회는 욕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거세된 욕망(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지닌 페도라와 같았고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미 그때는 늦어버린 폴린과의 사랑과 같았다.


기존 제도권에 영업되기를 원하는 한 청년이 자신의 노력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라는 조직의 불합리와 그 불합리를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재력으로 맞바꾼 라파엘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일련의 과정을 한 편의 소설로 담아내고자 했던 발자크의 시도는 소설문학이 인류사에 자리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초가 되었다.


우리가 가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화성이라는 낯선 행성에 발사된 로봇이 보내오는 영상과 데이터를 통해서 미지의 영역이었던 화성을 알아가는 과정처럼 인류는 하루살이처럼 태어나고 욕망하다가 죽어 사라지는 대부분의 인류를 문학이라는 영역에 화석처럼 박제함으로써 아무 의미 없이 스러질 1800년대 후반을 살았던 프랑스 사람 라파엘을 우리 앞에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를 예견하는 과학과 다르게 문학은 과거를 우리 앞에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잊고 있는 무언가와 인간으로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부르짖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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