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최종회에는 죽음이 등장한다.

#책 #소설#사랑광기그리고죽음의이야기#오라시오키로가

by 묭롶


< 삶과 죽음은 동일한 세계의 대척점에서 빛나는 광선이다. 둘은 시작하고 끝맺는다. >

- 오라시오 키로가


나는 요즘 tvN에서 방영 중인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 푹 빠졌다. TV를 오 년 넘게 보지 않다가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에 풍덩 빠지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코로나 19로 인해 삭막해진 내 삶이 판타지에 목이 말랐던 건 아닐까.


어느 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백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 주인공이 술을 마시고 얼떨결에 세상 다 망해버리라고 외쳤는데 그걸 들은 멸망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삶에 찾아오는 데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멸망은 계속 존재해 왔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함께 해온 멸망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우리의 삶도 시작과 동시에 죽음이 함께 존재해왔지만 우리는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존재하지만 사는 동안 인지하지 못하는 죽음은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오라시오 키로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죽음도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단편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무서운 장면을 보지 않으려고 애써 눈을 감고 그 부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대신 오라시오 키로가는 그 순간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그 대상을 직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사는 동안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멘수들]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나는 죽음의 입장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 ~여기서 도망치는 것과 그에 따른 위험부담은 – 어떤 멘수든 이를

다 헤쳐나가려면 혼신의 힘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포사다스에 내린 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카예는 다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 돈으로 흥청망청 술을 마셨다.

결국 거나하게 취한 그는 비틀거리며 향수를 사러 가게로 향했다. ] p166





드라마에서 멸망이 있어 순환이 존재하는 것처럼 죽음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무엇을 보기 위해 그 무수히 많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 ~ 몸 상태는 점점 나아졌다. 남자는 몽롱한 정신으로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곧 도착할 수 있을까? 이제 서쪽 하늘은 완연히 금빛으로 빛나고,

강물도 아름다운 금빛으로 물들었다.

~배에 탄 남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가뿐해졌다.

~서서히 남자의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남자의 숨이 멎었다. ] p 111~112





독사에 물려 치료를 받기 위해 보트를 타고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자신의 몸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죽어버린 [표류] 속 남자와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인간이 메어 놓은 밧줄을 벗지 못하고 그들이 주는 먹이를 찾아 되돌아오는 [가시철조망]의 흰둥이와 구렁말을 지켜보며 매달 받는 월급에 족쇄 채워진 채 쳇바퀴를 도는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오라시오 키로가는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위암 선고) 앞에 청산가리를 먹고 음독자살을 했다는데 나에게는 그러한 광기가 없다. 아니 있었지만 월급의 노예가 되면서 광기는 봉인되고 말았다.

그의 책을 읽으며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저마다의 광기는 모두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잃을 것이 없었던 중학교 시절 나의 광기는 내게 죽음이 빨리 찾아오기를 날마다 소원하며 발버둥 치는 것으로 발현되었지만 이제 가진 것이 많아진 지금은 광기의 발현이 혹여나 죽음과의 만남을 앞당길까 두려운 마음이 엄습한다. 어린 시절 뜨겁게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현재는 얻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랑의 계절]의 네벨처럼 이제 반백에 가까운 나는 죽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삶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판타지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최종회가 없는 드라마가 없듯이 우리의 삶은 몇 회에 끝이 날지 알지 못한 채 쓰이고 있다. 그 최종회는 아마도 죽음이 등장해서 결코 재방송은 되지 않는 아무개라고 쓰인 드라마 한 편을 손에 들고 걸어가겠지. 그런 면에서 오라시오 키로가는 자신의 삶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을 죽음이 쓰는 게 싫었나 보다. 지금 재밌게 보는 드라마의 마지막이 너무 궁금하지만 내가 알 수 없듯이 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키로가의 소설 속 인물들이 내게 물었다. 그 답을 이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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