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03-내 안에서 무너진 것은 나였다.

불임 3화

by 나은

멈춰버린 정거장: 내 안에서 무너진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멈춰버린 정거장: 내 안에서 무너진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진료실 문을 나선 그날 이후, 나는 종종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무언가를 하려 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TV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끊긴 감정의 줄을 쥐고 흔들리는 유령 같았다.

내 존재는 투명해지고, 일상의 모든 감각은 희미해져 갔다.

추가 검사 결과는 의사의 차분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너무나 담담하게 말했다.

"자궁 내부가 너무 매끈합니다. 유착도 있어 보입니다."

매끈? 울퉁불퉁한 것보다 매끈한 게 더 좋은 것 아닌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제야 나는 처음 알았다.

울퉁불퉁한 것을 매끈하게는 만들 수 있었지만, 매끈한 것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건강한 수정 배아를 이식해도 매끈한 자궁벽에서는 착상이 어렵다는…

나의 문제는 착상에 있었다.


결과는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

생각만으로도 그 당시의 감정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잊었다, 잊혔다 생각했는데…

가슴이 아린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어떤 고통은 숫자로 수치화되거나 언어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모양을 바꾸고, 영혼마저 낯설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내 안에서 일어난 지진은 그 어떤 MRI나 초음파로도 포착되지 않았다.

남편은 여전히 내게 특별한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행동도 없었다.

저렇게까지 무관심할 수 있다니, 그 무반응에 또다시 가슴이 아려왔다.


격려와 용기는 꿈도 못 꿀 일일지언정, 최소한 어떤 제스처라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이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몫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이게 부부인가?

모르겠다, 지금은 이런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남편과 나의 관계에 더 깊은 틈을 만들었다.

그는 오직 결과만을 보았고, 나는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처절한 과정을 온몸으로 살아냈다.

그에게 나는 여전히 결혼 전의 같은 사람이었겠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감정의 결은 거칠어졌고, 눈빛의 무게는 천근만근 무거워졌으며,

말의 온도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날 밤, 혼자 거실에 앉아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지만, 내 안의 풍경은 여전히 어두웠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그저 아이 하나가 아니었다.

그저, 함께 겪어주기를 바랐다.

아프다고 말했을 때, "그렇구나" 하고 등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사람 하나만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그것이 이 모든 육체적 고통보다 더 깊은 통증으로 다가왔다.

외로움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다.

어느 날, 무심코 거울을 보았다.

내 눈빛이 낯설었다.

웃지 않는 입술, 탁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움츠린 어깨…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아이를 기다리는 설렘 가득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간을 견디다 못해 산산이 부서져버린 파편이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 안에서 사라진 건 '아이'라는 희망이 아니라,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고통받다 사라져 버린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아무도 몰랐다.

내가 얼마나 긴 밤을 홀로 견뎠는지,

얼마나 자주 숨죽여 울었는지.

나는 조용히 시술을 받았고, 회복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통증은 없었지만, 마음속의 허전함은 더 깊게 남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젠가 다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미약한 의지가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천천히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먼지 쌓인 노트를 꺼내 생각들을 기록했고, 잊고 지냈던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차를 우려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햇살이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이 멈춰버린 정거장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완전히 괜찮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는 마음도 없다.


이 모든 아픔과 시간을 겪어내며 상처투성이가 된 '지금의 나'가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인 것 같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임 이야기 EP.02 - 나는 더 이상...