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18
2018.01
최근에 별로 안 좋아하게 된 것이 있다면, 유명인들이 매스미디어에 나와서 지나간 그대들의 20대를 그리워하며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다. 티비 채널을 돌리다 내가 우연하게 보았던 장면은 [나 혼자 산다]의 오래전 재방송 분이었고, 당시의 방송분에서는 마흔을 앞둔 전현무와 유재석이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20대로 돌아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당시에는 시간도 많고 젊었는데 왜 이리 허송세월하며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르겠다.’
막 서른이 된 어느 누군가가 해도 당연한 말을 유재석이 하니 20대를 낭비하는 것이 큰 죄인 것만 같다. ‘청춘콘서트’ 같은 이름을 내걸고 적당히 유명한 사람들이 ‘인생의 교훈’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이런 레퍼토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여러분 제가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것이 20대를 허투루 보낸 거예요. 무엇이라도 시작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그들을 20대 중반의 나는, 침대에 누워서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툭툭 올리며 읽고 있거나 소파에 걸터앉아 입을 살짝 벌린 채 보고 있다. 그들의 충고는 나의 부끄러움을 향하는 것만 같고, 나는 젊음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게 생긴다. 하나 뿐인 젊음에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렇게 핸드폰을 만지는 시간에 나가서 자전거라도 타야 할 것 같고,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오늘 날씨는 너무도 춥고,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을 하기에는 통장 잔고가 부족하다.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20대를 예찬하는 그들이 만에 하나 20대로 돌아간다면 자기들이 말한 대로 살 수 있을까? 최대 작심한달 이라고 본다.
굳이 젊음에 대한 부채의식까지 느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안 그래도 서로의 어깨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잔뜩 메고 살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나의 경우 삶이 즐겁고 재밌고 신나지 않다는 사실 하나와 씨름하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밋밋하고 판에 박힌 하루하루에 순응하며, 어제 먹은 당근 사과 케이크와 이번 주말에 볼 [비포 미드나잇] 생각에 즐거워하다가도, 근 몇 년 간의 나의 삶이 이런 형태로 대동소이했음을 상기할 때면, 이러한 삶에 과연 의미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고는 한다. 치고 빠지는 공허함의 게릴라전에 대응하기에도 바쁜데, 황금 같은 20대를 낭비하면 안 된다는 말이 강하게 울려올 때면 나는… 나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온갖 기행들을 일삼게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동네 뒷산을 나체로 뛰어다니는 20대 남성에 대한 티비 르포를 보게 된다면, 나체주의자나 변태 성욕자가 아닐 가능성도 고려해주길 바란다. 그 묘령의 남성이 뜬금없이 유재석 탓을 하기 시작한다면 숙연한 마음을 가져달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한때’에도 배우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슬퍼하는 [화양연화]의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가장 좋다고 하는 시기에도 그만한 어려움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묘하게 설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비포 미드나잇] 대신에 오래된 홍콩 영화를 다시 본다. 영화를 보면서도 세상에 있을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오랜 고민 끝에도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즐겁게 웃는 사람들에게 진실된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