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연(主演)을 되찾기 위한 천일 간의전쟁.

#2년8개월28일밤 #살만루슈디 #책 #소설 #문학동네

by 묭롶

누군가 나에게 너의 삶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곧바로 ‘나’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대답을 하고 일초쯤 뒤에 나의 대답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 내 삶을 살아가는 주체를 놓고 볼 때는 맞는 답이지만 내 삶이 과연 순수한 ‘나’로 이뤄진 것인가를 놓고 본다면 그건 틀린 답이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일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버린 성별과 국적 그리고 부모, 가족, 경제상황 등 내 삶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틀이 결정되어 있었다. 토끼 모양 틀에서 만들어진 쿠키가 토끼 모양을 벗어날 수 없듯이 나의 삶은 한계가 지워진 틀 속에서 주어진 극소수의 선택지가 주어질 뿐이다. 하지만 어릴 적 만들어 먹은 달고나에서 극소량의 소다가 다량의 설탕을 새로운 개체로 탈바꿈시키는 경우처럼 그 극소수의 선택지로 인해 인간의 삶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주어진 삶 속에서 평생을 그것이 나라고 믿으며 연기자로 삶을 마감한다.






[ 역사는 얼마나 불완전한가! 반쪽뿐인 진실, 무지, 속임수,

가짜 단서, 착오, 거짓말 등의 오리무중 어딘가에 진실이 묻혀 있으련만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고, 그래서 다 허깨비다.

진실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의 절대적 신념이 또 누군가에게는 망언에 불과하다. ] p 322







어찌 보면 지구 상에서 인간은 주연이 아닌 조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의 삶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확고한 음성으로 자신의 종교의 최고자를 말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놓고 볼 때 그들은 그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주연을 포기한 조연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는 판국에 인간을 자신의 손으로 빚어냈다고 자처하는 존재가 있으니 인간이라는 존재에 우선권을 주장하는 존재가 있는 한 지구 상에서 인간은 누군가에게 생존을 의탁해야 하는 반려 생물에 불과하다. 그냥 인간들 스스로 살아가도록 놔둬도 인간 스스로의 결함으로 인해 각종 참화가 끊이기 않을 터인데 굳이 ‘신’이라는 존재가 등장해서 인간의 삶을 연출하고 그 스스로 주연까지 맡아버리니 인간이 주연으로 살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겠는가.






[ 두려움은 인간의 운명이오.

~두려움은 인간을 신앙으로 이끄는데, 이 신앙은 두려움을 없애는

묘약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럽고 올바른 숙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오.

바르지 않은 말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치시오.

전능하신 하느님이 결코 용서하지 않는 죄 가운데 단연 으뜸이 바로 그거요.” ] p 340


가잘리로 대표되는 유신론의 강요에 대한

살만 루슈디의 답이 아래와 같다.


-> [ 두려움은 결국 사람들을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했다.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고,

두려움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신을 폐기처분할 수 있었다. ] p 410






<2년 8개월 28일 밤>의 작가 살만 루슈디는 자신의 작품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 종교의 창시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를 처단하라는 종교 법령 ‘파트와’가 선포되어 오랜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창작의 자유는 개뿔, 인간의 상상력을 언어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명은 물론 금쪽같은 아이들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살만 루슈디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해야 했을까.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한 그는 자신을 옥죄어오는 위협 앞에서 주어진 삶을 연기하는 대신 그 스스로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의 소설 <2년 8개월 28일 밤>을 통해 답하고 있다.






[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자를 변모시키는구나.

미스터 제로니모는 총구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두려움은 제 그림자가 무서워 도망치는 남자와 같다.

헤드폰을 끼고 자신의 공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여자와 같다.

두려움은 자기중심적 나르시시스트, 자기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두려움은 윤리보다 강하고, 분별력보다 강하고, 책임감보다 강하고,

문명보다 강하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피하려고 아이들을 마구 짓밟으며 질주하는 짐승이다.

두려움은 고집쟁이, 폭군, 겁쟁이 맹목적 분노, 창녀다.

두려움은 제 심장을 겨눈 총탄이다. ] p 245


(신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한 인간을 향한 종교적 테러행위에 대해

살만 루슈디만큼 명확하게 해석한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勇者다. )






이 소설의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인간의 삶에 신적인 존재가 개입하면 인류의 삶이 콩가루가 된다가 될 것이다. 인간이 이성주의를 회복함으로써 서로 융화의 삶을 살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을 펼치는

이븐 루시드라는 학자를 사랑하는 마족의 공주 두니아가 유신론을 주장하며 신의 계율에 따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가잘리라는 학자의 부탁에 따라 인간계에 개입한 흑마족 주무르 드에 맞서 싸우는 천일동안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 흑마 신은 처음부터 점령국 백성을 멸시했지만 새 제국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인간을 모으기가 너무 쉬우니 점점 더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탐욕과 공포.” 늘 그랬듯이 적도 부근에서 지구 상공을 도는

먹구름에 올라앉아 동료 우두머리 세 명과 함께 저 아래 보잘것없는

인간을 내려다보며 흉볼 때 주무루드가 말했다.

“공포와 탐욕, 그것만 있으면 저 버러지들을 다스리기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쉽지.” ] p335






어쩌면 <2년 8개월 28일 밤>에 인용된 9.11 테러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신의 두려움을 인간들에게 심어주라는 가잘리의 요구대로 인간끼리 종교를 이유로 서로 참살하도록 만드는 흑마족 주무르드의 모습은 聖戰이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테러를 감행하는 IS단체를 연상케 한다. 죽어서 티끌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못했던 가잘리의 집념이 불러온 참화는 신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살만 루시디의 답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인간이 없다면 신도 없다.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인간이 주인이어야 한다.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신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나 등장하던지 아니면 사라지시라.






[ ~마족의 사악하고 극악무도한 모습은 곧 인간의 극악무도하고

사악한 일면을 비춰주는 거울과 다름없음을 깨달았고,

인간의 본성에도 똑같은 무분별이 있어 무자비하고

괴팍하고 악의적이고 잔인함을,

마족과의 싸움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닮았음을,

따라서 마족은 현실인 동시에 추상적 개념임을,

그들이 하계로 내려오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근절해야 하는지

보여주었음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비이성이었고, 비이성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는 흑마족의 이름이었고,

~제로니모 자신도 내면에 깃든 마족 자아를 제어해야 한다는 것을,

마족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무분별도 물리쳐야 비로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 p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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